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타인의 피 | 시몬 드 보부아르

2015.09.16 00:16
노대래 | 성균관대 석좌교수·전 공정거래위원장

사랑은 존중과 소통이다

1970년대 중반 대학 시절, 민주화 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대학서클에서도 철학이나 역사서를 자주 읽고 토론했다. 요즘처럼 컴퓨터 게임이나 노래방은 없었지만 특정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하다 보면 나름대로 기쁨이 있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타인의 피>도 당시 자주 토론되던 소설이다. 대학 초년생으로서는 작가의 섬세한 감정을 속속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애인의 죽음 앞에서, “그의 죽음이지 우리의 불행은 아니다. 그의 피지 내 피는 아니다”라고 당연한 듯 내뱉는다.

[노대래의 내 인생의 책](3) 타인의 피 | 시몬 드 보부아르

통상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면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같을 것으로 보지만 주인공은 전혀 달랐다. 아무리 가까워도 내가 아닌 남에게는 타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며, 각자 자유롭게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참다운 실존임을 가르쳐 준다. 부르주아 출신인 주인공은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아버지가 경영하는 인쇄소에 위장취업한다. 본인은 노동자처럼 행세하지만 동료들은 ‘우리와 피가 다르다’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노동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랑에 대해서도 자유로울 것을 요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의식하여 가식적인 행위를 하게 되면 서로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랑도 나의 의지로 선택하고 자유롭게 결정할 때 가능하다. 그래서 저자는 사르트르와 계약결혼을 했을 것이다.

이 책은 나의 공직관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추측해서는 안되며, 객관적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 끊임없는 소통과 설득이 없으면 타인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점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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