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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스킨라빈스 ‘아동 성상품화’ 논란… 해외였다면 제재 대상이었을까

2019.07.03 16:50 입력 2019.07.03 19:11 수정

지난달 28일 공개된 배스킨라빈스 광고를 두고 ‘아동 성상품화’ 논란이 불거졌다. 12세 여성 아동 모델이 립스틱 바른 입술로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온라인에선 해당 아동 모델이 해외에서 촬영한 광고에서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면서 “한국이 아동 성상품화에 유독 관대하다” “해외에선 이정도면 제재를 받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어떤 부분이 성적 대상화인인지 모르겠다”는 반박도 제기됐다. 배스킨라빈스는 하루만에 광고를 내리며 “모델 부모·소속사와의 충분한 사전 논의를 거쳤고 일반적인 어린이 모델 수준의 메이크업을 했다”고 해명했다.

해외에서 이 광고가 나왔으면 어땠을까. 경향신문은 영국 광고심의위원회(ASA)에 “배스킨라빈스 광고가 영국에서 만들어졌다면 ‘아동 성상품화’로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는지” e메일로 문의했다. ASA는 영국의 광고심의기관으로, 2011년 당시 17살이었던 배우 다코다 패닝의 향수 광고를 금지시키는 등 아동 성상품화 광고에 적극적인 규제 권고를 내리고 있다. ASA 심의규정은 TV과 라디오, 신문, 잡지 등 영국 내 모든 매체에 실리는 광고에 적용된다.

지난달 28일 배스킨라빈스가 공개한 신제품 광고 갈무리. 아동 모델의 립스틱 바른 입술이 클로즈업됐다.

지난달 28일 배스킨라빈스가 공개한 신제품 광고 갈무리. 아동 모델의 립스틱 바른 입술이 클로즈업됐다.

■‘광고주 의도’보다 중요한건 ‘사회적 책임’

ASA는 3일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영국의 광고심의기관으로서, 다른 규정을 가지고 있을 국가의 광고에 대해서는 의견 밝힐 수 없다”면서도 “2018년 1월2일부터 18세 미만 아동의 성상품화 광고에 대해 규제를 강화했다”며 아동 성상품화 규제를 강화한 이유를 전했다.

ASA 윤리조항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회사는 18세 미만 아동이거나 그렇게 보이는 누구든 성적인 방식으로 묘사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종전 16세 미만에서 18세까지로 보호 대상을 넓혔고, 방송 광고와 달리 구체적인 아동 보호 지침이 없었던 비방송 대중매체 광고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했다. 다만 청소년 피임 등 공익 목적 광고는 성적 묘사가 강하지 않다는 전제 하에 허용했다.

ASA는 광고의 유해성을 판단할 때 ‘광고주 의도’보다 ‘이 광고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더 집중한다. 이는 2011년 배우 다코타 패닝의 향수 광고를 금지하면서 ASA가 밝힌 이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ASA는 “패닝은 외모보다 훨씬 어려 보여 그녀가 누구인지 모르는 대중의 눈에는 13~16살 정도로 보일 수 있다”고 했다.

2011년 다코다 패닝이 광고한 마크제이콥스의 향수 ‘오, 롤라!’ 광고사진. ASA에 의해 금지조치가 내려졌다.

2011년 다코다 패닝이 광고한 마크제이콥스의 향수 ‘오, 롤라!’ 광고사진. ASA에 의해 금지조치가 내려졌다.

이런 관점에서는 자연스럽게 광고주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된다. ASA는 강화된 규정을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광고주들은 미성년자거나 그렇게 보이는 모델이 성적으로 묘사되지 않도록 (실제 모델의 나이 뿐 아니라) 메이크업, 포즈, 모델의 시선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일부 성인들이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보거나, 아동들이 이러한 시선에 압력을 받을 잠재적인 가능성을 제거하는데 우리의 조치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

■ASA가 금지한 광고 보니

베스킨라빈스 광고가 아동을 성적으로 대상화했는지 여부는 ASA가 금지한 다른 광고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실제 모델이 성인인 경우에도 “미성년자로 보인다면” 제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16년 ASA는 의류업체 ‘노바디스 차일드’ 광고가 “모델의 포즈나 표정이 성적 암시를 줄 수 있다”며 금지 조치했다. 영국의 버스 정류장에 게재된 이 광고에서는 앳된 얼굴의 여성 모델이 무표정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의자나 쇼파에 걸터앉아있다.

2015년 ASA가 아동 성적 대상화로 금지 조치를 내린  의류회사 노바디스차일드의 광고 포스터. 카메라를 게슴츠레 응시하거나 다리를 벌리고 있는 포즈 등이 아동 모델의 취약함(vulnerability)을 부각한다고 ASA는 판단했다.

