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업 걸’에서 ‘베이글녀’로···‘음탕한 시선’에의 면피?

2018.11.15 11:49 입력 2018.11.15 11:52 수정

메릴린 먼로가 주한 미군 위문 공연을 하고 있다. 1954.  / 퍼블릭 도메인

메릴린 먼로가 주한 미군 위문 공연을 하고 있다. 1954. / 퍼블릭 도메인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Gentlemen Prefer Blondes>(1953). 병사들은 금발에 열광했다. 한국전쟁 휴전 이듬해인 1954년 2월12일 대구 동촌비행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뉴욕 양키스의 간판스타 조 디마지오와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던 관능의 여신 메릴린 먼로가 주한미군 위문을 위해 한국을 찾은 것이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그녀의 옷차림은 과감했다. 몸매가 드러나는 얇은 원피스 차림으로 야외 무대에 오른 메릴린 먼로는 활짝 웃으며 병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를 간직하고 싶은 사내들의 카메라에서 번쩍 번쩍 플래시가 터졌다. 사내들의 시선을 즐기는 그녀의 모습은 병사들의 가슴속에 사진으로 꽂혔다.

영화 ‘로마의 휴일’ 스틸 컷. 1953. / 퍼블릭 도메인

영화 ‘로마의 휴일’ 스틸 컷. 1953. / 퍼블릭 도메인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1953)에서 숙소에서 탈출한 앤 공주, 오드리 헵번이 거리에서 잠이 들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운 것은 왕자가 아닌 미국 기자 그레고리 펙. 오드리 헵번이 왕실의 공주임을 알아차린 그레고리 펙은 특종을 노리며 로마 시내를 활보하는 공주를 사진 찍는다. 진실의 입에 손을 넣었던 기자는 손이 잘릴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오드리 헵번이 먹던 젤라토 아이스크림 때문일까? 순진한 공주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레고리 펙의 마음이 살살 녹아내렸다. 기자회견장에서 다시 만난 그레고리 펙은 그녀의 사진들을 공주에게 넘겨주며 로맨스를 마무리 짓는다.

<메릴린 헵번 몽타주> 잡지 ‘뉴욕 선데이 뉴스’ 표지 메릴린 먼로 사진(1952)과 파라마운트 소속 버드 프레이커가 찍은 오드리 헵번 사진 레이어 합성. ⓒ김창길

<메릴린 헵번 몽타주> 잡지 ‘뉴욕 선데이 뉴스’ 표지 메릴린 먼로 사진(1952)과 파라마운트 소속 버드 프레이커가 찍은 오드리 헵번 사진 레이어 합성. ⓒ김창길

1950년대를 풍미했던 두 여자 배우의 이미지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 복고풍이라는 유행의 전략으로 환생한 것은 아니다. 시대의 욕망에 맞춤하는 요소들이 선택돼 변형됐다. 메릴린 먼로의 이미지에서 육감적인 몸이, 오드리 헵번에게서는 천상 소녀 같은 얼굴이 선택됐다. 그리고 하나로 합쳐졌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베이글녀다. 앳된 얼굴(베이비 페이스)로 요염한 몸매(글래머)를 자랑하는 여성들을 부르는 신조어 ‘베이글녀’ 대신 ‘메릴린 헵번’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언뜻 합성사진처럼 보일 수도 있는 베이글녀의 이미지들이 디지털 세상에 출몰한다.

검색창에 ‘베이글녀’라는 단어를 작동시켜본다. ‘아찔한 볼륨감’ ‘풍만함’ ‘탄탄한 복근’ ‘콜라병 힙 라인’ 등 몸매를 묘사하는, 정제되지 않은 단어들로 제목을 단 기사들이 줄 지어 튀어나온다. 물론, 청순한 소녀 같은 얼굴이 기본으로 깔린다. 기사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다. 셀카 공개, 몸매 관리 비결 등이 첨가된 장문의 사진 캡션 수준이다. 이미지 항목에서 베이글녀를 검색해본다. 베이글녀의 얼굴들은 확실히 20대 초반의 느낌을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그녀들의 몸은 청순함과 대조적이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몸뚱이들이다.

