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평론가 김형중

2014.10.17 20:56 입력 2014.10.17 21:13 수정
글 백가흠 | 소설가·사진 백다흠 | 은행나무 편집자

글도 사람도 변할 줄 몰라 그를 사랑하는가보다

오래도록 알고 지내는 사람과의 맨 처음을 온전히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사랑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화가 쌓이고 관계에 대해 무뎌지며 때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도 그 사람과의 관계나 감정이 변하지 않는다면 감히 우리는 그런 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평론가 김형중을 사랑한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고백하자면 남자에게 이런 사랑을 고백하는 게 쉽지 않음을 알아주시라. 문인보를 연재하며 두 번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아니면 어떤가. 어차피 나는 마음이 쉬운 사람인데.

[백(白)형제의 문인보](27) 평론가 김형중

기억으로 나는 그를 2003년 말 한 출판사 송년회에서 처음 보았다. 물어물어 그가 앉은 자리로 찾아갔다. 어떤 이가 김형중인지 묻자 그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했다. 볼이 좀 통통하고 눈썹이 짙고 눈이 부리부리한 사람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300여 명은 거뜬히 모인 사람 중에 그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지만 금방 찾았다. 그는 들은 대로였다. 덧붙이자면 그는 쌍꺼풀도 짙었다. 큰 눈 때문인지 첫인상은 겁이 많아 보였다. 좀 순하고 착해 보이기도 했다.

내가 그를 찾아간 이유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 나올지도 알 수 없는 책의 해설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발표한 소설이라야 고작 세 편이 전부였다. 한 권 분량의 소설이 모이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지도 몰랐다. 그의 미문과 진심을 내 책에도 넣고 싶었다. 그는 오래 기다려주었고 응원을 주었다. 2년 후에 첫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해설을 그가 써주었다.

그를 볼 때마다 감성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훌륭한 평론가들은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 시가 됐든 소설이 됐든 비평이 됐든 문학은 이성적인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비평이야말로 참 재미없다. 비평이 텍스트에 대한 해설로 남는 경우는 허다하다. 해설을 정말 해설로 쓰는 비평이야말로 꽝이다. 작자들이 보고 있는 세계와 똑같은 것만 보고 있다면 비평가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로지 텍스트에만 기생하는 죽은 비평이다. 그에게는 자기만의 시선이 있다. 진심과 연민이 그득하다. 세계에 대해, 또 인물에 대해 그에게만 있는 눈이 있다. 자기 글을 쓰는 평론가가 드물기에 그의 존재 또한 귀하다. 무엇보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사람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의 걱정이 하나 있다. 그는 소문난 애주가이다. 오래전 그가 거의 매일 저녁을 먹으며 반주를 하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반주의 양이 반주가 아니었기 때문. 그는 하루가 저물 때면 쓸쓸하기 때문에 마신다고 했다. 어린아이들의 재롱을 보고 있자면, 사랑스러운 아내를 바라보고 있자면, 좋은 텍스트를 발견하게 되면 그는 쓸쓸함을 감출 길 없다, 했다. 행복하고 좋은데 그게 그렇게 쓸쓸하다, 했다. 반주는 하루의 감사함과 일상의 고요함에 대한 제의 같은 것. 그를 아는 사람은 그가 얼마나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인지 모두 안다. 술은 가족과 문학,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대한 숙연함을 표하는 부끄럼 많은 그의 방식일 것이다. 성스러운 하루에 대한 혼자만의 의식일 것이다.

[백(白)형제의 문인보](27) 평론가 김형중

그에게 나는 좋은 후배는 아닌 것 같다. 십년 전? 혹은 그 안쪽의 오래전 일이다. 그가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다. 통통했던 볼이 사라졌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해 쓸개를 떼어내는 작은 수술도 받았다고 했다. 모든 게 좋아하는 술이 일으킨 반란이라고 했다. 나는 한 선배시인과 함께 전남 광주로 그를 보러 갔다. 물론 그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다른 일 때문에 지나가다 들른 게 아니라 순전히 그를 보러 갔다. 그게 그에게는 부담이 됐을 것이다. 미처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들은 대로 그는 수척한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많이 아파 보였으나 그는 정말 괜찮다고 했다. 퇴원한 지 하루 됐다고 했다. 정말 괜찮은지 묻고 또 물었고, 그는 정말 다 나았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대답과는 달리 그는 무척 아파보였다. 서로 반가워서 어쩔 줄 몰랐으나 남자 셋이 만나니 정말 할 일이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저녁을 먹고 나니, 안부를 묻고 듣고 나니 카페라도 가서 차를 마셔야 하나 난감해졌다. 우리들은 오랜만이었고 모두 술만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근처에 정말 맛있는 수제맥주집이 있어요. 직접 발효시키고 맛을 내는데 훌륭해요.

형, 어제 퇴원했다면서요.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술 한 잔도 안 하고 가요. 얼마나 사람들이 그리웠다고요. 제가 서운해서 안돼요. 저는 어차피 못 마시니까 구경만 할 거니까 딱, 한 잔만 해요.

반갑기도 하면서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그가 이끄니 그냥 따라갔다. 그의 말대로 맥주 맛이 일품이었다. 그가 정말 술을 마시고 싶었다기보다는 순전히 우리 때문이었다. 먼 길 와준 우리를 배려해서 그런 것을 당시에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이 약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부럽고 야속하네요. 저도 딱 한 모금만 마실까 봐요.

결국 그도 한 잔 했다. 표정이 밝아졌다. 으레 그런 것처럼 서로의 얘기도 많아졌고 즐거웠다.

나, 술 마시면 안되는데.

그가 말했던가. 하지만 그의 건강은 뒷전이고 계속 그에게 술을 권했다. 쓸개를 떼어낸 사람에게 술을 먹였다. 첫 잔만 기억하지 그가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는 기억에 없다. 몇 차를 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깨어보니 허름한 여관에 선배 시인과 둘이었다. 가을이었던가. 전어를 먹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해장국을 먹고 헤어진 것 같기도 하다. 뒤에 들으니 그날 일로 그는 여간 고생을 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는 아프고 마음 약한 그를 꼬여내 악마의 음료를 들이키게 한 사람들이 되었다. 사실이었다. 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하면 지금도 미안해 죽겠다. 문안을 와서 걱정만 더 안기고 간 꼴이었다. 우리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그의 아내를 생각하면 얼굴을 못 들겠다. 이후 그가 아프거나 몸이 안 좋다, 하면 자꾸 그날이 떠오른다. 앞으로도 그가 아프게 된다면 그날 때문이라 여기겠다. 그러니 건강하시라.

요즘은 그를 페이스북을 통해 자주 본다. 그의 사진 실력은 수준급인데 그가 올린 사진을 보며 드는 무례한 생각 하나는 그가 시나 소설도 쓰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의 감성은 따뜻하고 정이 넘친다. 사물에 대해, 사람에 대해 그의 시선은 겸손하다. 결론은 그래서 그는 좋은 글을 쓰는 비평가라는 것.

▲ 김형중

1968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평론 <세 겹의 저주-최윤, ‘저기 소리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 다시 읽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조선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소설과 정신분석>, 평론집 <켄타우로스의 비평> <변장한 유토피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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