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

2014.01.29 20:55
금정연 | 서평가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한길사

[오늘의 사색]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아이히만의 최종 언도가 나왔다. 정의에 대한 그의 희망들은 무산되었다. 비록 그가 최선을 다해 진실을 말했다 하더라도 법정은 그를 믿지 않았다. 법정은 그를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결코 유대인 혐오자가 아니었고, 그는 결코 인류의 살인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의 죄는 그의 복종에서 나왔고, 복종은 덕목으로 찬양된다. 그의 덕은 나치스 지도자들에 의해 오용되었다. 그리고 그는 지배집단의 일원이 아니었고, 그는 희생자였으며, 오직 지도자들만 처벌을 받아야 한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만들어졌을 뿐이다.” “나는 오류의 희생자이다”라고 아이히만은 말했다. 그는 ‘희생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세르바티우스가 한 말을 확인해주었다. 그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대신해서 고통받아야 한다는 그의 깊은 확신’이었다. 이틀 후인 1961년 12월15일 금요일 아침 9시에 사형이 선고되었다.

△ 나치 독일에서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내는 업무를 담당했던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었다. 괴물도 아니었다. 다만 입신양명을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려 들지 않았고, 그리하여 역사적인 범죄자가 되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예수를 연기하는 서툰 배우처럼 자신이 다른 이들의 죄를 대속한다고 믿었고, 기묘한 고양감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한나 아렌트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우리가 도처에서 마주하는 악들은 그렇게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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