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머의 힘’과 ‘록 스피릿’의 상관관계

2018.11.29 11:20 입력 2018.11.29 11:24 수정

퀸 ‘보헤미안 랩소디’ 뮤직비디오 캡쳐 / 유튜브

퀸 ‘보헤미안 랩소디’ 뮤직비디오 캡쳐 / 유튜브

미국에 LA 메탈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인천 메탈이 존재했다. 헤비메탈 밴드들이 인천에서만 활동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서울을 비롯한 부산, 대전도 1980~90년대 하드록과 헤비메탈 붐이 일어났던 지역이다. 하지만 인천 메탈의 힘은 유독 셌다. 일본에서만 2만여장의 앨범 판매 기록을 세워 한국 헤비메탈의 전설이 된 ‘사하라’는 인천이 자랑하는 헤비메탈 밴드였다. 한국의 우드스톡으로 기록될 것이라 기대했던 1999년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Triport Rock Festival)’이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이유도 인천 메탈의 힘 때문이었으리라.

동인천동과 관교동은 록 스피릿이 풀풀 넘쳐흐르는 로커들이 접수한 동네였다. 교련 선생님의 두발 단속을 피할 수 없었던 나는 록 하는 형들의 멋진 긴 머리가 한없이 부러웠다. 동인천의 뿌리 깊은 음악 감상실 ‘심지’는 그런 멋진 형들과 조우할 수 있는 아지트였다. 록 스피릿 충전소라고나 할까? 하드록 헤비메탈 전용상영관 뮤직 박스에서 비디오자키가 뮤직비디오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영국 록 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흘러나왔다.

Is this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Caught in a landslide,

No escape from reality.

‘프레디 머큐리’ 미국 뉴욕 공연 1977. ⓒ Carl Lender

‘프레디 머큐리’ 미국 뉴욕 공연 1977. ⓒ Carl Lender

칠흑같이 어둡던 음악 감상실에 홀연히 나타난 유령들. 만화경 속에 나타난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존 디콘의 얼굴들이 무한히 반사되고 있었다. 최초의 뮤직비디오로 볼 수 있다고 음악전문가들이 지목하는 생경한 뮤직비디오 영상이다. 음질은 최상급. 새벽을 밝히는 수탉의 울음처럼 4옥타브의 음역을 넘나드는 프레디 머큐리 특유의 비음 섞인 감미로운 목소리와 멤버들의 인트로 합창은 오페라의 유령 같았다. 그러나 오페라는 성공하지 못했다. 머리 긴 형들이 화가 났다.

‘저건, 4층에서 틀어야 되는 거 아냐?’ ‘야, 담배나 피러 나가자!’

두 개의 상영관을 갖고 있는 음악 감상실 심지에는 불문율이 하나 있었다. 5층 감상실에서는 물렁물렁한 록은 틀지 말 것! 주다스 프리스트, 잉위 맘스틴, 레드 제플린, 메탈리카 등 하드록이나 헤비메탈을 듣고 보기 위한 전용관을 운영하는 것이 심지 음악 감상실의 자랑이었다. 입장료는 1500원. 4층의 팝 전용관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심지에는 영업 종료 시간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 형들도 많았다. 5층으로 향하는 계단 벽에는 밴드 멤버를 모집한다는 구인광고도 붙어 있었다.

