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으로 부르는 304명의 이름···퍼런 세월에서 노란 기억으로

2024.04.14 18:10 입력 2024.05.04 12:07 수정

예술로 추념하는 세월호 10주기 ‘우리가, 바다’

경기도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념전에 전시된 윤동천의 ‘노란 방’ 전시 모습. 경기도미술관 제공

경기도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념전에 전시된 윤동천의 ‘노란 방’ 전시 모습. 경기도미술관 제공

경기도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념전에 전시된 김지영의 ‘파랑 연작’ 전시 모습. 이영경 기자

경기도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념전에 전시된 김지영의 ‘파랑 연작’ 전시 모습. 이영경 기자

‘둥둥’ 묵직한 북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마치 거인이 바다의 수면을 두드리는 것 같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9년 4월부터 2015년 3월까지 팽목항에 부는 바람소리를 BPM으로 변환한 김지영의 작품이다. 전시장 입구엔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등 한국에서 일어난 32개의 재난을 그린 그림 ‘파랑 연작’(2016~2018)이 걸려있다.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른색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마치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된 한국 사회의 재난들을 켜켜이 쌓아올린 것 같다.

전시장 공간 가운데로 들어가면 하얀 방에서 홀로 춤을 추는 이의 영상을 볼 수 있다. 안무가 송주원의 ‘내 이름을 불러줘’(2024)다. 송주원은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몸으로 써낸다. 스피커에서 희생자의 이름이 한명씩 불러지면, 송주원은 몸으로 이름을 그린다. 지극한 애도의 몸짓이다.

경기도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념전에 전시된 송주원의 ‘내 이름을 불러줘’ 전시 전경. 송주원은 304명 희생자의 이름을 몸짓으로 표현했다. 이영경 기자

경기도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념전에 전시된 송주원의 ‘내 이름을 불러줘’ 전시 전경. 송주원은 304명 희생자의 이름을 몸짓으로 표현했다. 이영경 기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시는 이렇게 시각과 청각, 몸짓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 또는 이미지는 바다의 파도와 바람소리, 희생자들을 기다리며 울부짖던 이들의 몸짓과 떼놓을 수 없다.

경기도 안산시 경기도미술관에서 세월호 10주기 추념전 ‘우리가, 바다’가 열리고 있다. 1949년생 김명희 작가부터 1993년생 황예지 작가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17인(팀)의 작가가 참여해 회화·조각·영상·사운드·사진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단원고등학교와 마주보고 있으며 참사 당시 합동분향소가 있던 화랑유원지에 위치한 경기도미술관 자체가 커다란 추모의 공간이 됐다. 조민화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재난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예술로서 위로를 전하고, 공동체로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서 지난 12일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념전 ‘우리가, 바다’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영경 기자

경기도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서 지난 12일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념전 ‘우리가, 바다’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영경 기자

“몸으로 이름을 부르는 것은 기도이기도 합니다. 팔꿈치로, 척추로 이름을 쓰고 몸의 옆 면으로 획을 그렸어요. 이름을 몸 안으로 품으면서 한자 한자 써내려갔습니다. 처음엔 5시간이 걸렸는데, 이름보다 제 춤이 앞에 있더라고요. 함축적 언어로 그리며 춤을 줄여나갔더니 롱테이크로 1시간35분의 영상 완성됐습니다.” 지난 12일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송주원이 말했다.

송주원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면서 10년 동안 멈춰있던 슬픔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슬픔을 딛고 슬픔과 함께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황예지 작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황예지 작가는 세월호 참사로 선생님을 잃었다. 이영경 기자

황예지 작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황예지 작가는 세월호 참사로 선생님을 잃었다. 이영경 기자

안산에 거주하는 황예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대학생이었다. 어느날 미수습자 9인의 이름이 쓰인 현수막에서 선생님의 이름을 발견했다. 황예지는 “한 개인이 참사와 무관할 수 없다는 걸 깨달고 보폭 늦은 애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팽목항, 목포 신항, 단원고등학교, 화랑유원지 등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으로 찍었다. 세월호 참사를 10년 동안 보도해온 사진기자와 나눈 인터뷰집을 사진과 함께 전시한 ‘안개가 걷히면’(2024)을 선보인다.

“저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형제자매 세대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어요. 그때 희생자 나이와 같은 친구들이 국가에 대해 느끼는 감각이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보다 어린 친구들을 안산에서 만났는데 세월호 참사를 소화하고 처리하기 어려워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어린 세대 친구들이 안전이나 애도를 확장해서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 가운데 녹슬고 금이간 낡은 세월호를 클로즈업해서 찍은 사진이 있다. 황예지는 “나에게 세월호가 그런 느낌이다. 가까이서 보면 난처하고 난해하고 어떤 모양인지 모르겠디”고 말했다.

