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착취 말고 ‘함께’ 살아가기···‘밤비’로 깨닫는 탈인간주의

2022.11.02 07:00 입력 2022.11.02 07:47 수정

인간-동물 관계 이론과 실천 연구로 ‘공생’ 모색하는 ‘동물의 품 안에서’

인문학·사회학·자연과학 관점들, ‘대상·자원 아닌 주체로 바라보기’

<동물의 품 안에서>(포도밭)는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의 연구 결과물을 엮은 책이다. 이 융합연구 네트워크는 인간-동물 관계의 이론과 실천의 공생을 지향하는 연구자들 모임이다. 인문학(문학), 사회과학(사회학, 인류학), 자연과학(수의학, 생태학, 동물행동학) 분야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산지니) 등을 펴낸 인류학자 권헌익(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사회인류학 석좌교수)은 ‘애니미즘의 역사’에서 “자기중심적인 인본주의, 즉 자기밖에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바꿈을 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당면해 있고, 탈바꿈해야만 하는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탈바꿈의 지평을 동물-인간 관계를 매개”로 모색한다.

권헌익은 “인간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아닌 이중적 존재 혹은 경계적 존재”인 애니메이션의 동물을 다룬다. 주목한 작품은 헝가리 출신 오스트리아 작가 펠릭스 잘텐의 1923년 작 <밤비: 숲에서의 삶>이다. 1942년 월트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해서 더 유명해진 소설이다.

권헉익은 진화인류학자 맷 카트밀이 사냥의 문화적 기원을 연구한 저작에서 애니메이션 <밤비>를 현대사의 중요한 자료로 다룬 점을 거론한다. 카트밀은 어린 밤비가 사냥꾼들의 폭력에 희생된 엄마의 주검과 대면하는 장면에 주목했다. 이 장면으로 <밤비>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반사냥 선전물”이라 불렸다. 권헌익은 “밤비의 엄마를 살생한 인간의 폭력 행위는 진화론적인 의미에서의 ‘원죄’와 흡사한 폭력성, 즉 인간종의 기원에 각인된 폭력성의 표현이 된다”고 말한다.

사냥꾼에게 총에 맞아 죽은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는 밤비 장면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반사냥 선전물”이 됐다.

사냥꾼에게 총에 맞아 죽은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는 밤비 장면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반사냥 선전물”이 됐다.

<밤비>는 “의인화된 동물의 입장과 경험을 보여 주고 그들의 시각에서 인간의 행위와 성격을 조명하는 형식”의 애니메이션이다. ‘보는 사람’이 비인간 행위자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도록 유도한다. 보는 사람은 인간 캐릭터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혹은 타자화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이라는 종과 거리를 두고 관조”하도록 이끌린다는 의미에서 “아주 초보적인 탈인간주의의 관점”이 함유됐다고 권헌익은 분석한다.

자신을 캥거루 부족이라 지칭하는 토템 등을 두고 진행한 에밀 뒤르켐의 분석을 인용하며 “산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가 나의 영혼에 참여해 나의 혼과 함께 나의 생명이 되는 놀라운 일이 된다. 결국 캥거루는 캥거루가 아니고 좁은 의미에서의 자아를 넘어서는 ‘우리’를 지칭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별자인 주체가 자신의 영혼을 구성하는 사회적 영혼, 스피리투스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이 주체에게 사회란 가족, 종족, 민족, 인류일 수 있고 나아가 지구라는 집에서 함께 사는 만 가지 생명들의 집합체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동물은 신화와 문학에서 상징적 존재로 항상 등장해 왔다. 이동신(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은 ‘동물, 감정,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에서 “사실 동물을 감정의 정제된 은유이자 공감의 매개체로 사용한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고 말한다.

동물의 감정을 알 수 있는가. 동물의 감정은 항상 추측의 대상이다. “추측은 인간 자신의 감정과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하기에 결국 인간중심주의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즉, 인간 본인의 감정을 투영해 해석한 결과라는 의미”라고 말한다.

