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시인 문태준

2014.10.03 21:21 입력 2014.10.03 21:31 수정
글 백가흠 | 소설가·사진 백다흠 | 은행나무 편집자

그는 눈만 껌뻑, 껌뻑였다

……/ 나무의자엔 길고 검은 적막이 이슬처럼 축축하다/ 공중에 얼비치는 야윈 빛의 얼굴/ 누구인가?/ 나는 손바닥으로 눈을 지그시 쓸어내린다/ 가을이었다/ 맨 처음 만난 가을이었다/ 함께 살자 했다. (‘빈의자’)

문태준 시인을 말함에 있어 시보다 더 잘 된 설명이 있을까. 그의 시를 읽으면 누구나 깊은 서정의 눈이 어리게 된다. 그의 시를 읽으면 일상을 사는 풍경이 사색으로 변하고 기억은 가라앉는다. 오래전 기억 속에서 멀어졌던 고향집 뒤란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이미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진 시간들, 안개처럼 희뿌연 한 것이 눈앞에 가득하다. 그가 앉아서 쉬던 의자는 가을을 품은 빈의자가 되고, 그가 바라보던 것들은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남는다. 그의 눈을 통해 우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그의 느낌을 통해 우리는 기억한다. 그는 기억을 그리는 화가다. 풍경으로만 남은 시간을 그린 그림이다.

[백(白)형제의 문인보](25) 시인 문태준

일찍이 ‘가재미’라는 시가 왔다. 가재미 시인, 우리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눈이 가재미눈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바닥에 바짝 엎드린 겸손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죽음 앞에 선 시간을 그토록 젊고 눈부신 날 보아버린 그를, 우리가 보았다. 그의 시를 읽은 사람 누구나 가재미가 되거나 우리들의 가재미를 떠올렸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가 사라졌고, 돌아왔다.

가재미구이와 마주하게 되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 같았다. 짭조름한 맛을 느끼며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누운,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누운 그의 기억을 삼켜야만 했다. 가재미시가 온 후로 그래서 밥을 먹을 때마다 짠맛이 났다. 죽음의 기억을 씹는 맛, 짜고 짰다. 그는 이미 젊은 날, 너무 많은 시간을 여행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어린 날, 너무 긴 시간을 살아버린 사람 같았다. 그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살고, 어머니를 살고 누이를 살았다. 여러 겹의 시간을 등고선 같은 무늬로 젊은 날을 살았다. 그의 시가 억겁의 시간을 누설하고 기억을 증명했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짠했다.

그를 아주 가끔 보았다. 되돌아보니 그 시간도 꽤 길어지고 있다. 그는 둥글고 통통한 사람이었으나, 언젠가부터 마르고 뾰족한 체형의 사십대가 되어 있었다. 많이 걷는다고 했다. 시인은 하루에 몇 시간이고 걸어야만 한다고 했다. 걸을 때, 다리와 다리가 무릎을 스치며 걸어온 앞과 뒤를 남기지 않을 때 상념은 사라지고 오로지 그대로 보인다고 했다. 봐야 할 것들이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시인은 사물 너머에 있는 다른 무엇을 보는 사람들이다. 그것을 우리는 서정이라고 부른다. 시인은 젓가락질을 하고 있을 때에도 그 너머의 시간을 보고, 눈앞에 다가서는 바람을 볼 때도 바람이 불어오는 쪽, 저 뒤에 앉아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것만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눈은 그래서 우리의 기억과 맞닿아있다.

그는 수수한 사람이다. 삶에 솔직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다. 오래전 한 술자리에서 그가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뭔가 망설이던 것을 본 적이 있다.

형, 무슨 일 있어요?

엉, 무슨 일이 있지.

그가 으레 하는 버릇, 눈을 깜빡, 깜빡이며 안경을 손으로 치켜올렸다. 난감한 표정이었다. 정말 큰일이 난 표정이었다.

딸한테 전화가 왔어. 오늘도 숟가락, 젓가락 안 가져오면 완전히 삐칠 거라는데.

그가 상 위에 놓여있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가 싶어서 들어보니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학교에서 실습을 하는데 쇠숟가락, 젓가락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럼, 가져가면 되죠.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었다.

우리 집 수저는 죄다 나무로 된 것밖에 없는데, 어디서 파는지도 모르겠고, 살 수가 없어. 어제부터 구하러 다니는데.

그를 뻔히 쳐다보다 나는 빵 터졌다.

그냥, 이거 들고 가세요, 형.

그럼에도 그는 망설였다. 겨우 수저 한 벌이니 가방에 슬쩍 넣어 가면 그만인데 그는 주저했다. 이틀 동안 그가 밥을 먹을 때마다 고민했을 걸 생각하니 웃겼다.

그럼, 네가 대신 훔쳐 줘. 나는 못하겠네.

훔친다는 말에 나도 잠시 머뭇거렸으나, 수저 한 벌을 스윽 그의 가방에 넣었다. 그는 착한가, 엉뚱한 사람인가 그랬다. 그럼에도 그는 좀 그랬던지, 결국은 식당 주인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공식적으로 수저 한 벌을 얻었다. 그는 정직한 사람인가, 맞았다.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는 찜찜함을 감추며 소주를 들이켰던가.

[백(白)형제의 문인보](25) 시인 문태준

그는 불교방송 PD로 일하며 오랫동안 밥벌이를 하고 있는데 성실함이야, 말로 해서 무엇할까. 새벽까지 술자리에 앉아 있는 그를 걱정한 게 여러 번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 같은 백수가 매일 아침 출근하는 심정을 헤아릴 방법도 없으니, 그저 집까지 잘 내려주고 가는 게 그에 대한 안쓰러움을 표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갑자기 춘천으로 발령이 나서 한동안은 그가 춘천으로 매일 출퇴근을 한 적도 있는데, 그가 참 대단하게 보였다. 나 같았으면 바로 회사를 박차고 나왔을 테지만, 그는 묵묵히 몇 개월을 버텼다. 그는 참을성이 좋은 사람인가, 그랬다. 그가 인내한 대로 다시 서울로 얼마 되지 않아 돌아왔다.

작년인가 인사동의 모임에 갔다가 그를 우연히 만났다. 거리에 비가 청승맞게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식당에서 잠시 나와 비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에게도 많은 일이 닥친 해였다. 직장을 옮겨보려다 일이 잘 안 된 터였다. 그 씁쓸함과 실망함은 나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어서, 우리는 오래도록 비에 빗겨 서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처연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짧은 말들이 오고 갔다.

비겁하게 살지 않으면 언제나 상처받는 것 같아요. 형, 저는 조금 비열해지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별말이 없었다. 상심이 크고 상실감도 대단했을 테지만 그는 여전했다. 식당에 널린 젓가락 한 벌도 슬쩍 가방에 넣지 못하는 사람인데, 욕심도 좀 순정하면 어떤가, 나는 화도 좀 났다. 당신, 일인데도 그는 그저 비를 바라보며 눈만 껌뻑, 껌뻑였다.

▲ 시인 문태준

1970년 경북 김천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곳>이 있다. 시 해설집으로는 <포옹>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 <우리 가슴에 꽃핀 세계의 명시 1>이 있다.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