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이 부르는 소리

2011.06.01 21:48 입력 2011.06.01 23:01 수정
정진국 | 미술평론가

▲ 야성이 부르는 소리 | 잭 런던·궁리

지난 세기 초, 작은 돛배를 타고 혼자서 세계일주 항해를 해낸 프랑스 영웅 알랭 제르보가 있었다. 제르보는 잭 런던의 글에 매료되어 꿈을 꾸고 용기를 냈다. 그는 런던보다 20여년 뒤에 적도 아래의 섬들을 누비면서 키플링의 소설에 비해 잭 런던의 글이 부정확하고 “거짓말뿐”이라며 허탈해했다.

고지식한 제르보는 런던이 상상력 풍부한 소설가이며, 사실이 아니라 바로 그 상상으로 자신을 사로잡았다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어쨌든 런던은 방구석에서 구들장이나 지지면서 공상의 날개를 펴지 않았다. 그는 직접 요트를 몰기도 했고, 극지와 분쟁지역을 찾아다녔다. 콘래드, 멜빌, 어빙 등 모범이 있었다. 그런데 전 세계 독자들은 상상을 현실에 쉽게 버무리는 런던의 글을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책읽는 경향]야성이 부르는 소리

서구에서 오랜 세월 사람들은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았다. 유혹의 손짓은 아니었다. “하늘의 뜻을 따라”나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찾는 거룩한 길이었다. 이런 믿음을 특히 정복과 전쟁에 이용했다. 많은 꽃다운 젊은이가 불려나가 순교자와 순국자로 희생되었다.

잭 런던과 그의 세대도 무엇이든 찾아나서는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 세상 어딘가에 또 다른 부름이 없을까 초조해하며 방황했다.

혹독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전과 다른 점이라면 ‘후끈한 정글’ 대신 차갑게 ‘얼어붙은 정글’이었다. 기독교 유일신의 말씀에 먹먹하게 막혔던 귀가 조금 뚫릴 듯했다. 어쩌다 뚫린 것은 아니다. ‘엘도라도’에 가서 황금을 찾지 못한 시련과 환멸 끝에 조금 정신을 차릴 때였다.

개꿈에서 깨어나게 되니 비로소 진짜 개가 보였다. 그는 대자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받아 적었다. 반항아의 때늦고 소중한 자연학습이었다. 노다지보다 더 큰 보상이었다.

[책읽는 경향]야성이 부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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