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1844년의 경제학 철학 수고 - 카를 마르크스

2022.01.26 20:44 입력 2022.01.26 20:50 수정
김동현 문학평론가·제주 민예총 이사장

마르크스가 사랑을 말하다니

[김동현의 내 인생의 책]④1844년의 경제학 철학 수고 - 카를 마르크스

‘임금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적대적 투쟁을 통해 결정된다’는 마르크스의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대학 1학년 겨울 무렵이었다. 박종철 출판사에서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을 내기 시작했고 이 글도 선집 1권에 수록되어 있었다. 나중에 여러 출판사에서 <경제학 철학 수고>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수고> 등의 제목으로 단행본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때는 ‘신성가족’ ‘공산주의당 선언’ 등의 여러 글과 함께 묶여 있었다.

고백하자면 전집 1권을 다 읽지 못했다. 임금노동, 노동 소외, 화폐의 본질 등 여러 부분을 뒤적이며 건너뛰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문장만은 지금도 그대로 외울 수 있다.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삼켜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야말로 갓 스물의 내가 삼켜버린 몇 안 되는 문장이 바로 마르크스의 글이었다.

“네가 사랑을 하면서도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즉 사랑으로서의 너의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네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너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너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무력하며 하나의 불행이다.”

괴테와 셰익스피어를 인용하며 화폐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사랑과 생산이라는 이질적인 단어들의 아름다운 결합에 넋을 잃었다. 그 시절 뜻대로 되지 않은 연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의 문장은 모든 시도들이 실패로 끝나버렸다고 생각했던 무력하고 불행한 스무 살의 청춘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마르크스 전공자들이 들으면 질색하겠지만 때로는 오독도 책이 주는 멋진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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