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인류를 찾아 투쟁적 실험…‘성형수술 퍼포먼스’ 작가 ‘오를랑 테크노바디’전

2016.06.20 21:31 입력 2016.06.20 21:34 수정
한윤정 선임기자

오를랑은 성녀와 창녀라는 관습적 여성성을 해체하는 작업에서 시작해 성형수술로 자신의 몸을 재구성하는 시기를 거쳐 증강현실, 비디오게임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인체와 기계를 결합시킨 작업으로 나아갔다.  성곡미술관 제공

오를랑은 성녀와 창녀라는 관습적 여성성을 해체하는 작업에서 시작해 성형수술로 자신의 몸을 재구성하는 시기를 거쳐 증강현실, 비디오게임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인체와 기계를 결합시킨 작업으로 나아갔다. 성곡미술관 제공

‘오를랑 테크노바디 1966~2016’이 열리는 서울 성곡미술관에 지난 16일 나타난 프랑스 여성작가 오를랑(69)은 매우 특별한 모습이었다. 치켜세운 머리카락은 흰색과 검은색으로 반씩 염색했고 눈썹과 이마 사이에는 초승달 모양으로 튀어나온 뿔이 있었다. 그가 성형외과에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아름답지 않은 모습’을 주문해 만든 뿔은 반짝이 화장으로 더욱 두드러졌다. 신체를 직접 이용한 퍼포먼스를 하고 이를 사진이나 비디오로 찍어 전시해온 그는 초상 사진도 철저히 연출한다.

“제 피부에 이식된 기계에 배터리를 넣으면 어떤 외국어도 할 수 있는데 서울에 오니까 그 기계를 찾을 수 없네요.”

이런 농담은 최근 관심사를 반영한다. 오를랑은 3D 증강현실이나 컴퓨터 게임에 자신의 캐릭터를 넣어 예술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중국 경극의 가면 속 얼굴은 오를랑인데 얼굴과 배경의 무늬가 똑같다. 스마트폰에 앱을 깔고 이 사진을 촬영하면 가면을 쓴 인물이 춤을 춘다. 다른 작품에서는 관객이 컨트롤러를 조종할 때마다 게임 화면에서 오를랑이 뛰어다닌다. 그가 추구하는 ‘테크노바디’는 첨단기술과 인체를 결합시킴으로써 과거 인간의 정체성으로부터 탈피해 무한히 능력을 확장시킨 새로운 인류를 가리킨다.

“나는 인간, 특히 여성의 몸에 사회가 가하는 압력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예술을 시작했다”는 그의 작업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향 생테티엔의 미술학교에 1년 정도 다녔으나 학교 교육이 보수적이라고 생각해 그만둔 뒤 17세인 1964년 <느리게 걷기> 퍼포먼스로 데뷔한다. 바쁘게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부러 매우 느리게 걸음으로써 사회적 규범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같은 해 <사랑하는 자아를 출산하는 오를랑>도 발표했다. 자신의 성기에서 팔 없는 마네킹이 나오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오를랑이란 이름까지 만들었다. 오를랑(ORLAN)이란 금(金·or)과 느리다(lent)를 결합한 말인데 남성형(lent)도, 여성형(lente)도 아닌 어미를 취하며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대문자로 표기한다.

1970년대 오를랑은 관습에 저항하는 페미니스트 예술가로 명성을 얻는다. <예술가의 키스>는 몸에 갑옷 같은 장치를 걸치고 위쪽 입구에 5프랑을 넣으면 동전이 성기 쪽으로 떨어지면서 관객에게 키스를 해주는 퍼포먼스이고, <혼수용 천으로 벌인 우연한 스트립쇼>는 성모마리아의 모습으로 홑이불을 온몸에 감쌌다가 점차 나체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예술가와 창녀, 성녀와 창녀 사이의 관습적 구분을 폐기하려는 시도다.

그를 특히 유명하게 만든 것은 <성 오를랑의 탄생>이란 제목으로 1990년부터 1993년까지 9차례에 걸쳐 받은 성형수술이다. 이 수술을 통해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턱,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이마 등 서구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는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를 모두 자신의 얼굴에 합성함으로써 미적 기준의 모순을 밝히고자 했다.

“DNA는 나의 라이벌이며 신 또한 마찬가지다. 나의 작업은 주어진 것, 타고난 것에 맞서는 투쟁이다”라고 주장하는 그가 외과수술에서 생명공학으로 나아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1978년 자신이 기획한 리옹 퍼포먼스 페스티벌 중 자궁 외 임신으로 응급수술을 받게 되자 수술 장면을 촬영한 비디오를 리옹 현대미술관으로 보내 전시했으며, 더 이상 성형수술을 할 수 없게 되자 호주 과학기술연구소와 협업해 자신의 피부세포와 흑인의 태아세포, 포유동물의 세포를 교배해 배양한 세포를 영상으로 담아 생물학적 융합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동시대에 가능한 첨단의 체험을 했다는 점에서 성형수술 퍼포먼스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하나의 온전한 신체가 아닌 복수의 신체가 존재한다고 보는데 경극, 변검에서 이런 사고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오를랑의 50년에 걸친 작품을 보여주는 회고전이다. 그는 프랑스 문화부 장관의 문화예술 공로훈장을 두 차례(2003, 2010) 받았으며 퐁피두센터는 <예술가의 키스>(1977)를 ‘20세기의 걸작 100’으로 선정했다. 전시는 10월2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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