2015년 ASA가 아동 성적 대상화로 금지 조치를 내린 의류회사 노바디스차일드의 광고 포스터. 카메라를 게슴츠레 응시하거나 다리를 벌리고 있는 포즈 등이 아동 모델의 취약함(vulnerability)을 부각한다고 ASA는 판단했다.

당시 노바디스 차일드 측은 “실제 모델은 21살이며, 아동을 묘사한 것도 아니다. 선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짙은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바디스 차일드(누구의 아이도 아니다)라는 브랜드명도 모델을 미성년자로 보이도록 한다고 해석됐다. ASA는 손을 느슨하게 맞잡거나 입술을 벌리는 등의 모델 포즈가 아동의 취약함을 부각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밖에 교복을 입힌 모델을 성적 맥락에서 사용하는 광고도 영국에서는 제재 대상이다. 2008년엔 젊은 여성에 허리 위까지 오는 교복을 입힌 라이언에어 광고에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교복이 ‘섹시 의상’의 일종으로 소비되고, 학생들이 잠재적인 성적 대상으로 다뤄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성인 연예인이 교복을 연상케하는 무대 의상을 입고 몸매가 부각되는 춤을 추는 한국 방송계 관행은 ASA 기준으론 제재 대상인 셈이다.

한국에서 논란이 된 베스킨라빈스 키즈모델 엘라 그로스가 해외에서 촬영한 타미힐피거와 갭의 광고 사진. 노출이 없는 옷, 환한 미소, 활기찬 분위기를 부각했다. 남녀 어린이들(왼쪽 사진)이 함께 나온다.

한국에서 논란이 된 베스킨라빈스 키즈모델 엘라 그로스가 해외에서 촬영한 타미힐피거와 갭의 광고 사진. 노출이 없는 옷, 환한 미소, 활기찬 분위기를 부각했다. 남녀 어린이들(왼쪽 사진)이 함께 나온다.

■한국의 경우 어떨까

그렇다면 배스킨라빈스 광고에 대해서는 어떤 조치가 내려질 수 있을까. 현재 방송광고 심의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다. 방심위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언론을 통해 비판이 제기되자 심의 규정 위반 검토에 나섰다. 방심위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방송 게재 여부를 확인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특정 광고가 아동·청소년 보호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방심위는 광고를 게재한 방송사에 행정조치나 법정제재를 내릴 수 있다. 사전심의 권한은 없기 때문에 광고가 사용자에게 노출된 이후에야 제재할 수 있다. 하지만 배스킨라빈스 광고가 제재 대상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우선 관련 규정이 모호하다. 방송 심의에 관한 규정 제 45조6항은 “방송은 신체가 과도하게 노출되는 복장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출연시키거나 어린이와 청소년이 지나치게 선정적인 장면을 연출하도록 하여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신체노출’과 ‘지나치게 선정적인 장면’을 가르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배스킨라빈스 광고처럼 성적 묘사가 노골적이지 않다면 제재가 어렵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아동 청소년 보호 규정 위반으로 방심위로부터 행정처분과 법적조치를 받은 광고는 각각 1건이다. 모두 학교폭력 관련으로, 아동 성 상품화와는 관련이 없다.

광고 규제의 주체가 매체별로 제각각인 것도 문제다. 방송 광고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온라인 광고의 경우 정보통신망법 상 ‘무엇이 광고인지’에 대한 법적 정의조차 분명치 않아 심의가 어렵다. 시정요구가 내려지려면 청소년유해매체물이거나 마약, 범죄교사 등 불법행위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한다. 지난 2월 여아가 입는 옷에 ‘섹시 토끼의 오후’ 등의 이름을 달았다가 논란이 된 유명 아동 쇼핑몰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셈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2일 배스킨라빈스 여아모델을 대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사례를 공개했다. 한사성 제공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2일 배스킨라빈스 여아모델을 대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성희롱 사례를 공개했다. 한사성 제공

전문가들은 아동을 성 상품화한 광고가 사회에 미치는 해악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대표는 “광고에 성적인 자극을 받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선 ‘예쁜 이미지’일 수 있지만,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아동을 성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며 “이런 광고 컨텐츠들이 늘어날수록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사회 분위기는 강화된다”고 했다.

법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청소년 성 상품화 연구자인 성윤숙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배스킨라빈스 광고의 문제는 아동 모델의 옷차림이나 화장이 아니라, 여아를 다루는 방식이 성인 여성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라며 “아이들이 성 상품화된 아동 모델을 보고 동경하거나 모방하는 등 영향력이 적지 않다. 방송 광고를 포함해 온라인, 1인 미디어 등 매체 통합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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