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책거리마저 사라진다···곳곳서 책과 담 쌓는 마포구

2023.06.21 16:52 입력 2023.06.21 17:00 수정

서울 마포구 경의선 책거리 내 매장에 21일 철수 안내 문구가 설치돼 있다. 조태형 기자

서울 마포구 경의선 책거리 내 매장에 21일 철수 안내 문구가 설치돼 있다. 조태형 기자

“안녕 앨리스, 안녕 책거리. 본 매장은 6월30일까지 정상운영됩니다. 그동안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경의선 책거리’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테마로 체험 부스를 운영해 온 구기윤씨는 지난 20일 이같이 적힌 부스 알림판 앞에 서서 “제가 운영해 온 부스와 책거리 모두에게 하는 중의적인 작별인사”라고 말했다.

구씨를 비롯한 경의선 책거리 부스 운영자 4명은 오는 30일을 끝으로 부스 운영을 종료해야 한다. 마포구청이 경의선 책거리를 ‘레드로드 발전소’로 바꿀 계획이기 때문이다.

경의선 책거리는 출판·인쇄소, 독립서점 등이 밀집해있는 홍대 앞 거리의 특성을 살려 홍대입구역 6번 출구부터 와우교까지 거리에 조성된 250m 구간이다. ‘좋은 책을 골라 전시한다’는 취지에서 2016년 조성됐다. 출판, 디자인 등 홍대의 인프라를 활용해 책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공간을 부흥시키겠다는 것이 당시 마포구의 목표였다.

하지만 지난해 취임한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홍대 일대를 붉은 색으로 통일하는 ‘레드로드 관광특구’로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면서 경의선 책거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시민들이 21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책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태형 기자

시민들이 21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책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태형 기자

책거리에서 부스를 운영해 온 이들은 구청의 책거리 폐지 움직임에 더해 책거리 위탁 운영자의 횡포 때문에 이중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구청은 책거리 운영을 위탁받은 A사에게 지난 2월 말 재계약 불가 통보를 했는데, A사가 이 사실을 부스 운영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1년여간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부스를 운영해 온 이동현씨는 “재계약 여부를 문의할 때마다 위탁사는 ‘구청에서 별 말 없으니 계약이 자동으로 연장될 것’이라고 일관해왔다”면서 “지난 5월25일에서야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통보해왔다”고 말했다.

이씨를 포함한 운영자들은 하반기 부스 운영계획을 다 세워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나가야 하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다. 이씨는 하반기 전시를 위해 작가들을 모두 섭외해 둔 상황이고, 구씨는 인형 제작 수강생의 수업 기간이 1달이나 남은 상황이라 당장 수업 공간을 걱정하고 있다.

이들은 책을 중심으로 미술, 연극, 전시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고 입을 모았다. 그림책 전시와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주용범씨는 “책거리에서 그림책 활성화와 책 생태계 확장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당황스럽다”면서 “매주 와서 그림책 그리기 수업을 받는 초등학생도 있고, 당장 7월에는 초등학교 강의도 나가기로 했는데 모두 물거품이 됐다”고 했다.

시민들이 21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책거리를 걷고 있다. 조태형 기자

시민들이 21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책거리를 걷고 있다. 조태형 기자

마포구는 책거리를 레드로드 발전소로 변경해 문화예술 공간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마포구 관계자는 “그간 책거리의 정체성이 모호하고 방문객이 적다는 지적이 많이 있었다”면서 “예산을 받아 하반기 중으로 레드로드 발전소를 조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포구에서는 책과 관련한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작은도서관 축소·폐관 논란이 있었고, 지난 3월부터는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의 용도변경 및 입주사 퇴거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장은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구청장에 반하는 의견을 올렸다는 이유로 파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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