하루아침에 폐업할 수 있는 자유

2012.03.01 21:22 입력 2012.03.01 21:32 수정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대학원장

정치인, 전직 국정원장·검찰총장, 재벌기업 대주주 가족, 연예인 등이 동계올림픽 개최지 평창의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는 것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지난 10년 새 그 지역 땅값이 7~8배나 뛰었다니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온 나라가 잔치 분위기가 됐을 때, 정작 숨어서 박수를 친 주인공은 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세간의 이목은 세금 탈루 의혹과 관련해 활동을 접어야 했던 유명 연예인에게 집중됐다. 언론과 포털, SNS 등에서 그의 이름만 유독 도드라졌다. 한 언론은 “강호동 ‘몸빵’에 가려지는 평창 땅 재벌들의 ‘모르쇠’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그가 평창 땅을 대형 병원에 기증하기로 하자 경제학자 이준구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땅을 사고파는 걸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중략) 다만 이럴 때마다 새삼 아쉬운 것은 이 정부가 무력화시킨 종합부동산세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하종강칼럼]하루아침에 폐업할 수 있는 자유

비슷한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나가는 기업을 사고팔거나 하루아침에 문 닫아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경우를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앉아 생존권을 위협 당하는 일이 벌어지지만 기업은 “법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내세운다. 땅 투기를 한 사람들이 법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 모습과 닮았다.

자수성가한 자본가가 경영하는 기업에 노동조합이 설립되는 경우,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감은 극에 달한다. 평생 키워온 소중한 기업에 “노동조합이 생겨 분탕질을 한다”고 받아들인다. 수년간 막대한 흑자를 기록했지만 노동조합이 설립되자 사장이 ‘폐업’을 결정한 중소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회사 앞 농성 천막에 들어섰을 때, 마침 소나기가 퍼부었다. 비가 새는 낡은 천막에서 40, 50대 아주머니 아저씨 노동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내 한쪽 어깨와 가방이 빗물에 젖는다고 오히려 세심하게 챙겨주었다. 강의를 끝내자 노동조합 위원장이 주머니에서 구겨진 봉투를 꺼내 강사료라고 건네준다. “폐업해서 임금 못 받은 지 꽤 됐을 텐데, 이 돈은 어떻게 마련하셨어요?”

위원장이 계면쩍은 얼굴로 답한다. “손수레를 끌고 동네에서 빈병과 깡통을 모았습니다.” 아, ‘이 돈을 받으면 벌 받는다’ 싶은 생각이 든 것은 내가 특별히 착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생존의 벼랑에 내몰려 소설책 몇 권을 쓰고도 남을 만큼 지난한 고초를 겪었지만, 사장은 얼마 뒤 다른 지역에 같은 업종의 회사를 열어 승승장구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나가는 기업을 아무 정당한 사유도 없이 폐업해 수많은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결정을 해도 그러한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법이나 제도가 없다. 실직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정산해주면 그뿐이다. 오히려 예전에는 임금조차 한 푼 주지 않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체불임금을 모두 정산해줘야 하니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경영자도 있다. 같은 업종의 회사를 주기적으로 폐업하면서 체불임금 소송을 끝까지 하는 노동자에게만 마지못해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절약하는 악덕 사업자도 실제로 겪어봤다.

최근 대법원이 상반된 판결을 한 ‘콜트-콜텍 사건’도 배경에 깔려 있는 실제 이유는 노동조합에 대한 지나친 혐오감과 무관하지 않다. 생산 물량에 따라 자유롭게 인원을 늘리고 줄일 수 있는 회사는 경영자에게 ‘꿈의 공장’이었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죽음의 공장’이었다. 세계 굴지의 기타 제조회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가혹했다. 노조가 설립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자들은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했다가 쇠사슬에 잠겨 있는 회사 정문과 그 옆에 붙은 폐업공고와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노동조합에 대한 경영자의 혐오감과 무관할 수 있을까?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투쟁도 그 바탕에 깔려있는 것은 노동운동에 대한 지나친 혐오감이다. 노조 활동 경력의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되지 않고 있는 큰 이유는 그 때문이다.

자본가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노동자를 해고한 이유가 인종에 따른 차별이거나 외모에 따른 편견이었다고 밝혀지면 기업이 도산하거나 매장당하는 수준에 버금가는 조치가 뒤따른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이 노동조합에 대한 지나친 혐오감 때문이라고 밝혀지는 경우 그에 따른 엄격한 조치가 뒤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오히려 철저한 시장경제이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가 콜트-콜텍 노동자와 다큐멘터리 <꿈의 공장>에 특별상을 수여하면서 그 이유를 “기타가 없다면 대중음악도 없다. 그렇다면 그 기타는 누가 만드는가?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들고 움직이는 노동자의 존재를 우리는 자주 잊어버린다.…(중략)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이들의 밥과 자유를 위해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작은 상은 우리 모두의 미안함이며 부끄러움이고 약속이며 숙제이다”라고 밝힌 것은 그런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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