퀸 ‘I Want to Break Free’ 뮤직비디오 캡쳐 / 유튜브

퀸 ‘I Want to Break Free’ 뮤직비디오 캡쳐 / 유튜브

자주는 아니었지만 5층 하드록 전용관에서는 그곳에서 상영할 수 없는 음반에 대한 검열이 이뤄졌다. 노련한 비디오자키는 접수된 신청곡의 수준을 선별했고, 상영 금지로 판단된 말랑말랑한 발라드 록은 4층에서 감상하라고 점잖게 타일렀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록 발라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하드’하거나 ‘헤비’하지도 않았다. 멤버들의 스타일도 문제였다. ‘광시곡’을 불렀던 탓인지 광대를 떠올릴 만한 요상한 복장으로 무대에 출현했다. 1984년 발표된 노래 ‘I Want to Break Free’ 뮤직비디오는 입이 딱 벌어지게 했다. 로커들의 전유물인 가죽 재킷은커녕 ‘드래그 퀸(drag queen·여장남자)’ 복장을 한 퀸 멤버들의 모습은 정통 로커들의 울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때는 그랬다. 노래 한 곡을 듣고 보는 것도 진지하게 따져 물었다. 저항, 자유, 평화…. 무엇을 위해서였는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그런 이미지가 흘러 넘쳐야지 진정한 로커였다. 거칠게 구분하자면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라는 무대의 문제였다. 장사치들이나 활동하는 오버그라운드 무대에 오른 로커들은 변절자였다. 짝 달라붙은 가죽 바지와 메탈 징이 박힌 재킷, 그리고 웨스턴 부츠는 그런 언더그라운드 세계에 있는 로커들에게 잘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그런데, 드래그 퀸이라니? 도대체, 왜 이 모양이 됐지? 록 스피릿을 오염시킨 사람은 누구야?

‘데이빗 보위 음반 스틸컷’. Space Oddity(1969), The Man Who Sold the World(1970), The Rise and Fall of Ziggy Sat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1972).

‘데이빗 보위 음반 스틸컷’. Space Oddity(1969), The Man Who Sold the World(1970), The Rise and Fall of Ziggy Sat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1972).

1969년 지구인은 달에 발자국을 남겼다. 1972년 화성인이 영국 땅을 밟았다. 그룹 T Rex에게 영감을 받은 데이비드 보위가 자기 자신을 화성인 ‘지기 스타더스트’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거미 친구들과 지구 행성에 내려왔다. 새로운 록, 글램 록(glam rock)을 지구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글램 록의 전형으로 손꼽히는 <화성에서 내려온 지기 스타더스트와 거미들(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음반이다. 글래머러스(glamorous)한 록이라고 글램 록이라 불렀다. 블루스 기반의 정통 록과 달리 풍선껌 씹듯이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버블껌 팝(bubblegum pop)적인 요소가 첨가됐다. 무대는 화려했다. 파격적인 의상, 플랫폼 슈즈라고 불리는 통굽 신발, 원색적인 짙은 화장, 번쩍이는 장신구, 삐죽삐죽 하늘로 솟구친 헤어스타일로 양성구유의 이미지로 분장했다. 남자도 아닌, 그렇다고 여자도 아닌 로커들이 공연장은 물론 TV에 출몰했다. 자신들의 록에 필요하다고 판단된 모든 것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멤버들도 글램 록의 매력을 놓치지 않았다. 머큐리는 ‘언더 프레셔(Under Pressure, 1981)’라는 경쾌한 리듬의 록을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불렀다. 영국 젊은이들이 환호했던 글램 록의 글래머러스한 느낌은 어떤 것이었을까?

영어 ‘글래머(glamour)’의 뜻을 추적했다. 일단 섹시함이라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물론 성적인 매력도 글래머의 한 요소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것처럼 섹시함이 전부는 아니다. 어원은 문법을 말하는 17세기 스코틀랜드어 ‘그래머리(gramarye)’다. 읽고 쓰는 능력이 당시에는 소수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문맹자들에게 그 능력은 신비로웠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처럼(Is this just fantasy?) 판타지였다. 그래서 글래머라는 단어는 어떤 대상을 신비롭게 만드는 마법의 힘이라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글래머의 힘>(열린책들)을 쓴 칼럼니스트 버지니아 포스트렐은 글래머란 ‘어떤 대상을 실재보다 신비롭게 보이게 만드는 시각적 설득의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그 수단은 언어가 아니라 이미지다. 스냅 샷으로 인식되고 기억되는 비언어적 수사학이다. 포스트렐은 스위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을 예로 들어 글래머의 힘을 설명한다. 음산한 런던에서 지내던 알랭 드 보통은 겨울 햇살을 즐길 수 있다는 관광 브로슈어에 매혹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썼다.

“그 브로셔(슈어)를 만든 사람들은 지성을 모욕하고 자유 의지라는 개념을 무시하는 힘을 발휘하는 사진들을 미끼로 내세워야만 사람들이 쉽게 넘어온다는 것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브로셔에는 야자나무와 화창한 하늘과 백사장을 과다 노출 상태에서 촬영한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인생의 다른 분야에서라면 신중한 판단을 내릴 능력이 충분한 사람들도 이런 불합리한 요소들을 보는 순간 원시인 같은 순진함과 낙관주의로 회귀했다. … 결국 나는 바베이도스 섬 여행을 결심했다.”

