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차기 대법관 인선을 놓고 특정 후보자들의 정치 성향을 문제 삼아 거부권 행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권을 갖는 대법관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실이 자기 ‘입맛’에 맞는 대법관을 앉히기 위해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려는 것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오는 7월 퇴임하는 조재연·박정화 대법관의 후임으로 대법관추천위원회가 내놓은 8명 후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2일 “대법관 임명은 대법원 신뢰와 연결되는 문제”라며 “대법원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법조계는 물론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인물을 제청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명을 최종 후보로 정해 금명간 윤석열 대통령에게 제청할 예정인데, 특정 후보를 먼저 지목해 거부할 뜻을 시사한 것이다.
지목된 이는 정계선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와 박순영 서울고법 판사라고 한다. 정 판사에 대해서는 진보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경력을 문제 삼고 있다. 박 판사에 대해서는 중앙선관위원을 겸직해 선관위 채용비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노동자에 우호적인 판결 성향이 마뜩잖았을 것이다.
대통령실의 이런 입장 표명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더구나 대법원장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해 구성된 추천위에서 다양한 시민 의견을 반영해 선발한 후보를 대통령실이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제하라고 겁박하는 것은 삼권분립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코드 대법관 인사’로 대법원을 장악했다고 줄곧 비판해왔다. 그렇다면 지금 행태야말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난 정부의 대법원이 진보 편향으로 신뢰를 잃었다고 보는 윤석열 정부는 오는 9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 대법원장 퇴임 이후 본격적인 물갈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7년 6월까지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 중 13명이 교체될 예정이다. 이대로라면 공정하고 균형 있는 최종 판결로 공동체에 방향성을 제시해야 할 대법원이 행정부 입김에 좌우될 우려도 커진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실이 기피 대상으로 지목한 대법관 후보자들은 모두 여성이다. 정치에 휘둘리고 시대에 지체된 대법원 판결에 누가 승복하겠는가. 윤석열 정부는 대법원을 역사의 시험대에 올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