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졸도 된다고 해서 시작한 연기가 이미 30년”…영화 <담보>에서 ‘착한 역할’ 맡은 김희원

2020.09.30 10:04

배우 김희원.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김희원.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아무리 선하게 나와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믿을 수 없다. 어느 순간 욕설을 하면서 주인공의 뒤통수를 때릴 것만 같다. 본인은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스스로 말한대로 “배우의 이미지는 관객이 정해주는 것”이니까.

영화 <아저씨>(2010)에서 ‘방탄유리’ 대사로 잘 알려진 만석 역할을 맡으면서 배우 인생이 바뀌었다. 이후 선하고 평범한 역할도 많이 했지만 유독 악역을 할 때 더 도드라졌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의 병갑은 악역이면서도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tvN 드라마 <미생>(2014)의 박 과장은 극이 한참 진행되고 난 뒤 등장하지만 존재감은 뚜렷했다.

이번에는 선한 역으로도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29일 개봉한 영화 <담보>에서 김희원(49)은 두석(성동일)과 함께 승이(하지원)를 돌보는 종배 역할을 맡았다. 군대 선배인 두석을 형처럼 따르고, 승이 일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나선다. 극이 과도하게 진지한 방향으로 흐르려 할 때마다 코미디로 관객의 웃음을 터트리는 역할이기도 하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김희원을 만났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눈매는 평범했고, 말투는 성실했다. 연기인생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연기를 보면 ‘욕이나 안먹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할만큼 겸손하기도 했다.

영화 <담보>에서 김희원이 맡은 종배는 두석(성동일)과 함께 우연히 만난 승이를 딸처럼 돌본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담보>에서 김희원이 맡은 종배는 두석(성동일)과 함께 우연히 만난 승이를 딸처럼 돌본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개봉(29일·인터뷰는 28일 진행)을 하루 앞두고 있다. 기분이 어떤가.

“잘 될 것 같다. 추석에 딱 맞는 영화다. 개봉을 앞두고는 항상 떨린다. 모든 영화 개봉 할 때마다 ‘욕이나 안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담보>는 따뜻하고 하니까 추석에 잘 어울릴 것 같다.”

-<담보> 시나리오 봤을 때 어땠나

“시나리오가 독특하더라. 일단 ‘담보’라고 하면 의미가 좀 부정적이잖아. 그래서 또 ‘내가 나쁜 역할이구나’ 생각했다(웃음). 내가 담보일리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봤는데 제목하고는 완전히 다른 따뜻한 영화였다. 굉장히 독특하고 반전이 있었다.”

-<담보>에서처럼 선한 역할도 많이 했다. 굳이 선한 역과 악한 역을 비율로 나누자면 한 5대5 정도 된다고도 했다. 그런데 여전히 악역 이미지가 강하다. 본인은 왜 그렇다고 보나.

“일단은 관객들이 많이 본 영화가 그렇고(웃음). 이상하게 악역을 하면 잘 된다. 더 많은 분들이 보시니까 그 이미지가 계속 남는거고. 배우가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라고 많이 얘기하시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것(색깔)은 관객들이 정해주는 것 같다. 아마 내가 웃겼던 영화가 <아저씨> 만큼 이슈가 됐다면 지금도 코믹한 이미지가 됐을 것이다. 그건 내가 정할 수 있는게 아닌 것 같다. 올해로 배우생활 31년째인데, 이제는 내 나름대로 재밌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시나리오 선택할 때 악역인지 선역인지 고려하나.

“한 5~6년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다 ‘이게 행복한 고민이구나’ 생각했다. 이미지를 한가지 색깔로 각인시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얘기했다시피 그건 관객들이 정해주는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다보면 관객들이 정해주겠구나 생각한 이후에는 무조건 시나리오가 재밌으면 하자고 생각한다. ‘이제 착한 역할만 합니다’ 한다고 해도 관객들이 착하게 안봐줄 수도 있고.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신경 안쓴다.”

-<담보>의 종배 캐릭터는 어디에 주안 점을 두고 연기했나.

