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3%대로 뛰었다. 32년 만에 최대치로 폭등한 과일은 이제 언감생심 사치품이 됐다. 물가는 민생의 시작과 끝이다. 실질소득은 뒤로 가고 일자리는 버겁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니 서민들은 어찌 살라는 건지 묻게 된다.
통계청이 6일 내놓은 2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1% 상승했다. 2%대로 내려간 지 한 달 만에 3%대로 다시 올라선 것이다. 올해부터 물가가 안정될 거라 한 정부 호언은 무색해졌다. 특히 과일은 지난달 41.2%나 올라 물가 상승을 주도했다. 사과는 71%, 귤 78.1%, 배 61.1%, 토마토는 56.3% 폭등했다. 과일 앞에 다 ‘금~’자를 붙여도 무방해졌고, 훌쩍 오른 야채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후과로 생활물가지수가 3.7% 뛰었다니 시민들이 지갑 닫고 혀 내두를 장바구니 물가를 실감케 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노동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355만4000원으로 전년보다 1.1% 감소했다. 식료품·비주류음료의 가구당 실질소비지출은 전년 대비 3.4% 감소했고, 그 감소폭은 저소득층일수록 컸다. 물가는 오르고 쓸 돈은 줄자 결국 먹거리 소비부터 줄인 셈이다.
물가는 경세제민의 요체다. 이렇게 물가가 불안해서는 한국은행이 경기를 살려보려고 금리를 인하할 수 없다. 금리가 내려가야 부채 부담이 줄어 소비가 늘고 내수가 살아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는데, 민생의 첫 출구부터 막힌 격이다.
정부 설명대로, 전쟁 등 국외 여건 불안과 기후변화에 따른 작황 부진 등 불가항력적 요인이 물가를 끌어올린 부분도 있다. 하지만 달러당 1300원대의 환율 상승과 부동산 부양 정책 등이 구조적으로 물가 압력을 높인 것은 정부 경제정책 운용에도 문제가 많았음을 보여준다. 잇단 부자감세로 정부 재정이 쪼그라들면서 고물가 부작용에 대응할 여력도 뚝 떨어져 있는 것 아닌가.
먹고, 입고, 잠자는 서민들의 생활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뾰족한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 들어 ‘관권선거’ 시비를 일으키며 17번째 이어가는 민생토론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온갖 개발·교통 공약과 선심성 감세·퍼주기 정책을 쏟아냈지만, 정작 서민들의 고통이 서린 물가 얘기는 뒷전에 밀려 있다. 윤 대통령은 ‘민생 없고 토론 없는’ 민생토론회를 접고 발등의 불이 된 물가 잡기부터 전념하기 바란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