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카를 두른 해골

2021.08.21 03:00 입력 2021.08.21 03:01 수정
김지연 전시기획자·d/p디렉터

말리나 슐리만, 부르카를 두른 해골, 2013,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거리에 그라피티

말리나 슐리만, 부르카를 두른 해골, 2013,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거리에 그라피티

“부르카는 존경의 이름으로 통제하는 방법이다. 부르카에 명예, 문화, 종교 같은 의미를 부여하지만, 실제 그것은 단지 여성을 통제하고 자기 안에 가두어 두는 수단일 뿐이다.”

여성을 부르카라는 감옥에 가둔 채 복종하고 순종하는 신체로 개조하는 폭력이, 그럴듯한 명분과 사회적 합의하에 21세기에도 강제된다는 현실을 납득하기란 쉽지 않다. 1990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말리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당하는 현실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는 파키스탄으로 유학을 떠나 건축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여성이 ‘집 밖’에서 수업을 듣는 것은 가족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형제들의 반대로 집 안에 1년 가까이 감금됐다.

“집에 있는 동안 나는 다양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러다가 나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소녀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대중 앞에 나서서 자신을 표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말리나는 스프레이를 들고 칸다하르 거리 담벼락에 부르카를 두른 해골을 그렸다. 해골은 여성을 향한 사회의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권리를 요구하면 살해당하는 현실 안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살아야 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자화상이었다.

작가가 던진 탈레반과 이슬람의 전통문화에 대한 목소리는 ‘사회’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극단주의자들은 자살폭탄테러까지 감행하며 작가를 위협한다. 서구식 자유가 아니라 이슬람 사회 내에서의 성평등을 원한다는 말리나의 목소리는 “대다수의 아프간 사람들이 탈레반처럼 되고 있다”는 지금, 외롭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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