“세월호를 생각하면 이 사회의 기울어짐이 떠오릅니다. 배가 기울어져 있던 것처럼 애도의 방향, 생존한 사람들의 나이 모두 기울어져 있어요. 기울어짐을 수평으로 잡을 수 있는 행위들을 해보고 싶어요.”

경기도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념전에 전시된 황예지의 ‘안개가 걷히면’ 전시 모습. 이영경 기자

경기도 안산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리는 세월호참사 10주기 추념전에 전시된 황예지의 ‘안개가 걷히면’ 전시 모습. 이영경 기자

안규철의 ‘내 마음의 수평선’(2024)은 3000명 관람객이 애도의 마음으로 함께 그려나가는 작업이다. 바다 수면을 그린 7m 너비의 밑그림을 3000개의 작은 알루미늄 판넬로 나누고, 7가지 색의 레이어를 만들었다. 관람객들이 색칠공부를 하듯 색깔을 칠한 조각이 모이면 비로소 그림이 완성된다.

“관람객들은 시간과 공을 들여 각자의 판을 색칠해야 합니다. 작은 판넬 자체는 무의미해보이는 잔물결이지만, 그것들이 다 모였을 땐 큰 수평선이 나오는 경험을 같이 공유하게 되죠. 전문가가 그리는 것 같은 결과물은 아니겠지만, 참여하신 분들은 이 경험을 기억 속에 담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세월호의 기억한다는 것은 각자 경험한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간직하는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안규철 작가의 ‘내 마음의 수평선’은 3000명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작품이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영경 기자

안규철 작가의 ‘내 마음의 수평선’은 3000명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작품이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영경 기자

관람객들이 직접 알루미늄판에 정해진 색을 칠해넣은 조각들. 3000조각이 모이면 바다를 그린 안규철의 ‘내 마음의 수평선’이 완성된다. 이영경 기자

관람객들이 직접 알루미늄판에 정해진 색을 칠해넣은 조각들. 3000조각이 모이면 바다를 그린 안규철의 ‘내 마음의 수평선’이 완성된다. 이영경 기자

전시장 1층에선 윤동천의 ‘노란 방’(2017)이 관람객을 맞이하며 추모와 묵상의 시공간을 제공한다. 노란 방 안에 세월호를 상징하는 대형 리본이 설치돼 있고, 말방울 소리가 불규칙으로 울려펴진다. 말방울은 네팔에서 위험을 알리거나 멀리 있는 말을 찾기 위한 소리다.

홍순명은 팽목항에서 모은 플라스틱, 어구와 같은 사물을 엮어 형태를 만든 후 랩으로 싸고 천으로 덧씌워 위에 그림을 그려넣었다. 2014년부터 10년간 해온 작업이다. 작가는 구도하듯 팽목함의 버려진 것들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

김윤수 ‘바람의 사원’(2014~2024)은 하얀 공간 안에 잔잔히 물결치는 해수면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파도가 사람의 발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비닐을 겹겹이 쌓아올려 푸른색을 자연스레 띠게 만든 작품으로, 반복과 중첩을 통해 시공간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전시의 맥락에서 감상했을 때, 이 발자국은 마치 바다에 수장된 이들의 흔적을 나타나는 것만 같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김윤수, 〈바람의 砂原〉, 2014-2024, 비닐쌓기, 가변크기 경기도미술관 제공

김윤수, 〈바람의 砂原〉, 2014-2024, 비닐쌓기, 가변크기 경기도미술관 제공

이밖에도 일본 노토 지진을 다룬 리슨투더시티의 ‘재난 이후’, 세월호 선체와 팽목항의 흙으로 제작한 전원길의 ‘잊을 수 없는 별’이 10주기 전시를 위해 제작됐다.

미술관 로비에선 ‘4·16공방’에서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한땀한땀 제작한 유리공예, 태피스트리 작업도 볼 수 있다.

화랑유원지에는 라일락꽃 향기가 진동했다. 전시를 보고 화랑유원지를 거닐며 세월호를 기억하는 봄나들이도 좋을 듯하다. 전시는 7월14일까지.

4·16 공방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제작한 유리공예 작품이 경기도미술관 1층 로비에 전시돼 있다. 이영경 기자

4·16 공방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제작한 유리공예 작품이 경기도미술관 1층 로비에 전시돼 있다. 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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