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해치는 사람, 돌보는 사람…당신은 어떤 어른이 되겠습니까

2023.06.12 21:41
김유진

(33) 동화 속 어린이, 소설 속 어린이

영화 <말없는 소녀>는 먼 친척 부부에게 맡겨진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는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를 원작으로 한다. 슈아픽쳐스 제공

영화 <말없는 소녀>는 먼 친척 부부에게 맡겨진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는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를 원작으로 한다. 슈아픽쳐스 제공

‘애들 먹이는 게 골치’인 부모에게서 떠밀리듯 친척집에 맡겨진 소녀 이야기
킨셀라 부부가 나눠준 든든한 애정, 아이의 일생에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될 것

어린이를 투명하게 담아낸 소설들, 어른 독자에게 재차 되묻는 질문
세상 모든 어린이에 대한 책임…회피하고 싶은 부담인가, 벅찬 희망인가

지금까지 나는 아동문학 작품‘을’ 쓰거나, 아동문학 작품‘에 대해’ 쓰는 일을 해 왔다. 동시를 창작하고, 동화와 동시를 비평하는 평론과 연구 논문을 썼다. 다시 말해 아동문학 작품을 주요 텍스트로 삼아왔다. 이 칼럼에서도 동화, 청소년소설, 그림책, 그래픽노블 등 아동청소년문학 여러 장르 안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새롭게 발견하는 눈길을 찾으려 했다. 아동문학을 창작하는 어른 작가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돌아보며 조금씩 더 투명한 눈빛을 가지려고 애쓴다. 그렇게 발견한 어린이를 작품에 담으려 한다. 이 글이 그런 어린이를 보다 많은 어른과 나누는 장이 되길 바랐다. 미처 몰랐거나 흐린 눈으로 보지 못했던 어린이의 모습이 이러해요,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동문학 작품에만 어린이가 등장하는 건 물론 아니다. 어린이가 읽는 동화뿐 아니라 어른이 읽는 소설에서도 종종 어린이 인물을 만난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대개 차이가 있다. 동화 속 어린이는 항상 어린이의 세계를 보여주는 데 비해 소설 속 어린이는 어린이의 눈에 비친 어른의 세계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나 초점화자가 어린이라 해도 그 어린이를 말하기보다 어린이라는 낯선 시선을 빌려 이 세계를 그리는 걸 우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 어린이, 청소년이던 시기를 회상하는 성장서사의 경우 작품 속 어린이는 독립적인 존재이기보단 현재 어른의 시점에서 재해석되는 존재에 가깝다.

독자가 어린이인 동화와, 독자가 어른인 소설에서 어린이 인물이 지닌 의미가 각각 다른 건 당연해 보인다. 어른 문학과 구분되는 아동문학 고유의 과제는 어린이 인물을 오롯이 어린이로 그려내 어린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한편으론 소설 역시, 오롯이 어린이를 담아내려는 지향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린이 인물이 등장하는 모든 소설이 그래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런 소설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소설이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노인 등 문학과 예술이 제대로 가시화하지 못한 이들을 새롭게 재현해 내듯 어린이 역시 지금까지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요즘 들어 어린이라는 존재를 대상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려는 태도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아가는 분위기는 그 가능성과 필요를 긍정적으로 기대하게 만든다. 아동문학과는 다른 분야에서 어른 독자를 대상으로 어린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줄곧 출간되는 현상은 이런 분위기의 반영으로 보인다.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 사계절, 2020)가 밝고 다정하게 어린이 담론을 널리 알린 이후 <어린이의 마음으로>(금정연 외, 아침달, 2022), <오늘 어린이가 내게 물었다>(김소형, 북노마드, 2022) 등 어린이의 말에 귀 기울이거나 어린이를 찬찬히 살피는 책이 출간되고 있다.