상반된 이미지를 한몸에 간직한 베이글녀가 디지털 매체에서 추앙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타협 불가능해 보이는 ‘청순함’과 ‘섹시함’은 어떻게 하나로 뒤섞일 수 있을까? 일단 두 이미지를 하나씩 따로 떠올려보며 생각해봤다. 글머리에 메릴린 먼로와 오드리 헵번의 이미지를 소개한 이유다.

주한 미군 위문 공연을 위해 방한한 메릴린 먼로가 군용 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1954. / 퍼블릭 도메인

주한 미군 위문 공연을 위해 방한한 메릴린 먼로가 군용 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1954. / 퍼블릭 도메인

인터넷에서 검색한 두 여배우의 이미지를 살펴봤다. 젊은 날의 오드리 헵번은 시대를 초월하는 청순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메릴린 먼로의 사진들은 오드리 헵번을 바라보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메릴린 먼로가 오드리 헵번만큼 아름답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다. 메릴린 먼로의 사진들을 구경하는 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직장 동료가 내 모습을 본다면 뭐라 생각할까? 부끄러움도 모르는 엉큼한 40대 중반의 아저씨로 생각하지 않을까? 베이글녀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힌트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베이글녀의 이미지는 메릴린 먼로처럼 섹시한 여성을 바라보게끔 만드는 시선의 전략이 숨어 있다. 베이글녀의 몸은 디지털 미디어 기사들의 제목처럼 확실히 아찔한 느낌이다. 풍만한 가슴과 탄탄한 엉덩이를 태연하게 구경하기에는 어색하다. 이렇게 그녀를 빤히 바라보는 것에 주저하는 남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바로 베이글녀의 앳된 얼굴이다. 자신의 몸에서 시선을 떼어내려는 남성들에게 베이글녀의 얼굴은 이렇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요, 고개 들어 봐요, 저는 아직 어리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라니까요.’ 남자의 시선은 위아래로 이동한다. 베이글녀의 몸을 보며 쿵쾅대는 심장을 소녀 같은 얼굴을 바라보며 진정시킨다. 베이글녀를 구경하는 시선의 이동은 그렇게 반복된다.

오스카상 받은 오드리 헵번. 1954. / 퍼블릭 도메인

오스카상 받은 오드리 헵번. 1954. / 퍼블릭 도메인

베이글녀를 바라보는 여성들의 시선은 어떨까? 솔직히 이미 40년 이상을 남자로 살아온 내가 대답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다만 다른 사람의 사유 방식을 엿보며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을 뿐이다. 미술평론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바라보는 기존의 방식을 거부하고 <다른 방식으로 보기>(열화당)를 제안했다. 그가 알아냈던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남자들은 행동하고 여자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는 여자를 본다. 여자는 남자가 보는 그녀 자신을 관찰한다. 대부분의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결정된다. 여자 자신 속의 감시자는 남성이다. 그리고 감시당하는 것은 여성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그녀 자신을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특히 시선의 대상으로.”

메릴린 먼로와 오드리 헵번은 어떤 모습으로 남자들 시선의 대상이 됐을까? 남자들은 그녀들의 사진을 핀으로 꽂아 놓고 구경했다. 사물함 혹은 벽에 핀으로 꽂아 놓는 이른바 ‘핀업 걸(pin-up girl)’의 모습이다. 핀업 걸의 이미지는 지금의 베이글녀처럼 연약함과 섹시함의 이미지가 뒤섞여 혼재돼 있었다. 시대 분위기에 따라 강조되는 이미지가 바뀌면서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깁슨 걸’과 ‘바가스 걸’이 대표적인데, 명칭이 다른 만큼 부각된 이미지도 조금씩 달랐다.

‘깁슨 걸’, 찰스 다나 깁슨(Charles Dana Gibson). 1898. / 퍼블릭 도메인

‘깁슨 걸’, 찰스 다나 깁슨(Charles Dana Gibson). 1898. / 퍼블릭 도메인

최초의 핀업 걸들은 그녀들의 사진이나 초상을 그녀들 스스로 꽂아 놓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 미국 극장가에서 유행했던 버라이어티 쇼의 막간극인 ‘벌레스크(burlesque)’에 출연했던 여배우들이 핀업 걸의 원조다.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었던 벌레스크 여배우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이미지를 홍보해야 했다. 출연자 대기실 거울에 꽂아 놓는 여배우들의 사진이 핀업 걸 사진의 시초였다. 지명도가 낮은 여배우들의 생계를 위한 방편이었지만, 여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이미지를 관리하고 홍보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여성상의 시작을 내다볼 수 있었다.