동물권단체 ‘DxE’ 활동가들이 2021년 12월 6일 서울 영등포 한 백화점에서 7M 길이의 동물권리장전 현수막 내리고 ‘방해시위’ 형식의 동물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동물권단체 ‘DxE’ 활동가들이 2021년 12월 6일 서울 영등포 한 백화점에서 7M 길이의 동물권리장전 현수막 내리고 ‘방해시위’ 형식의 동물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동신은 문학과 문학 연구에서 “인간중심주의적이거나 유아론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동물의 감정을 추측하고, 그에 맞춰 인간의 감정을 조정해 윤리적인 인간-동물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의 가능성을 찾는다.

“문학은 동물의 재현 문제를 협상하는 여러 지점 중의 하나”(수전 맥휴)다. 이동신은 어슐러 르 귄의 <파드 연대기>와 노벨문학상 수상자 존 쿳시의 <수치> 등을 두고 분석한다. 이 작품에서 데이비드 루리라는 인물은 대학에서 쫓겨난 뒤 동물보호소에서 유기동물을 안락사시키는 일을 돕는다. 어느 일요일 저녁 보호소에서 집으로 가던 길에 차를 멈추고 하염없이 울고 만다. 이동신은 “이 장면은 많은 비평가들의 주목을 끌며 동물과의 관계를 통한 윤리적 전환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고 말한다. “비인간 동물을 향한 우리의 도덕적 책임의 무게와 중요성”(캐리 울프)을 드러낸 장면이라는 평도 나왔다.

‘도덕적 책무’는 동물복지라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동물복지 캠페인의 바탕을 이루는 ‘5가지 자유’의 원칙이 있다. 첫째는 배고픔과 갈증으로부터의 자유, 둘째는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셋째는 고통-상처 및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넷째는 정상행동을 보일 자유, 다섯째는 공포와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이다. 김환석(국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은 ‘신유물론, ANT, 그리고 동물연구’에서 “이는 곧 동물을 기계처럼 밀집 사육 시스템에 가입시키지 말고 자신의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는 연결망에 가입시켜 그 행위성과 의도성에 자유를 부여하라는 요청”이라고 말한다. “동물들에게 움직이고, 먹이를 구하고, 동족과 사귀고, 자신의 공간을 만들 자유를 부여한다는 말은 결국 기계처럼 그냥 존재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로 ‘거주’하도록 허용함을 뜻한다”고 했다.

주윤정(부산대 사회학과 조교수)은 ‘인간-동물 관계와 생태정치’에서 “동물을 단순히 대상이나 자원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려는 다양한 논의들을 살펴보며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동물권은 “동물을 주체로서 자리매김하며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개념 틀 중의 하나”다. 동물권 확장을 위한 공통의 전략 중 하나가 “동물의 고통을 가시화하고,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서 동물의 도덕적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주 전염원으로 멧돼지가 지목됐을 때 인간 중심적 세계에서 돼지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주윤정은 “피해를 입은 농민, 살처분 노동자뿐만 아니라 죽음을 맞은 돼지들의 입장 역시 헤아려야만 한다. 나아가 공장식 출산에 의존해 육식을 하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본원적 한계를 인정하되 모든 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윤정은 인간-동물의 복합적인 ‘얽힘’을 사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지구에서 상호 의존적으로 얽혀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책임감 있게 행동할 책무가 있다. 생태정치의 출발은 인간-동물 관계의 얽힘을 고민하며, 이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가시화할 것인가에서 시작한다.”

책은 ‘동물과 사회학’(박효민), ‘동물에 대한 이해와 관계 맺음’(천명선·조윤주), ‘질병 경관을 통해 본 인간-동물-병원체의 관계’(김기홍), ‘한국의 사육곰과 인간의 특이한 관계, 변화’(최태규), ‘인간이 바꾼 돌고래의 삶, 인간의 삶을 바꾼 돌고래’(김호경)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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