<b>마주이야기, 아이는 들어주는 만큼 자란다</b> 박문희 지음 | 보리 | 2009

마주이야기, 아이는 들어주는 만큼 자란다 박문희 지음 | 보리 | 2009

어린이를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려는 태도는 앞서 말했듯 아동문학을 하는 어른들이 오래 애써온 바였다. 20여년 전 출간된 <침 튀기지 마세요>(박문희 편, 이오덕 풀이, 고슴도치, 2000) 등 ‘마주이야기’ 시리즈도 어린이의 말을 받아 적은 책으로 유명했다. <마주이야기, 아이는 들어주는 만큼 자란다>(박문희, 보리, 2009)에서 정리됐듯 ‘마주이야기’란 ‘대화’의 순우리말로 어린이와 마주 앉아 어린이의 말을 듣고 공감하는 교육 철학이자 방법이다. 어린이의 작은 목소리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어른들이 예전부터 있었기에 댕그랑 댕그랑, 멀리서 울리는 큰 종처럼 오늘의 어린이 담론이 모두의 마음에 닿을 수 있었던 것 같다.

<b>맡겨진 소녀</b> 클레어 키건 지음·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

최근 번역 출간된 <맡겨진 소녀(Foster)>(클레어 키건, 다산책방, 2023)는 어른 독자 대상의 소설이면서도 어린이를 여느 아동문학 작품보다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아일랜드 작가인 클레어 키건은 24년간 단 4권의 책만 출간했지만 신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이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작품마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출간된 <맡겨진 소녀> 역시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하고 타임스가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됐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말없는 소녀(The Quiet Girl)>(콤 바이레드 감독, 2022)라는 제목으로 지금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맡겨진 소녀>는 ‘위탁 양육’이란 뜻인 원제 ‘Foster’에서 드러나듯 엄마의 출산을 앞두고 엄마 쪽 먼 친척 집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내는 어린이의 이야기다. 언니들과 어린 남동생 사이의 ‘나’는, 언니들보다는 돌보는 손길을 필요로 하지만 남동생보다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나이다. 집안에서 돌봄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형제 중 누군가를 남의 집에 보내야 한다면 가장 적당한(?) 나이대인 것이다. 그런데 소설 속 엄마와 아빠를 보면 아이를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 보낸 이유가 비단 이 때문은 아닌 듯하다는 생각도 든다.

엄마, 아빠는 나를 보내기에 앞서 “얼마 동안 맡아달라고 하지?” “원하는 만큼 데리고 있으면 안 되나?” “그렇게 말하면 돼?”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말해. 어차피 늘 그러잖아”(15면)라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먼 친척이라지만 낯선 사람에 불과한 이들과 지내야 하는 아이에 대한 염려나 안타까움은 비치지 않는다. 아빠는 친척집에 나를 내려주고 잠시 인사한 뒤 엄마가 챙겨준 여행 가방을 내리는 걸 잊어버린 채 그대로 차에 싣고 돌아가 버리기까지 한다. 킨셀라 아주머니 말처럼 ‘정말 덜렁거리는 사람’이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아이가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지낼지에 대한 관심이, 실은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사실이 간결한 문장 사이로 천천히 슬프게 밀려온다.

따듯한 애정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부모의 성정 때문만은 아닐 거다. 킨셀라 부부에게 “애들 먹이는 게 골치”라며 “먹을 건 엄청나게 축낼 겁니다”(18면)라고 지레 선언하는 아빠의 말에는 가족의 가난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친척집에 맡겨졌다가 집으로 돌아온 아이를 기쁘게 반기지 못할망정 아이가 감기에 걸린 걸 두고 형제들한테 옮길까 걱정부터 하는 엄마에게서는 잇단 출산과 양육에 탈진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이는 “엄마가 둘 다 원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이번에는 아들일까, 딸일까”(33면)라고 하는데, 왜 엄마는 원치 않는 아이를 계속 낳을까. 언뜻 떠오르는 건 아일랜드가 가톨릭 국가라는 사실과, 1983년 낙태를 강력히 규제하는 수정헌법 제8조가 통과된 후 2018년 국민투표로 이 법이 폐지된 역사다. 자녀를 위탁 양육 보내는 걸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는 듯 느끼는 부모를 보고 있으니 어린이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양육하는 데에는 사실 아주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의식주와 교육은 물론 따듯한 애정 또한 어린이가 필수적으로 누려야 할 자원이다. 만약 주 양육자에게 자원이 모자란다면 사회가 제공해야 한다. 국가와 지역사회, 어린이 곁을 스치는 모든 어른이 각자 가진 자원을 내어줄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양육자가 아니라 해도 어린이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고, 양육자가 아닌 이에게서 받은 자원도 어린이에게는 크나큰 자양분이 된다는 걸 다시 확인한다.

