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하되 간섭 안 한다’ 문화계 독립성 보장·권익보호 제도화

2017.05.21 22:38 입력 2017.05.21 23:22 수정

블랙리스트 규명 시작으로 관련 기관들과 ‘공정성 협약’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에서 활동한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이 지난 3월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캠핑촌 해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은 새 정부에 ‘문화행정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혁신’을 제안하면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등을 요구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이미지 크게 보기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에서 활동한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이 지난 3월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캠핑촌 해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은 새 정부에 ‘문화행정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혁신’을 제안하면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등을 요구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문재인 대통령의 문화예술정책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등 이전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선결과제 이행 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영화진흥위원회 등 문화예술지원기관의 독립성·자율성 확보를 위한 조치들이 순차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문화예술지원에 관한 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고히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화예술계는 “이전 정부에서 기존의 원칙과 제도를 무시하고 악용했기 때문에 새 정부의 의지와 실천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문화예술인들과의 만남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정책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우선 문화예술지원기관, 문화계와 함께 ‘공정성 협약’을 체결한다. 제도적으로는 지원기관들의 위원장 선출을 위원회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 심사위원회 풀 제도,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해 지원심의의 공정성·투명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안정적 재원 마련을 위한 법제화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캠프 문화예술정책위원회 위원이었던 양현미 상명대 교수는 “예술가들이 ‘창조적 노동’에 대한 공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예술인 노동·복지 제도를 강화하는 것, 문화업계간 공정한 거래 및 경쟁이 이뤄질 만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무게 중심을 뒀다”고 밝혔다. 또한 시민들의 문화향유권을 넓히는 ‘생활문화 시대’ 공약도 주요 사항이다.

그동안 문화예술인들은 노동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최근 불거진 영화·방송계에서 저임금·과잉노동에 노출된 스태프들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정부는 기관이나 기업과 계약을 맺고 예술활동을 하는 프리랜서 예술가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제도 마련에 나선다. 또 ‘자영 예술가’들의 노동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도록 표준보수지급 기준도 만든다. 새 정부는 사회보장 차원에서 비정규 예술인을 위한 실업급여제도 도입도 추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술인복지금고를 신설해 긴급생활자금, 상해·재난지원 등 긴급지원시스템을 구축한다. 청년예술인을 위해 유휴공간을 활용해 창작공간을 조성하고, 예술인 일자리 확충에도 나선다. 예술인 일자리는 예술교육·생활문화·지역문화재생 등 3가지 사업과 연계해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예술인들의 권익 보호 문제에 목소리를 내온 예술인소셜유니온의 하장호 운영위원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들에 대응하는 대책들을 공약에서 대부분 수용했다”면서 “이러한 정책들을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실현만 한다면 예술현장에서 와닿는 것도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1인 창조기업, 중소제작사에 대한 문화콘텐츠 산업 정책금융제도도 확대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을 통해 ‘콘텐츠 시장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남용이나 담합 등을 금지할 것을 예고했다. 대중음악계에선 “음원시장은 유통사업자의 배만 불리고 창작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영화계에선 “대기업의 투자·제작·배급·상영 등 독과점 현상을 개선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지는 않았지만, 새 정부에서 정책적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공약집에는 “일상에서 문화를 누리는 ‘생활문화 시대’를 열겠다”는 비전도 나와있다. 구체적으로는 문화·체육·관광 지출비의 조세 감면 제도 도입, 통합문화이용권(문화누리카드)의 사용처 확대 및 지원금액 현실화,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확대, 동네 생활문화 환경 조성 및 동아리 활성화 등이 제시됐다. 이 밖에 문화재 발굴과 문화재 보존·활용에 관한 국가 지원의 확대, 4차산업과 관련한 융합콘텐츠 산업 지원, 지역문화진흥기금 확충 지역간 문화격차 해소 등도 담겼다.

문화예술계는 “문화행정의 전면적인 혁신”을 요구하면서 민관 협치기구인 ‘문화정책 혁신과 비전 위원회’(가칭)를 구성해 문화예술의 정책 방향과 내용을 협의해나가자고 제안한 바 있다. 대선 기간 민주당 캠프에서도 이런 제안을 수용했다. 따라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차관 인선이 이뤄진 직후부터 민관 공동으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새 정부에선 ‘협치’와 ‘지역화’ 정책을 문화행정의 철학과 원칙으로 확립해야 한다”면서 “공약집에 담긴 공약별로 구체화하는 작업이 진행될 텐데, 협치기구를 통해 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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