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경찰서장들이 지난 23일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방침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전국에서 총경 190여명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했고, 자리에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무궁화 화환을 보내 동참 의사를 밝혔다. 총경의 60%에 해당하는 350여명이 참여했다. 경찰의 핵인 총경급 간부들이 이렇게 한데 모여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시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경찰청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이번 모임을 제안한 울산중부경찰서장 류삼영 총경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회의 참석자 56명에 대해서도 국가공무원법상 복종 의무 위반을 이유로 감찰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경찰서장들은 회의 후 공식입장문을 내고 경찰국 신설이 경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규칙이 법치주의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민주적 통제에는 동의하지만, 경찰국 설치와 지휘규칙 제정 방식의 행정 통제는 퇴행이라고 밝혔다. 또 국민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 사안인 만큼 폭넓은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경찰의 민주적 통제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며 지휘부에 그 내용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경찰의 중추를 이루는 대다수 간부들이 토의한 후 내놓은 의견인 만큼 가벼이 볼 일은 아니다.
그런데 경찰 지휘부는 이런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물론, 강압적으로 누르려 하고 있다. 경찰 지휘부는 총경들과 대화를 하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회의 도중에 해산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지휘부의 이런 대응 자체가 경찰 독립성이 이미 무력화된 증거로, 행안부가 경찰 통제 명목으로 인사권 등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부의 지시만 수용하고 내부의 건강한 의견 제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찰 지휘부에 실망과 더불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경찰 내부 통신망에는 벌써 “내가 류삼영이다” “나도 대기발령시켜달라”는 등 일선 경찰관들의 비판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심지어 윤희근 청장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24일 총경 회의를 “부적절한 행위”로 규정했다. 국민의힘 측은 경찰서장들의 집단행동에 엄정 대처를 주문했다. 공무원에게도 시민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자신이 복무하는 조직과 관련한 중요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다. 이를 일방적으로 찍어누르는 것은 구시대적 행태이다. 야당이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법안을 추진할 때 검사들은 집단적으로 모여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경찰 지휘부와 정부는 총경들이 제기한 우려와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감안해 경찰 통제 방안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 이를 묵살한 채 징계를 강행한다면 더 큰 반발만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