보는 것은 믿는 것이다. 그리고 믿는 것은 꼭 이성적인 판단을 거쳐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충분히 신중한 판단을 내릴 능력이 충분한 사람들도 멋진 휴양지의 사진을 바라보는 순간 판단력이 흐려진다. 날씨는 신의 영역이거늘, 사진의 마력에 눈이 멀어버린 구경꾼들은 여행 가방에 수영복을 꾸려 넣는다. 이것이 바로 관광 브로슈어에 실린 사진이 내뿜는 글래머의 힘이다.

사진은 글래머의 힘을 더하는 강력한 무기다. 사진을 보는 이는 그것이 거짓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속아 넘어간다. 유능한 사진작가는 그렇게 관객이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의 거짓 이미지를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포스트렐이 사진의 작동 원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꽤 훌륭하다. 그는 사진작가 노먼 파킨스의 말을 떠올린다.

“뛰어난 사진작가는 뛰어난 거짓말쟁이다.”

잡지에서, 거리에서, 디지털 화면에서 당신을 유혹하는 사진들에는 암실의 전략이 숨어 있다.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것들은 철저하게 계산된 이미지들이다. 의도에 맞지 않는 요소들은 프레임 바깥으로 추방되거나 디지털 기술로 삭제된다. 인테리어 잡지 사진의 불문율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는 다른 그 무엇. 바로 전깃줄이다. 아무리 고급스러워 보이는 거실도 그곳을 가로지르는 검은 전깃줄 하나만 있으면 분위기를 망가트릴 수 있다. 전깃줄은 말끔한 집에서 보이면 안될, 몸 밖으로 터져 나온 내장같이 불쾌감을 주는 것이다. 구경꾼을 매혹하는 사진 속의 쇼룸은 전깃줄 없는 가상공간일 따름이다.

‘글램 메탈 음반 스틸컷’. Firehouse ‘Hold Your Fire(1987)’, Guns N Roses ‘Use Your Illusion(1991)’, Warrant ‘Greatest and Latest(1999), Damn Yankees ’Damn Yankees(1990)‘, Motley Crue ’Theatre of Pain(1985)‘, Skid Row ’Skid Row(1989)‘.

‘글램 메탈 음반 스틸컷’. Firehouse ‘Hold Your Fire(1987)’, Guns N Roses ‘Use Your Illusion(1991)’, Warrant ‘Greatest and Latest(1999), Damn Yankees ’Damn Yankees(1990)‘, Motley Crue ’Theatre of Pain(1985)‘, Skid Row ’Skid Row(1989)‘.

무대의 전략은 암실의 전략을 닮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무대에 오른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은 카리스마가 흘러넘친다. ‘쇼는 계속돼야 한다(The Show Must Go On)’고 외쳤던 프레디 머큐리는 무대 위의 황제, 아니 여왕! 수많은 군중들을 향해 프레디 머큐리는 주문을 건다. “에~~~, 오~.” 군중들이 화답한다. “에~~~, 오~.” 마법에 걸린 군중들은 머큐리의 노예가 됐다. 머큐리의 글래머는 그렇게 완성됐다. 하지만 공연장의 관객들은 프레디 머큐리의 실체를 모른다.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오르기 전에 병에 걸려 힘들어하던 외로운 그의 모습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만이 그의 내밀한 모습을 엿볼 뿐이다.

글램 록은 무대의 전략을 십분 활용했다. 파격적인 옷차림과 현란한 화장술, 그리고 신비한 무대 분위기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마법사 차림새로 노래를 불러도 별것 아닌 것이 글램 로커들의 무대다. 미소년같이 예쁜 얼굴을 갖고 있는 글램 로커들은 그러한 매력을 더 끌어 올렸다. 반짝이는 장신구와 여성스러운 복장으로 모호한 성적 정체성을 표현했다. 물론, 영국의 보수적인 기성세대에게는 꼴불견이었다. 하지만 글램 록이라는 새로운 록이 마음에 들었던 영국 젊은이들이 그러한 복장을 하나의 일탈 행위로 받아들였다고 판단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일까? 양성구유의 이미지가 신비롭게 보였던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모호해서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신비롭다는 것이다. 신비로움은 글래머의 힘을 부추긴다.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마력이다.

