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행 ‘미친듯 여행’ 정신질환, 시대가 만들었나 병원이 만들었나

2021.12.10 11:00

미치광이 여행자

이언 해킹 지음, 최보문 옮김|바다출판사|432쪽|1만7800원

19세기 유행 ‘미친듯 여행’ 정신질환, 시대가 만들었나 병원이 만들었나

지방 가스회사 직원이던 알베르 다다는 여행을 떠나려는 욕구에 한번 사로잡히면 억제할 수 없었다. 가족도, 일도, 일상도 내팽개친 채 하루에 70㎞씩 걸었다. 알제, 모스크바, 콘스탄티노플로 떠돌았다. 자기가 누구인지, 왜 여행을 하는지도 몰랐다. 군대에 있을 때는 탈영해 터키까지 다녀왔다. 제정신이 돌아오면 어디에 갔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최면 상태에서는 수년 전 일도 세세하게 기억해냈다.

의사 필리프 티씨에가 프랑스 보르도의 정신병원에 스스로 찾아온 다다를 진단하고 1887년 ‘미치광이 여행자’라는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은 ‘달아나다’, ‘도주’에서 유래한 ‘둔주(遁走)’라는 진단명을 유행시켰다. 이듬해 파리에서 둔주 환자가 나타난다. 1898년 독일 의사들은 프랑스 문헌을 보곤 독일의 둔주 환자들을 찾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와 러시아에서도 사례가 나온다. 1909년 낭트 정신의학 총회를 끝으로 22년간 유행한 이 정신질환에 대한 관심은 식는다.

저자는 한 유형의 정신질환이 어떻게 출현해 자리 잡고, 특정 지역과 시대를 장악한 다음 사라지는지 파고든다. 당시가 ‘관광의 시대’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단체관광이 유행했고, 여행사도 많이 생겼다.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도 인기였다. 저자는 “대중적 관광여행은 새로운 종류의 정신질환과 행동양상이 자리잡을 수 있던 ‘생태학적 틈새’의 일부분”이라고 말한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같은 문학은 ‘삶은 여정’이란 주제를 담는다. 저자는 ‘여정’은 자기발견의 은유라고 봤다. 티씨에가 다다에 주목한 건 자신이 모험담을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에선 히스테리성 둔주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다중인격’으로 분류했다. 당시 미국은 관광사업이 기업화되지 않았다. 서부 개척을 고취하던 사회 분위기에서 떠돌이는 큰 사회문제가 아니었다.

저자의 ‘시대적 정신질환’ 연구의 핵심 주제는 ‘정신질환의 실재성’이다. 세기말 프랑스의 다중인격 진단을 받은 10명 중 9명은 여자였다. 남자 다중인격자는 어디에 있는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해리성정체성장애 등 지금 여러 정신질환이 실체가 없는, 미디어가 조장하고, 의사들이 의료화한 정신의학적 인공물은 아닌지에 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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