핀에 꽂힌 여자들의 이미지는 19세기 말 ‘깁슨 걸(Gibson girl)’이라 불리는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펜화가 찰스 다나 깁슨이 그린 그림에서 깁슨 걸이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최신 유행을 좇으며 잘록하게 허리를 졸라맨 드레스를 입고 곱슬머리를 말아올린 깁슨 걸의 모습은 지방시의 검은 드레스를 입은 오드리 헵번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활달한 그녀들은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오토바이를 타듯이 자전거를 타고 뉴욕 센트럴파크를 활주하는, 당시에는 다소 과감한 스포츠 활동도 즐겼다. 중상류층 출신이라 고등교육을 받았던 깁슨 걸들은 남녀평등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그녀들의 성적 정체성을 표현하려 했다. 적극적인 로맨스를 즐길 줄 아는 이른바 신여성의 모습이 뒤섞여 있었다. 결혼은 활달한 그녀들에게 인생의 종말을 의미했다.

‘바가스 걸’,  영화(The Sin of Nora  Moran) 포스터. 알프레드 바가스(Alfred Vargas). 1934. / 퍼블릭 도메인

‘바가스 걸’, 영화(The Sin of Nora Moran) 포스터. 알프레드 바가스(Alfred Vargas). 1934. / 퍼블릭 도메인

20세기 초에 발발한 두 번의 세계대전은 깁슨 걸의 적극적인 여성상을 자극적으로 변모시켰다. 대표적인 이미지는 남성잡지 에스콰이어에 실렸던 알베르토 바가스의 그림들이었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바가스 걸(Vargas girl)’이라고 불렀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옷차림이다. 속옷 수준으로 핀업 걸의 차림새가 야해졌는데, 외로운 전장의 병사들에게 인기였다. 900만장에 이르는 ‘바가스 걸’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사물함에 꽂힐 정도였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방의 벽을 장식하는 리타 헤이워드처럼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할리우드의 여배우들도 바가스 걸을 시기하며 사진을 찍었다. 메릴린 먼로도 바가스 걸의 이미지에 합당한 영화배우였다.

세계대전이 종식됐지만 육감적인 핀업 걸의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화됐다. 시선의 초점은 얼굴보다는 몸에 맞추어졌다. 가터벨트로 치장된 허벅지와 둔부가 강조됐고, 아슬아슬한 가슴 노출은 과일인 포도 따위로 가렸다. 요상한 자세를 취하며 웃고 있는 핀업 걸들의 얼굴은 ‘백치미’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관능적인 이미지가 부각된 바가스 걸의 이미지는 기다란 토끼 귀를 단 소녀, 플레이보이지의 ‘바니 걸(bunny girl)’이 이어받는다.

미군 막사에 붙은 핀업 걸 사진들. 1952. /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미군 막사에 붙은 핀업 걸 사진들. 1952. /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백치미의 여왕이라 불리는 메릴린 먼로가 말했다.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의 대사다. 그녀가 직접 제안한 대사라고 한다.

“중요한 순간에는 똑똑해질 수 있어요. 하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그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죠.”

스크린 밖의 메릴린 먼로는 육감적 백치미와 거리가 멀었다. 영화평론가 유지나씨는 그녀를 ‘연기를 통해 자기혁신을 꾀한 자아실현의 의지를 갖춘 철학적인 시인 같은 지성파 배우, 대중이 만들어준 스타의 공익적 기능을 간파한 동시에 장식품이 되길 거부하는 지성’을 갖춘 여성으로 묘사한다. 그녀의 마지막 인터뷰인 라이프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사람들은 날 상품으로만 여긴다. … 나는 진실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사람들의 환상 속에 머무는 건 기쁜 일이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상품으로 여기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여긴다. … 때때로 사람들은 저녁모임에서 내가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하며 나를 초대한다. 나는 순수한 목적으로 초대받지 못한다. 단지 장식품이다.”

메릴린 먼로의 마지막 말은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말을 여기에 다시 적어본다.

“여자 자신 속의 감시자는 남성이다. 그리고 감시당하는 것은 여성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그녀 자신을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특히 시선의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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