영국 글램 록의 마력은 아메리카 대륙에 손을 뻗었다. LA를 중심으로 생겨난 ‘글램 메탈’은 영국 글램 록의 화려한 복장 변장술과 화장술을 차용했다. 하지만 총천연색의 알록달록한 색깔들은 멀리했다. 그리고 이유 없는 반항아 같은 미국식 저항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짝 달라붙은 가죽 바지와 번쩍번쩍 빛나는 징이 박힌 가죽 재킷은 이유 없는 반항의 이미지를 블랙홀처럼 끌어당겼다. 하드록, 혹은 헤비메탈을 떠올릴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바로 글램 메탈의 모습이었다. 헤어스프레이로 부풀린 장발의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다고 ‘헤어 메탈’이라는 애칭도 있다. LA 한인타운이 있어서 친밀감을 느꼈던 것일까? LA를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지역색을 강조하며 우리나라 로커들은 ‘LA 메탈’이라 부르기도 했다.

LA 메탈은 록 스피릿 입문 과정으로 무난했다. 스모키 눈화장의 대가 ‘머틀리 크루’나 ‘앨리스 쿠퍼’는 정통 하드 록을 추구하는 형들의 까다로운 눈에도 거슬리지 않는 밴드였다. 하지만 똑같은 글램 메탈로 분류될 수 있었던 ‘스키드 로’와 ‘본 조비’를 대하는 형들의 태도는 달랐다. 두 밴드만큼은 4층 팝 전용관에서 상영돼야 했다고 록 하는 형들은 판정했다. 진지하게 따져 물은 적은 없었지만 아마도 리드 보컬이 심각하게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음악보다 잘생긴 외모 덕분에 과대 포장된 밴드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세바스찬 바흐’와 ‘존 본 조비’는 당시에 록 음악을 듣던 여학생들의 우상이었다. 그들의 사진들과 얼굴이 박힌 티셔츠는 동인천 지하상가 음반 가게들의 유력한 수입원이었다. 록 마니아들이 즐겨 보던 월간지 ‘핫뮤직’도 팔았다. 록 스피릿을 이론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교과서였던 ‘핫뮤직’에는 로커 스타일링을 위한 샘플 사진들도 많이 수록돼 있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1995년에 발행된 ‘핫뮤직’에는 글램 메탈 밴드 특집 대형 브로마이드 사진이 부록으로 딸려 나왔다. 록 하는 형들은 꽤나 질투했겠지.

음악감상실 심지 VJ로 활동했던 채희경 씨가 소장한 음악잡지 핫뮤직과 고양이 삐삐. 지난 2016년 인터넷판 복간 논의가 있었다.  ⓒ 김창길

음악감상실 심지 VJ로 활동했던 채희경 씨가 소장한 음악잡지 핫뮤직과 고양이 삐삐. 지난 2016년 인터넷판 복간 논의가 있었다. ⓒ 김창길

“We Will We Will Rock You!”

영화가 던져주는 록 스피릿? <보헤미안 랩소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록의 시대에 대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내는 록의 시대에 글램 메탈 밴드에 열광했던 여학생처럼 ‘아, 멋있는 프레디 머큐리!’라는 감탄사를 반복했다. 퀸의 음반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음반 가게는 사라진 지 오래다. 마트도 아닌데 온갖 것들을 다 취급하는 대형서점을 찾을 수밖에. 기대했던 퀸의 <그레이티스트 히트> 앨범은 없었다. 디즈니 만화 개봉 이후에 쏟아지는 캐릭터 상품을 떠올리게 하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OST만이 진열돼 있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음악 소스를 산다는 그 느낌. 앨범 속에 담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진들도 그리웠다. 그렇게 그 시대를 다시 만져보고 싶었다. 그것이 내게 남아 있는 글래머의 마력이었다. 록 스피릿의 환생을 위한 주문을 외워본다.

“에~~~, 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