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첫 제1야당 대표 체포동의안은 가결 같은 부결로 끝났다. 지도부가 장담한 “압도적 부결”과는 딴판이다. 늘 단일대오와 침묵의 소용돌이에 익숙해진 더불어민주당으로선 가히 충격적인 결과다.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도 161표의 반대표가 나왔다. 민주당 의석만도 169석인데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은 심지어 찬성(139표)이 반대(138표)보다 많았다. 민주당이 자부하는 단일대오가 무너진 셈이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이번에도 15분에 걸쳐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사기적 내통” “단군 이래 최대 손해” 등의 자극적 표현이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의 곤욕을 건드린 대목은 이런 부분이다. “지금까지 설명해드린 어디에도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범죄혐의는 없다. 오직 ‘성남시장 이재명의’ 지역토착비리 범죄혐의만 있을 뿐이다.”
애초 체포동의안의 ‘압도적 부결’을 담보하는 네 개의 허들이 존재했다.
먼저 대체 불가능한 지배력을 가진 이 대표가 직접 나섰다. 연달아 기자회견을 하고 규탄대회도 개최했다. 소속 의원 전원에게 친전도 보내고, 비명계 의원들을 일대일로 만나기도 했다. 둘째, 계파를 떠나 검찰 수사의 부당성과 무도함에 대한 분노가 폭넓게 형성돼 있다. 전방위적인 야당 의원과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지켜보면서 첫 둑이 무너지면 안 된다는 공감대도 있었다. 셋째, 강력한 팬덤 정치의 자장이다. 강성 당원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이재명 체제에 반기를 들었을 때의 후과를 감당해낼 의원이 많지 않다. 넷째, 가장 강력한 방어막은 연말이면 시작될 총선 공천이다. 공천권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 대표의 지위와, 강성 권리당원의 힘을 감안하면 공천권은 대오 이탈을 제어하는 가장 무서운 압박이다.
어떻게 지금까지 ‘조용한 정당’을 견인해온 이 네 개의 허들이 무너져 반란(?)의 문이 열렸을까.
아마도 “이 대표 체제에서 방탄 프레임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고 발버둥 칠수록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은 상황”(조응천 의원)이 방아쇠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의 법집행은 집요하게 계속될 게 뻔하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대장동과 성남FC 사건은 곧 불구속 기소할 테다. 지난해 9월 기소된 선거법 재판은 3일부터 시작된다. 이 대표는 수시로 재판정에 나가야 하고, 중계되는 재판이 민주당의 다른 이슈를 압도할 터이다. 쌍방울그룹의 변호사비 대납과 대북 송금 의혹, 백현동과 정자동 개발 의혹 사건 등에 대한 검찰의 소환과 구속영장 청구도 언제든 대기하고 있다.
제1야당 대표를 향한 무자비한 수사는 ‘야당 탄압’이라는 명분이 맞는데 딱히 여론에 호소되지 않는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초래한 모든 혐의들이 시기나 내용 모두 당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윤석열 검찰정권의 폭주가 계속되어도 전통적 대여 전략인 민주·반민주의 구도가 세워지지 않는다. 민주당이 민생을 외치고,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고, 메시지를 던져도 울림이 적다. 여론이 야당의 버팀목인데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장기화되고 피로감이 쌓이면서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묶여 당의 대응이 방탄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아무리 민생과 경제 분야로 전장을 옮기려 해도 쉽지 않다. 검찰정권의 민낯을 보여준 ‘정순신 인사참사’에도 윤석열 정부는 아무런 반성과 문책, 쇄신도 없이 넘어가려 한다. 미증유의 이태원 참사 대처도 그랬다. 윤석열 정부가 실정과 독주에도 흔들리지 않고 막가도 되게 만드는 건 역설적으로 도덕적 권위와 신뢰가 훼손된 ‘이재명 야당’의 존재다.
68년 역사를 가진 ‘민주당’은 야당 때 그 역사적 몫을 다했다. 민주화도 그랬고, 정권교체도 이뤄냈다. 국회에서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 민주당’이 왜 이렇게 윤석열 정부의 독주, 독단, 독선을 제어하고 견제하지 못하는가, 민심이 묻고 있는 지점이다.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방탄의 개미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야당의 견제 역할도 내년 총선도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충격적인 체포동의안 표결 결과로 표출됐다. 개미지옥 탈출의 키도 이 대표가 쥐고 있다. ‘민주당’의 산증인인 권노갑 고문이 체포동의안 표결 전에 이 대표에게 “다음엔 떳떳하고 당당하게 당대표로서 책임 있는 행동으로 솔선수범 선당후사의 정신을 발휘해줬으면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 시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