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문제 주제로 뉴스레터 발송하는 홍슬기씨
온라인 넘어 오프라인 모임까지 기획·주최
“무수한 존재들과 안전하게 공존하고픈 마음”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혐오문제’를 우리는 얼마나 이야기하며 살고 있을까. “서로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는 민감한 주제라고 생각해요.” 나인채씨(27)가 말했다. 모여 앉은 참가자 너덧 명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시를 무대로 혐오문제 말해요’라는 제목의 모임 참여자들이 21일 경기 수원시립미술관 1층에 둘러앉았다. 이들은 여성 노동을 주제로 한 전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둘러본 다음 각자의 감상을 나눴다.
대화에 앞서 이 모임을 주최한 미디어 스타트업 모어데즈의 대표 홍슬기씨(33)가 ‘약속문’을 함께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안전하고 자유롭게, 다정한’ 모임을 위한 약속문에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자”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화가 시작되자 진솔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물류센터 콜센터에서 일한다는 해아씨(활동명·35)는 “아직도 ‘여자랑 얘기하기 싫으니까 남자 바꿔’하는 분들이 많으신데, 전시를 보며 내 노동도 저평가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비난받을 걱정 없이 안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서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홍씨는 이날 모임에서 ‘무수’라는 이름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무수한 존재들과 함께 잘 살고 싶다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그가 3년 넘게 발행해 온 혐오 이슈 뉴스레터 ‘모보이스’에서 사용하는 필명이기도 하다.
홍씨의 활동 공간은 온라인 공간인 뉴스레터에서 오프라인 모임까지 확장돼 왔다. 홍씨는 “혐오문제에 관심을 두는 이들에게 지지기반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무수’한 존재들과 잘 살고 싶은 홍슬기씨의 일일
홍씨는 여성·이주민·동물·퀴어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문제를 담은 기사를 엮어 매주 금요일 뉴스레터를 보낸다. 2021년 4월2일 첫 발행 이후 1년쯤 지났을 때 100명을 넘겼던 구독자는 현재 450여명에 달한다.
“혐오문제라고 하면 막연해 보이지만, ‘존재가 그 존재로 살기 힘들게 만드는 문제’가 곧 혐오문제라고 생각해요.” 홍씨가 말했다. 스타트업에서 마케터 업무를 하던 그는 3년 전쯤 퇴사한 후 “내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주제를 고민하다 혐오문제에 천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2020년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여학생이 일부 여성계의 반대 끝에 입학을 포기한 사건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는 “페미니스트로서, 같은 여성 문제를 얘기하던 사람들이 어떤 존재에겐 폭력을 행사할 수 있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는 여성문제뿐 아니라 퀴어·난민·비건 등 다양한 소수자의 문제를 고루 ‘내 문제’로 인식하는 이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뉴스레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뉴스레터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처음엔 ‘이 주제를 다루면 공격받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며 “뉴스레터는 적극적으로 구독을 해야 볼 수 있으니 안전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점차 자신이 그었던 선 밖으로 나서고 있다. 뉴스 전달자를 넘어 ‘무수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생각이 담긴 글을 보내기도 하고, 지난해 7월부터는 직접 오프라인 모임을 기획·주최하고 있다. 아픈 몸에 대해 글을 쓰는 모임, 수치심을 말하는 모임 등이 있었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없더라”고 말하는 홍씨는 “그 자리에서만 나눌 수 있는 대화를 들을 때 설렌다”고 했다.
요즘 그의 고민은 지속가능성이다. 프리랜서로 브랜딩 관련 외주 일을 병행하고 있는 홍씨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가난해지는 방법 외엔 없는지, 수익성이 공존할 수는 없을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구독이 무료인 뉴스레터에 후원계좌를 연 것은 최근의 일이다.
홍씨는 스스로가 큰 변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 명 한 명을 설득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혐오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을 연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