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다. 발굽을 가진 동물인 염소가 나무에 올라갈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그래서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염소들의 사진을 보면 처음엔 포토샵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실제 사진이다. 다만,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모로코 남서부에서만 볼 수 있다. 염소들이 올라가는 나무는 아르간 나무(Argania Spinosa)다. 열매가 ‘모로코에 가면 꼭 사와야 한다’는 아르간 오일의 원료로 쓰이는 나무다.

■척박한 환경이 염소를 나무 위에 올라가게 했다

모로코 남서부 지역에 사는 염소들이 나무에 오르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다. 이 지역은 연평균 강우량이 300㎜밖에 되지 않는 건조한 곳이어서 먹을 풀이 많지 않다. 따라서 이 지역에 자라는 아르간 나무의 잎과 열매가 유일한 먹이일 때가 많다고 한다. 아르간 나무는 높이가 8~10m에 이르지만 이들 염소는 타고난 균형감각과 뛰어난 체력으로 나무에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나무와 풀이 가장 부족한 가을에는 먹이 찾는 시간의 74%를 아르간 나무 위에서 보낸다고 한다.

■사람들의 일손도 덜어주는 염소들

아르간 나무는 모로코에서 매우 중요한 나무다. 숲을 이뤄 사막의 모래나 먼지를 막아주고, 씨앗은 아르간 오일의 원료가 된다. 그런데 씨앗을 구하려면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딴 뒤 기름진 과육을 제거해야 한다. 이 과정을 단축시켜 주는 것이 염소들이다. 나무 위에 올라가 열매를 따먹은 뒤 씨앗만 배설하기 때문이다. 돼새김질을 하는 동물인 염소는 큰 씨앗은 뱉어내기도 한다. 염소들이 열매를 모아주고, 과육을 제거해주는 덕분에 사람들은 아르간 오일의 원료가 되는 씨앗을 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노화를 막아주는 아르간 오일

아르간 오일은 천연 토코페롤(비타민 E)과 카로틴 함유량이 높아 피부 노화를 방지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아르간 오일을 만드는 모로코 여성들의 손과 얼굴에는 주름이 없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오일을 규칙적으로 발라주면 피부 각질이 제거되고 염증과 류머티즘의 진정 효과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르간 오일은 빵과 샐러드에 발라먹기도 한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피부 세포의 노화를 억제해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 희귀한 오일로 인정받고 있다.

■귀해서 위기에 빠진 아르간 나무

미국에서 아르간 오일은 열렬한 추종자가 있는 미용 제품이다. 조시 마란 브랜드의 100% 아르간 오일은 약 48.2g짜리 한 병의 가격이 48달러에 이른다. 1g에 1달러(약 1060원)꼴이다. 주민들은 아르간 오일을 ‘액체로 된 금’ ‘신이 선물한 황금 원액’이라고 부른다. 2003년에는 벨기에로부터 1억3400만디람(약 174억원)을 지원받아 아르간 오일 사업을 확대했다. 새로 늘어난 일자리가 300만개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르간 나무는 지난 100년간 약 3분의 1이 사라지면서 ‘멸종 위기에 처한 세계 자연유산’ 리스트에 올랐다. 주민들이 아르간 오일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아르간 열매를 먹는 염소를 사들인 것이 이유라고 한다. 높은 인기 때문에 아르간 오일도, 나무 위의 염소도 못보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