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애비뉴Q’

2013.08.28 21:55 입력 2013.08.28 21:56 수정

“엿 같은 내 인생 ♬”인형들이 던지는 ‘19금’ 풍자

귀여운 인형들이 나오는 뮤지컬이 충격적이래봐야 얼마나 충격적일까 싶겠지만, <애비뉴Q>에는 잊을 수 없는 ‘변태’스러운 장면이 나온다. 바로 인형들끼리의 섹스다. 지금까지 간직했던 마지막 동심 한 조각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랄까.

23일 막을 올린 뮤지컬 <애비뉴Q>는 ‘퍼펫 뮤지컬’을 표방한다. 미국의 어린이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에 나올 법한 인형들이 등장해 ‘19금’스러운 대사와 노래를 태연히 한다. 생활비가 비교적 저렴한 뉴욕의 가상공간 ‘애비뉴Q’가 배경이다. 갓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은 하지 못한 프린스턴,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유치원 보조교사 케이트, 성정체성을 의심받는 로드, 방 안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포르노만 보는 트레키 몬스터 등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인형들은 늘 입을 벌린 채 웃고 있으며,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멜로디도 경쾌하다. 단, 그 가사에는 무력한 처지에 대한 자조, 사회에 대한 냉소, 음탕한 유머 등이 담겨 있다. 애비뉴Q로 이사온 프린스턴은 등장하자마자 ‘영문과를 나와서 뭘 할 수 있니’라는 노래를 부르고,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한꺼번에 나와 ‘엿 같은 내 인생’을 부르며 서로 자신의 인생이 한심하다고 자랑한다. 천진난만한 멜로디만 듣는다면 기분이 좋아지겠지만, 무대 양옆의 모니터에는 친절하게도 한글로 번역된 신랄한 가사들이 나온다.

[객석에서]뮤지컬 ‘애비뉴Q’

가사 번역이 독특하다. 단순히 대사를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폰트 크기와 색채를 다양하게 하고 아이콘까지 넣었다. 요즘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이 그러하듯, 자막이 인물의 말을 옮기는 차원을 넘어 연출자의 숨은 목소리를 드러낸다. 이런 시도는 자칫 유치하거나 과도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애비뉴Q>의 분위기가 워낙 자유분방해 이러한 자막 활용도 자연스럽다. 한국 상황을 반영해 “전 재산이 29만원”인 전직 대통령을 풍자하는 대사도 있다. 이제 그를 조롱하는 건 유행에 가까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명의 고객도 없는 심리치료사인 크리스마스 이브는 일본인이다. 미국 대중문화 콘텐츠가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묘사할 때 흔히 그러하듯, 크리스마스 이브의 발음도 대단히 이상하다. 그러나 <애비뉴Q>에서 미국 대중문화 창작자들의 인종적 편견을 지적하는 건 무리다. 이 작품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을 일찌감치 벗어던졌기 때문이다. 작품에는 아예 ‘모두가 조금씩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노래도 있다. 각 인종에 대한 편견을 유쾌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서로를 ‘쿨하게’ 인정하자는 내용이다.

주인공 격인 프린스턴은 한국의 동년배 청춘들도 쉽게 공감할 만한 캐릭터다. 부모님께 지원받는 돈은 부담되고, 취직은 안된다.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났지만, 더 깊은 관계로 접어드는 건 왠지 부담스럽다. 인생의 ‘목표’를 찾아헤매지만, 정작 그 목표가 무엇인지는 자신도 모른다. 오락가락하던 프린스턴은 종결부에 이르러 ‘오늘의 불행도 영원하진 않다’는 단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그걸 ‘성장’이라 불러도 좋겠다. 10월6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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