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의 시대’ 원양어선을 탄 환경론자

2023.06.02 15:28 입력 2023.06.02 21:39 수정

야생동물 멸종 시대 배경…기후위기 경고 소설

인간의 생사부터 조류학·해양학·고기잡이까지

베네딕트 컴버배치·클레어 포이 출연 영화화

<마이그레이션>은 작중 세상에 남은 마지막 야생 동물인 북극제비갈매기 여정을 따라간다. 사진은 북극제비갈매기의 비행 모습.  위키미디어 공용

<마이그레이션>은 작중 세상에 남은 마지막 야생 동물인 북극제비갈매기 여정을 따라간다. 사진은 북극제비갈매기의 비행 모습. 위키미디어 공용

마이그레이션

샬롯 맥커너히 지음·윤도일 옮김 | 도서출판 산 | 440쪽 | 1만6800원

소설 배경은 야생동물들이 대부분 멸종한 가까운 미래다. 사육동물이나 애완동물, 쥐와 바퀴벌레 말고는 찾을 수 없다. 야생동물들은 사냥보다 더 잔인하고 파급력이 큰 인간의 ‘두 번째 공격’ 때문에 살아남지 못했다. 화석연료 사용 등으로 기온이 올라가고,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버뮤다 슴새 서식지는 잠겼다. 모두 익사했다. 북극곰도 기온 상승으로 사라졌다. 섭씨 30도 이하에서만 살 수 있는 반지꼬리주머니는 단 한 번의 폭염으로 떼죽음했다. 코뿔소는 밀렵으로 모습을 감췄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어떠한 새의 지저귐도 들리지 않는 무덤 같은 곳으로 변했다.

소설은 전 세계 사람들이 마지막 남은 회색 늑대를 보려 스코틀랜드로 몰려들던 이후 수 년이 지난 시점 시작된다. 소설 화자는 환경보호론자이자 채식주의자인 프래니다. “바다의 흐름과 겹겹이 쌓인 얼음들, 날개를 빼곡하게 수놓은 섬세한 깃털들”에 감탄하는 이다. 그는 “언젠가 동물들이 암울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경고로서가 아니라 현재, 바로 지금처럼 우리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대규모 멸종 위기에 처했을 때” 대양을 횡단하는 철새를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모든 철새가 날아간 곳으로, 우리가 멸종시켰다고 생각한 모든 생물이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끌어 줄 것이라는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철새는 북극제비갈매기다. 북극에서 여름을 보내고 남극으로 이주한다. 산 생명체 중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용감한 철새다. 세상에 남은 마지막 개체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이 끝내 무너뜨리지 못하는 유일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조류의 리듬이다.”

프래니는 북극제비갈매기가 알을 품는 그린란드로 향한다. 이곳에서 대지 위를 날아다니는 수십 마리의 북극제비갈매기를 확인한다. 세 마리의 북극제비갈매기 다리에 새끼손톱만큼 작고 가벼운 위치추적기를 단다. 그린란드에서 남극까지 항해할 배를 찾는 일이 남았다.

“우리가 하늘과 땅의 동물을 계속해서 살육해 온 것처럼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고기를 멸종 직전까지 잡아 올렸다.” 프래니는 “무자비한 배에 바다를 더럽히는 사람들과 함께 올라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서리”를 쳤지만, 선택의 여지도, 시간도 없었다.

‘사가니’(이누이트 말로 ‘까마귀’라는 뜻)호 선장 에니스에게 먹이를 찾으려는 북극제비갈매기를 따라가면 만선을 이룰 것이라고 설득한 뒤 승선한다.

곳곳이 난관이다. 위치추적기를 단 세 마리 중 한 마리 행방은 묘연하다. 새 무리가 사라지기도 한다.

선장, 선원들과도 갈등한다. 에니스는 프래니가 “우리가 쓰레기인 것처럼” 바라보는 것 아니냐고 따진다. 에니스의 입에선 “환경 운운하는 사람들”이란 말도 나온다.

정박하는 항구엔 시위대가 나와 “학살을 멈춰라! 바다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물고기의 것이다! 살생을 멈춰라!”라고 외쳤다. ‘물고기에게 정의를, 어부에게 죽음을!’이라고 쓰인 팻말도 등장한다.

프래니 내면의 갈등과 고통도 커진다. 지도에는 없는 물고기, 갈매기, 바다표범들이 죽어 나뒹구는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산도 항해 중 발견한다. 만선의 순간 선원들 입에서 기쁨의 환호성이 터질 때 프래니는 생각한다. “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내가 정말로 여기 서서 이 살아 있는 물고기들이 도살당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까? 이들이라고 새들과 다른 게 뭐지? 내가 목숨까지 바쳐가며 보호하려고 하는 새들하고 뭐가 달라.”

이 여정을 중단해야 할 순간도 다가온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마침내” 상업용 고기잡이배를 모두 회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프래니는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과 바다에서 돈을 벌어 아이들을 되찾으려 애쓰는 에니스에게 재앙이라 생각하면서도 “굉장한 전환점”을 이룬 이 결정에 속으로 미소 지었다.

다시 바다로 나갔을 때 해양경찰은 사가니호에 불법이니 항구로 돌아오라는 무전을 날린다.

위치추적기가 달린 새도, 확인할 장비도 없어졌다. 프래니는 걱정한다. “다른 새들처럼 너희도 이 여정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어쩌지? 생의 마지막 의미를 찾으려는 내 보잘것없는 시도가 아무런 의미 없이 끝난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프래니 머릿속엔 “단순히 한 생명체의 생애 마지막 여정이 아니라 모든 종의 미래를 걸고 하는 마지막 여정이라면 결코 도중에 멈춰 서지 않겠지. 아무리 지치고 굶주리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멈추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기후위기 경고 메시지를 담은 소설이다. 프래니의 남편이자 아일랜드 국립대 교수인 나일의 입을 빌려 이 메시지를 전한다.

“그들은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폭력적이고 무차별적으로 도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인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경제성장이라고 결정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멸종 위기는 그들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대가입니다.” 나일이 프래니에게 가장 자주 한 말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역병과도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소설은 “동물들이 죽어 가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는 이곳에 홀로 남겨질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샬롯 맥커너히 ⓒ Emma Daniels

샬롯 맥커너히 ⓒ Emma Daniels

프래니와 가족의 상실과 비극에 관한 이야기다 “스스로 만들어 낸 괴물의 공포가 순간적으로 표출”된 아버지 사건, “자유를 위해, 나가기 위해 바깥공기와 하늘을 쫓아 감방의 벽을 손이 닳도록 긁어”대던 프래니의 수감 시절 등을 플래시백으로 넣었다.

삶과 죽음의 의미도 다룬다. 나일은 죽음 이후를 두고 “오직 부패와 소멸만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의 의미는? “삶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그저 재생의 순환일 뿐이라면서, 우리는 여느 동물과 마찬가지로 불가해할 정도로 짧은 생을 사는데, 그것이 인간이라고 해서 어떠한 생명체의 삶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자만심과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바람에 우리는 오히려 우리에게 삶을 제공해 주는 이 행성을 함께 공유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조류학, 해양학에 고기잡이에 관한 이야기도 녹였다.

이 소설은 ‘타임’ 선정 ‘2020년 꼭 읽어야 할 책 100선’에 꼽히는 등 여러 매체에서 호평을 받았다.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클레어 포이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출연한다.

[책과 삶]‘멸종의 시대’ 원양어선을 탄 환경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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