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미제라블’

2013.04.10 21:05

냉소적인 이도 설레게 만드는 3시간

영화 <레미제라블>이 한국에서 개봉한 뮤지컬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둔 이유는 역시 ‘원작의 힘’이다. 48%의 유권자들이 열패감을 느끼던 대선 직후라는 사회 분위기와 굳이 연결해도 마찬가지다. <레미제라블>은 이야기가 극적이고 노래가 아름답고 배우들이 보기 좋았다. 그래서 우울과 허무를 158분간 잊어버릴 수 있게 했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한국어 초연작은 상연 중이었다. 용인, 대구, 부산을 거친 5개월여의 지방 공연 기간 동안 이 뮤지컬은 미세조정기를 거쳤다. 서울 공연은 지난 6일 용산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오픈런으로 열렸다. 주최 측은 4월 공연은 90% 이상 예매됐다고 밝혔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1985년 런던에서 초연돼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상연 중이다. 한국에서는 1996년,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오리지널팀이 내한해 관객을 만났다. 이번 공연에도 영국 스태프가 대거 참여해 한국 인력과 호흡을 맞췄다.

[객석에서]뮤지컬 ‘레미제라블’

1막은 파리에 혁명의 기운이 넘실대는 순간까지를 보여준다. 그사이 가석방된 뒤 신분을 숨긴 채 사업가이자 정치인으로 살아가던 장발장(정성화)은 가련한 여인 판틴(조정은)이 죽으며 남긴 딸 코제트(이지수)를 거둔다. 집념의 경관 자베르(문종원)는 줄곧 장발장의 뒤를 쫓는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은 한국에서 5권으로 나뉘어 나올 만큼 방대하다. 죄와 속죄, 법과 도덕, 사회의 비참함 등 묵직한 주제부터 청춘남녀의 삼각관계나 부모의 정 같은 멜로드라마적 주제까지 들어 있다. 뮤지컬은 유장한 서사의 흐름에서 인상적인 대목을 적절하게 절취해냈다. 장발장의 개심, 판틴의 전락과 죽음, 혁명 모의 등 대목마다 하이라이트다. 서사만 해도 꽉 차 있는데, 노래와 춤까지 극적이다. 특히 장발장이 불러야 하는 노래들은 배우의 성대와 폐활량을 시험하는 듯 보인다. 잔잔하고 섬세한 이야기를 즐기는 관객들은 벅찰 수도 있겠지만, 한국 관객들은 대체로 이렇게 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해 왔다.

혁명이 본격적으로 전개돼 시민군이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2막에 이르러 오히려 빠르던 리듬이 잦아든다. 1막의 거센 흐름에 익숙해져서인지 패배 전야의 적막한 분위기에는 금세 젖어들기 힘들었다. 그러나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극은 막바지에 이른다. 그렇게 3시간이 금세 간다.

원작의 맛을 살린 문어체 가사가 많아 합창 대목에선 가사가 명확히 들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레미제라블>의 한국어 초연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레미제라블>은 모든 배역에 1명만 캐스팅했다. 한 배역에 2명은 기본이고 3명, 4명까지 캐스팅하는 게 최근 한국 뮤지컬의 흐름인 점을 감안하면 환영할 만하다. 무엇보다 가장 냉소적인 사람에게도 왠지 모를 설렘을 안겨주는 ‘원 데이 모어’의 합창, 한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해가는 과정을 엔터테인먼트로 풀어낸 솜씨는 대단하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선동으로도, 작품으로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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