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아프리카 정치 무대에 군사 쿠데타가 복귀했다

2021.12.29 17:05 입력 2021.12.29 17:21 수정

2021년은 아프리카가 다시 쿠데타 소용돌이에 휘말린 한 해였다. 차드, 말리, 기니, 수단 등 아프리카 4개국에서 잇따라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1960년대 식민지에서 벗어난 아프리카 국가들은 수십년간 쿠데타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민주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쿠데타 시도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경제가 악화하고 민주정권이 실책을 이어가자 군부가 정치 전면에 나서며 ‘쿠데타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쿠데타 전염병이 돌고 있다”

중동매체 알자지라는 28일(현지시간) 올해를 ‘아프리카 정치 무대에 군사 쿠데타가 복귀한 해’라고 규정했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와 켄터키대 연구팀의 데이터를 보면 올해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대륙의 차드, 말리, 기니, 수단 네 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마다가스카르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니제르에서도 쿠데타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지난해 한 건에 불과했던 쿠데타가 올해 4건으로 급증한 것이다.

2021년 아프리카 정치 무대에 군사 쿠데타가 복귀했다

1960년 독립을 이룬 아프리카 나라들은 수십 년 간 쿠데타에 시달렸다. 1990년대까지 매년 평균 4건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내전도 빈번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민주개혁과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 요구가 커졌고,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 희망이 싹트면서 쿠데타는 연 평균 1~2회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난은 정국 불안 요인이 됐다. 민주화 운동으로 정권을 잡은 지도자들이 권위주의 통치로 부패와 정책 실패가 이어진 것도 원인이 됐다.

군부 강경파 지도자들은 정부의 실패를 명분삼았다. 지난해 8월 말리 군부가 무혈 쿠데타로 대통령을 몰아낸 것을 시작으로 아프리카 전역에서 군부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올해 4월 차드, 5월 말리에서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고 9월 기니, 10월 수단에서까지 차례로 쿠데타가 일어나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아프리카에 쿠데타 전염병이 돌고 있다”며 국제사회 개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구원자 자처하는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기니 군대가 지난 9월 5일(현지시간) 수도 코나크리의 대통령궁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환영하고 있다. 코나크리|로이터연합뉴스

쿠데타를 일으킨 기니 군대가 지난 9월 5일(현지시간) 수도 코나크리의 대통령궁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환영하고 있다. 코나크리|로이터연합뉴스

이전의 쿠데타와 다른 점은 아프리카 국민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를 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기니와 말리 등에서 일어난 쿠데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군부가 구원자를 자처하면서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기니 쿠데타를 주도한 마마디 둠부야 사령관은 1981년 가나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리 롤링스의 말을 인용해 “민중이 엘리트에게 짓밟힐 때 군대가 일어나 민중을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9월 기니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자 군부의 입성을 환영하는 시민들이 길거리에 나와 환호했다. 콩데 대통령은 ‘서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로 불렸을 정도로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0년 독재정권 민정 이양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일단 정권을 잡자 콩데 대통령도 독재의 길로 접어들었다. 헌법을 바꿔 대통령 임기를 늘리고, 반정부 시위대를 무력 진압했다. 현재 야당과 시민들은 독재자를 몰아낸 군부를 오히려 옹호하고 있다.

CNN은 코로나19 이후 악화하는 경제 사정이 아프리카 정치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해석했다. 현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극빈층 수는 인구의 절반인 5억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살림살이는 어려워지는데 정부 부패가 심화되며 민주정권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졌다. 최근 아프리카바로미터가 아프리카 19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6명은 부패가 증가하고 있다고 답했고, 3명 중 2명은 정부가 부패 척결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서아프리카 열린사회이니셔티브의 아이샤 오소리 전 대표는 FT에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국민의 의지에 역행하면서 오히려 쿠데타를 반기는 소름끼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무관심 속에서 군부 지원하는 외세

문제는 국제사회의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조나단 파월 센트럴플로리다대 교수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를 규제할 국제적 힘은 부족한 반면 오히려 군부 정권을 돕는 외국 세력은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 대륙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은 장기적인 경제 유대에만 신경쓸 뿐 국내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심지어 아프리카 군부는 서구 민주주의와 멀어질수록 중국의 투자를 더 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고 알자지라는 설명했다.

아프리카연합(AU) 등 아프리카공동체가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고 나섰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 서방 또한 쿠데타 비판에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차드에서 이드리스 데비 대통령이 숨지자 아들 마하마트 장관이 이끄는 군사평의회가 정권을 잡았는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사실상 쿠데타를 일으킨 마하마트 장관을 지지했다. 유럽연합(EU)도 쿠데타를 강하게 비난했지만 구체적인 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다. 베르지니 보데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선임연구원은 국제사회가 확고하고 단결된 대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군부 지도자들의 집권을 방관해 왔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 쿠데타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왔다. 올해 국가 안정성, 전쟁 가능성 등을 나타내는 ‘취약국가지수’에서 상위 20개국 중 15개국이 아프리카 국가였다. CNN은 “쿠데타 가능성이 높아지면 아프리카에서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이 떨어지고, 투자자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결국 경제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평화연구소의 조셉 사니 아프리카센터 부소장은 “1970년대 쿠데타와 마찬가지로 군부를 반기는 기쁨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면서 “군부 정권 아래 경제가 더 성장하고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릴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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