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추억낱장

머릿속까지 훑던 시원함, ‘참빗’이 그립다

1970.01.01 09:00

#1. 참빗과 달력종이. 머릿니 잡던 날

“이 눔 봐라. 우리 딸 피 쪽쪽~ 빨아먹고 통통하게 살 쪘네.”

한달에 한두 번 어머니는 딸 셋의 머릿속을 꼼꼼히 검사하셨습니다. 찬물에도 위아래가 있듯이 이 잡는 데도 순서가 있었습니다. 언니가 먼저 머리를 숙여 검사를 받으면 다음이 제 차례였습니다. 막내는 몇 십 분을 기다린 후에야 머리를 숙일 수 있었습니다.

참빗은 머릿니와 서캐를 잡을 때도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사진제공=예성참빗>

참빗은 머릿니와 서캐를 잡을 때도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사진제공=예성참빗>

참빗과 하얀 달력종이. 월례행사의 준비는 단출했습니다. 그래도 머릿니 잡는 데 이만한 도구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참빗으로 머릿속을 샅샅이 훑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아프면서 시원하다”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달력 위로 이가 후두둑 후두둑 떨어집니다. 제 머릿속에서 나오는 건데 몇 마리가 떨어졌는지 모릅니다. 그저 어머니가 참빗 꽁무니로 이를 터트려 죽일 때마다 나는 소리로 짐작할 뿐입니다. 툭. 툭. 툭. 이 장단에 맞춰 어머니는 “요 놈 참 크다”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냐” 며 추임새(?)를 덧붙이곤 하셨습니다. 머리를 맞대고 구경하던 우리도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니 이래도 머리 안 감을래?” 어머니는 이를 다 잡은 뒤에는 여지없이 등짝을 후려쳤습니다. 워낙 손이 매워 등허리는 화끈거렸지만 키득키득 웃느라 바빴습니다.

머릿니 잡는 날. 요즘에는 초등학생 6.5%가 머릿니에 ‘감염됐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창피하거나 궁색한 기억이 아닙니다. 지금도 서랍장을 열면 그 때 그 참빗과 달력종이가 잘 포개져 있을 것만 같습니다.

#2. 정성 다해야 제 모양내는 ‘참빗’

참빗은 삼단 같은 머리카락을 동백기름으로 발라 곱게 빗어 내릴 때도 제 몫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가늘고 촘촘한 빗살은 아낙네들이 머리를 정갈하게 다듬을 때 안성맞춤이었습니다. 60년대 초 너나할 것 없이 파마를 하는 통에 시장에서 밀려났지만 참빗 살이 머릿속을 훑을 때의 시원함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 많습니다.

“플라스틱 빗은 통 시원한 맛이 없어. 머리카락이 붕붕 뜨고 그냥 멍멍하잖아. 참빗은 다르지.”

6대째 참빗을 만들어온 고행주 할아버지의 모습. <사진제공=예성참빗>

6대째 참빗을 만들어온 고행주 할아버지의 모습. <사진제공=예성참빗>

6대째 전라남도 담양에서 참빗을 만들어 온 고행주(72) 할아버지.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으뜸 참빗장인이라는 뜻으로 ‘좋은 빗쟁이’라고 부릅니다. 60년 세월을 고스란히 참빗 만드는 일에만 쏟아 부으셨으니 당연합니다.

참빗 만드는 과정은 꽤 복잡합니다. 대나무를 잘라 빗살을 만들면 그만이려니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참빗을 만들 때는 질이 제일 좋은 3년생 대나무를 골라야 합니다. 같은 나무라도 마디마디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마디별로 절단합니다. 이 때 쪼갠 빗살이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대나무의 겉과 속을 분리해 속 댓가지를 빗살 크기로 잘게 쪼개줍니다. 그리고 빗살을 매끈하게 뽑아내는 ‘조름 썰기’ 과정을 거칩니다.

빗살을 만든 후에는 가느다란 빗살을 명주실로 촘촘히 엮는 작업을 합니다. 기둥 세 개를 세워놓고 빗살을 기둥 사이에 끼워 실로 기둥과 빗살을 감습니다. 실 하나 얹고 살 하나 얹는 식으로, 실이 빗살과 빗살의 간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염색과정을 거치는데 이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100℃ 이상에서 6~7시간을 끓입니다. 그래야 염료가 속까지 제대로 들어간답니다. 염색이 끝난 빗살은 태양빛에 말립니다.

다음 과정은 ‘등대 붙이기’. 참빗의 가운데 붙이는 대나무를 등대라고 하는데, 아교로 빗살에 붙인 후 온돌방에서 말립니다. 이 때도 아교의 성질을 염두에 둬 7~8시간을 천천히 말립니다. 그런 다음 빗살을 45°로 깎은 후 사포로 둥글게 문지릅니다. 그리고 쇠칼로 빗의 모난 부분을 긁어내 최대한 반질반질하고 곱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빗살의 간격을 일정하게 떼어, 보기 좋게 모양을 잡아줘야 참빗 만들기의 길고 복잡한 여정은 끝이 납니다.

“가장 공들이는 거? 딱 찍어서 말하기는 곤란하지. 톱으로 대나무를 절단하는 작업부터 사포로 문대는 끝판까지 단계, 단계마다 힘을 들이고 정성을 다해야지. 그래야 빗이 하나의 작품처럼 되는 거야.”

재료의 성질을 하나하나 따진 후에야 대나무를 풀잎 싹처럼 깎아 만드는 고집스러움. 살 하나하나에 실 하나를 엮는 정성스러움. 백번도 더 손이 가야 참빗 하나의 모양이 갖춰지는 끈기. 고 할아버지에게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옛것은 참빗 하나만이 아니었습니다.

<미디어칸 이성희기자 mong2@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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