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소나기의 다른 편에는 햇볕이 내리쬔다

2012.10.29 21:39
소설 김재희 작·김정란 그림

잡지사에 원고를 넘기고 돈암동 집으로 돌아가는데 애앵, 하는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더니 중무장한 국군을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급하게 가고 있었다. 상섭이 깜짝 놀라서 집으로 황급하게 들어서자 아내가 당황한 기색으로 붙잡았다.

“재용이 아버지, 어서 피란 가야 해요. 옆집 순례네, 뒷집 철우네도 모두 피란을 간다고 합디다.”

“뭐요? 전쟁이 일어났단 말이요?”

[소설 횡보 염상섭](17) 소나기의 다른 편에는 햇볕이 내리쬔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이 남한을 선제공격해 서울이 4일 만에 함락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상섭은 방 안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어린 것들을 지켜보았다. 피란을 가더라도 막내 아들 재현이는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아 어딘가에 맡겨두고 가야 될 형편이었다. 상섭은 결단을 내렸다.

“피란을 가긴 어디 가요? 집안 형편을 봐봐. 그냥 여기서 버텨봅시다!”

큰소리를 쳤지만 상섭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인민군이 내려와 서울을 통제하였고, 피란민들은 한강다리가 끊어져서 오도가도 못하는 고립상태에 빠졌다. 서울에 남은 상섭은 가족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숨어살다시피 하였다.

“탕! 탕!” “쾅! 쾅!”

낮밤 가리지 않고 총탄 소리가 났다. 옆집에 살던 남자가 인민군이 쏜 총알을 넓적다리를 맞아서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아내가 말하였다.

“밤에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나가다 들켜 총에 맞았다고 합디다.”

상섭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젯밤 상섭도 옆집 남자가 나가는 것을 보았다. 다만 방향이 정반대였던 것뿐이었다. 하마터면 자신이 총을 맞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재용이 아버지, 옆집 아기 엄마가 찾아왔어요.”

깊은 밤이었는데 아이를 들쳐 업은 젊은 엄마가 두 손을 비는 시늉을 하며 무릎을 꿇었다.

“선생님, 선생님. 제발 우리 아기 아빠 좀 살려주세요.”

병원도 문을 닫았고, 와줄 만한 의원이 있을 턱이 없었다. 살려달라고 사정하는 통에 상섭은 얼른 옆집으로 가보았다. 남자에게 덮인 이불을 치우자, 넓적다리의 주먹만 한 커다란 상처가 시커멓게 썩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신음조차 못하고,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이삼일을 넘기지 못할 것을 예상할 터였다.

“붕대와 소독약 있소?” 아이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하는 수 없이 집에 남아있던 소주와 무명천을 가지고 천에 묻혀 닦아내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상섭은 죽어가는 아버지를 둘러싼 다섯 살, 세 살 남매 그리고 어미 등에 업힌 갓난아기를 보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옆집 남자는 삼일 후 죽었다. 여자와 아이들이 곡하는 소리가 사무치게 들려왔다. 상섭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전쟁의 참혹함에 몸서리를 쳤다. 포탄 소리에 놀란 처녀아이들이 미쳐버려 마을을 떠돌아다녔고, 노인과 아이들이 굶어 죽어나갔다.

“살아남는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냐. 얼마나 더 참혹한 것을 보아야 되는 것이냐.”

숨소리조차 멎었던 적치하의 3개월이 지난 뒤 9월28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드디어 국군이 서울을 되찾았다. 상섭은 윤백남 등과 함께 해군에 입대하여 장교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4 후퇴로 또다시 서울이 함락되었다. 피란민들은 줄지어 남으로, 남으로 향했다. 끝없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이어지고, 차들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이들을 걸리고 이불을 등에 짊어진 가족들은 지쳐서 아무 빈집이나 들어가 쉬었다. 길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피란민들이 넘쳐났다.

훈련 중인 상섭은 도무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아내가 아이들을 이끌고 안성까지 내려갔다.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재수복한 뒤에야 상섭은 가족들을 부산에 피란시킬 수 있었다. 이어 소령으로 임관하여 해군본부 정훈감실에서 편집과장으로 복무하게 되었다.

화창한 일요일 오후 잠시 휴가를 나와 부산 앞바다를 마주 보았다. 전시였지만 비둘기에게 좁쌀을 주는 시민들은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당장 이곳에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위기 가운데서도 참으로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아, 길 이편에는 소낙비가 쏟아지는데 맞은편에는 햇발이 쨍 내리비치는 것이 참으로 눈부시구나. 잔인한 전쟁을 이겨내려면 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 소설을 쓰자.”

소나기란 뜻의 ‘취우(驟雨)’는 전쟁이 한창인 1952년 7월부터 1953년 2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앞창 유리를 사정없이 좍좍 내려 갈기는 굵다란 빗발에 룸램프를 끈 컴컴한 자동차 안의 사람들은 멀거니 밖을 내다보고 앉았으나, 창에 부딪혀 튀기는 물방울이 안개같이 자욱이 가리어 보이는 것이라고는 앞차의 빨간 데일라이트밖에 없다.”

취우의 첫머리에는 피란민과 뒤엉키는 자동차, 택시의 장사진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뒤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진다. 무역회사 사장인 김학수와 그의 비서 겸 내연의 여인 강순제, 그리고 조사 과장 신영식은 함께 피란길에 오르지만 한강다리가 끊어져서 신영식의 집에 숨어 지내게 된다. 회사는 좌익에 가담한 사원들 손에 넘어가고, 강순제는 신영식에게 마음을 빼앗겨 김학수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식량은 떨어지고 남자들은 의용군에, 여자들은 여성동맹에 참가하라고 강요 당한다. 서울이 국군에 수복되면서 의용군에 끌려간 신영식은 남하하여 강순제와 결합한다.

“염상섭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고 힘을 얻었습니다.”

독자들의 격려편지가 해군본부로 날아왔다. ‘취우’는 전쟁에 지친 시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상섭은 전시에 작가의 임무는 평화를 염원하는 의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라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드디어 1953년 7월에 휴전 협정이 조인되었다. 상섭은 중령으로 제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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