아이는 킨셀라 부부를 만났을 때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가졌다. 자기 집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낯선 집에서 사랑받지 못할까 불안하기에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17면). 하지만 킨셀라 부부의 든든한 애정은 곧 아이의 불안을 불식시킨다. 밤새 매트리스에 실수한 걸 보고 아주머니는 습기가 찼다며 도리어 자기를 탓하고 아이가 미안함을 느끼지 않게 신경 쓴다. 킨셀라 부부를 만나기 전 아이가 꿈꾼 행복의 최대한도는 50펜스 동전이었지만 아저씨는 장에서 1파운드 지폐를 준다. 아이는 여름 내내 아주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아저씨와 함께 <하이디>와 <눈의 여왕>을 읽으며 글자 공부를 한다.

아마도 아이를 향한 부모의 애정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을 테고 더 메말라 가겠지만 킨셀라 부부와 함께한 여름은 아이에게 마르지 않는 우물로 남아 일생의 힘이 될 것 같다는 믿음이 든다. 아이가 킨셀라 아저씨를 ‘아빠’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온전한 마음으로 어린이를 아끼고 돌본다면 세상 누구도 어린이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잔잔하면서도 진지하게 보여준다. 이 진중한 전망은 어른인 내가 만나는 모든 어린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부담이 아닌 다가가 누리고 싶은 희망으로 가슴 벅차게 불러낸다.

<b>밝은 밤</b>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

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

소설에서 모처럼 기쁘게 발견한 어린이를 이야기하다 보니 지금껏 읽은 최은영의 소설들에서도 어린이를 투명하고 오롯하게 바라보는 장면을 종종 만나왔던 게 떠오른다.

“희령에 도착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었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아니까. 이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자신을 해치려 하는지 돌보려 하는지.”(<밝은 밤>, 10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율랴가 말했다. “소은은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난 어릴 때부터 그런 이야기 자주 들었어요. 넌 아무것도 아니야. 다른 누구도 아닌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녀는 벽에 걸린 말린 꽃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소은, 어린애들은요, 어른이 한 말을 다 진짜로 믿고 받아들여요. 평생 동안 그 말과 함께 살아가는 거지요. (후략)”(‘먼 곳에서 온 노래’, <쇼코의 미소>, 192면)

어린이를 해치는 어른이 될지, 돌보는 어른이 될지는 어린이가 아닌 어른인 내게 달려 있다. 내가 양육하거나 교육하는 어린이에게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어린이에게 나는 해치는 사람도, 돌보는 사람도 될 수 있다. 어린이를 투명하게 담아내며 어른 독자에게 말을 거는 소설들에서 그 갈림길을 한층 예리하게 확인한다. 당신은 어린이에게 어떤 어른이 될지 재차 질문하는 듯하다.

■김유진

[김유진의 구체적인 어린이] 어린이를 해치는 사람, 돌보는 사람…당신은 어떤 어른이 되겠습니까


아동문학평론가·동시인. 동시집 <나는 보라> <뽀뽀의 힘>, 청소년시집 <그때부터 사랑>, 아동문학평론집 <언젠가는 어린이가 되겠지>를 출간했고, ‘토닥토닥 잠자리 그림책’ 시리즈를 썼다.

아동문학 작품 속에서 어른과 어린이가 좀 더 자주 만나고, 좀 더 가깝게 이어지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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