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21년!

2021.12.14 03:00 입력 2021.12.14 03:01 수정

2021년이 저물어간다. 정치사회학 연구자인 내가 보기에 지난 1년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두 가지 이슈는 계속되는 코로나19 팬데믹과 본격화된 20대 대통령 선거였다. 지난 19대 대선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국면 속에서 ‘조기 대선’으로 치러졌다면, 2022년 대선은 팬데믹 국면 아래서 ‘특이 대선’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특이’란 팬데믹이라는 비상한 국면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펠로

김호기 연세대 교수·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펠로

지난해 봄부터 시작된 이 팬데믹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오미크론 변이의 지구적 확산과 단계적 일상회복의 어려움은 팬데믹이 처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그 딜레마란 방역과 경제가 마주한 제로섬 관계를 의미한다. 방역과 경제는 양자택일의 이슈가 아니다. 둘 다 중요하다. 문제의 핵심은 그 나라의 상황에 걸맞은 방역과 일상회복의 균형 지점을 찾아야 한다는 데 있다.

지난 2년의 경험이 증거하듯, 코로나는 특정 국가에 결코 관대하지 않다. 어느 나라든 백신 접종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더라도, 예방의학자들이 지적하듯 전체 인구의 일정 부분은 감염을 피하기 어렵다. 확진자 증가는 이 점에서 불가피한 통과의례일 것이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이 통과의례를 적절히 관리하고, 그 손실과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데 놓여 있다. 구체적으로 방역을 위해선 자영업자 등의 손실보상을 강화해야 하고, 일상회복을 위해선 병상 확보와 관련 인력 수급을 강화해야 한다.

결국 내년 5월10일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코로나의 시간’은 계속되고, 이에 대한 대처는 주요 국정 과제의 하나를 이룰 것이다. 코로나19의 지구적 특성을 고려할 때, 감염병 취약 지역인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서 완전한 극복이 이뤄질 때까지 이 코로나의 시간은 지속될 것이다. 이 점에서 임기가 5개월 정도 남은 현 정부에 부여된 가장 중대한 과제도 바로 이 코로나의 시간에 대한 대응일 것이다.

돌아보면 지난 4년 반 넘게 현 정부의 국정을 이끌어온 핵심 키워드는 ‘적폐청산, 부동산, 코로나19’였다. 주목할 것은 적폐청산이 국정의 예정된 경로였지만 부동산과 코로나19는 그 경로 밖에 놓인 과제였다는 점이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현 정부의 국정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부동산 정책과 코로나19 대책에서 볼 수 있듯, 어떤 정부라 하더라도 정부의 의도대로 정책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과 예기치 않게 등장한 국가적 시련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사회 안에서 그 열기가 뜨거울지 몰라도 시민사회 안에선 여전히 대선이 미지근한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좋은 정부란 주어진 과제를 잘 풀어야 하는 동시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유능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정부다. 다시 말해, 바람직한 정부에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일찍이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강조했듯, 자신의 이념에 충실한 ‘신념윤리의 정부’라기보다 주어진, 의도하지 않은, 예기찮은 과제들에 성과를 일궈내는 ‘책임윤리의 정부’다. 대선 과정이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미지근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현재 당선 가능한 후보들이 과연 이런 책임윤리의 정부를 얼마나 성취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신뢰를 크게 안겨주지 못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선거가 막바지에 이를수록 어느 나라든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한 메시지, 캠페인, 전략이 강조된다. 특히 대통령제 국가에선 권력의 공유가 어렵기에 선거 승리를 위해 이러한 디테일이 불가피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메시지, 캠페인, 전략이 가치를 앞설 순 없다. 가지가 줄기를 대체할 수 없듯, 현상이 본질을 가릴 순 없다. 나는 현재 국민 다수가 소망하는 차기 정부의 가치는 좋은 정부, 바람직한 정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바람직한 정부란 다시 한번 말하면 책임윤리의 정부다. 이 책임윤리의 정부의 다른 말이 ‘실용의 정부’다. 현대정치에서 이념을 박제한 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보수적 실용과 진보적 실용이 생산적으로 경쟁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보수와 진보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국민 다수의 의사에 달려 있다.

정치사회학 연구자로서 나는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그 일차적 목표가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실용의 정부를 지향하는 데 있기를 소망한다. 팬데믹 2년차인 2021년을 국내외에서 지켜보고 겪어온 나의 결론이다. 아듀,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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