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싸움의 대상을 바꾼 사람들

2020.02.07 20:42 입력 2020.02.07 20:56 수정
이종산 소설가

윤이형 <큰 늑대 파랑>

[이종산의 장르를 읽다]“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싸움의 대상을 바꾼 사람들

<큰 늑대 파랑>에 수록된 윤이형의 아름다운 단편 ‘결투’는 한 여자를 대신해 광장에서 비명을 질러주는 여자의 이야기 ‘절규’(<셋을 위한 왈츠>)와 짝을 이루는 듯 느껴지는 소설이다.

‘결투’의 주인공은 하루에 이십건에서 오십건의 결투가 벌어지는 체육관에서 일한다. 주인공이 하는 일은 인포메이션 업무와 비슷하지만 이곳에서 열리는 경기는 매우 괴상하다. 그곳에서는 ‘본체’와 본체에서 분열된 ‘분리체’가 목숨을 건 결투를 한다. 누가 진짜든 이긴 쪽만이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조선시대의 복제인간 이야기 ‘옹고집전’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결투’ 역시 누가 본체인지 분열체인지 다른 사람이 봐서는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결투’는 본체가 자신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 ‘최은효’의 ‘분리체’는 자신이 본체라고 주장하지도 않고 본체를 이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아무 상관 없는 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체육관 직원에게 자신의 본체와 친구가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아무도 친구가 되어주지 않으면 자신의 본체는 계속 분열할 것이라고.

‘본체 최은효’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분리체가 자신과는 좀 달랐다고 말한다. 마트에서 샴푸를 사려고 하면 그건 잔인한 동물실험을 하는 회사 제품이라고 말리고, 새로운 가게가 생기면 그전에 그 자리에 있던 예전 가게는 어떻게 됐는지 생각하는. 설탕 한알을 놓고도 옳은가 그른가, 먹어도 되는가를 따져보는 아이.

“잘 생각해보니까 분열하기 전에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스치곤 했던 것 같아요. 이래도 되는 걸까? 이거 사도 되는 걸까? 여기 와도 되는 걸까? 그러니까 속으로만 했던 그런 아주아주 희미하고 옅은 생각들이 모이고 뭉쳐서 걔한테 들어간 것 같아요.”

잘못은 이상문학상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했는데 왜 작가가 절필을 할까? 윤이형 작가의 절필 선언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이다. 너무 결벽적인 것은 아닌가. 그러나 다시 펼쳐본 <큰 늑대 파랑>에서 잊고 있던 작품 ‘결투’를 읽으며 나는 작가의 선택을 이해하게 됐다.

[이종산의 장르를 읽다]“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싸움의 대상을 바꾼 사람들

우리는 매일 수없이 ‘이래도 되는 걸까?’하는 순간들을 지나친다. 어쩌면 ‘이래도 되는 걸까?’하는 불편함을 외면하는 데에 익숙해진 나는 이상문학상의 이상한 계약서를 보고서도 그냥 넘겼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래도 되는 걸까?’하는 생각이 오랫동안 내 안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불공정한 조건에 동의하거나, 상을 포기하라는 강요에 작가들은 수상 거부를 선택했다. 그리고 대상 수상자는 계약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책임을 진다며 절필을 선언했다.

최은효의 본체는 거듭 분리체와의 결투에서 이기지만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그녀는 계속 분열할 것이다.

이래도 되는 걸까? 묻는 마음을 매번 죽일 수 없어 싸움의 대상을 바꾼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해야만 분열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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