“살짝은 허당기가 있으면서 코믹한 부분을 담당하는 역할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진심으로 울컥해야 하고. 또 세월이 지난 것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도 있어서, 처음에는 반응 속도를 빠르게 하고 나중에는 좀 느리게 해야했다. 분장도 신경 써서 했는데, 머리에 흰 칠이 많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눈가에 주름도 많이 했는데 좀 덜 보였다. 분장 뿐만 아니라 걸음걸이, 말투,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반응 속도 등을 많이 생각했다.”

-지난 24일 언론배급시사회 끝나고 진행된 라이브 컨퍼런스에서 “내 연기는 별로였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불만스러웠는지.

“구체적으로 이상하고 그런 것은 없다. 그런데 여태까지 연기를 하면서 내 연기에 만족한 적은 한번도 없다. 늘 스스로 채찍질 한다. 더 잘했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다 잘한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럴까’하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그런 차원에서 말씀 드린 것이다.”

-사실 종배는 ‘두석의 군대 후배’라는거 외에는 별로 설명이 없다. 어떻게 두석과 함께 일하게 됐는지 전사(前史)를 설정했나.

“사실 촬영도 했다. 그런데 편집됐다. 감독님과 종배의 과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실제로 감독님의 군대 후배가 실연을 당해서 안좋은 선택을 하려고 하는데 감독님이 그 친구를 구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후임병과 굉장히 가까워졌다고 한다. 종배가 두석을 따라다니는 것도 그런 이유다. 눈에 확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대사를 했다. ‘정말 그일 아니었으면 안 따라다녔는데’ 이런 대사도 있었다. 사회에서 보면 늘 ‘고춧가루 상사’가 있고, 또 실수만 하는 신입사원들이 있잖아. 이런 사람들은 다 미워하는데 꼭 챙겨주는 사람이 한명씩은 있다. 그런 것들을 생각했다.”

배우 김희원.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김희원.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얼마전 종영한 예능 <바퀴달린 집>에서도 인상적이었다. 호스트는 처음일텐데 상당히 편하게 보이더라.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너무 부담이 됐다. 올해 설날에 (성)동일이형한테 갔었다. 이거(바퀴달린집) 안한다고 하려고. 그런데 갑자기 이 형이 가자마자 ‘이거 한번 봐라’ 그러더니 유튜브를 보여줬다. 혼자서 비박하는 유튜브였다. 저걸 누가 보나 했다. 혼자 밥먹고 텐트치고 또 커피먹고 밥먹고 자고 텐트 걷어 오고. 그런데 조회수가 70만이더라. ‘이걸 진짜 본단 말이야’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형이 그렇게까지 하니 그냥 하기로 했다. 그래도 부담이 엄청났다. (촬영 계속 하면서 좀 나아진 것인가) 전혀 안 나아졌다고 생각한다(웃음).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화도 내고, 못하겠다고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해야 하는 것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하자고 했고, 무엇보다 스태프들이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 저렇게 고생하는데 내가 적응 못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다시 또 예능 할 생각은 있나) 정말 고민이 산더미다. 벌써 약간 그런 소리(<바퀴달린 집> 시즌2)가 있다. 지난번 마지막 방송 끝에 ‘곧 다시 만나요’란 자막이 나갔다. 아니, 누구 맘대로 그걸 써놔(웃음). 정말 아직도 적응이 덜 되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태산이다.”

-그래도 예능으로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사랑도 많이 받고.

“그건 행복하다. 나를 새롭게 보시는 것 같다. 나는 늘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바퀴달린 집>을 봐도 조금 다르게 느껴지긴 하더라. 요즘은 많은 분들이 말을 붙인다. 전에는 그냥 ‘김희원이다’하고 말았다면 요즘은 길거리나 식당에서 ‘원래 그랬냐’ ‘그런 것을 처음 해봤냐’ ‘처음 먹어봤냐’ ‘그동안 뭐하고 살았냐’ 물어보신다.”

-공교롭게도 출연한 영화 2편(<담보>, <국제수사>)이 같은날 개봉한다 ‘추석의 남자’란 소리도 나온다.

“사실 이런 경우가 없었다. 개봉이 3번 연기되면서 이렇게 됐는데, 앞으로 나 말고도 많은 배우들이 이런 경우가 생길 것이다. 코로나19가 정말 많은 것을 바꿨다. 이러면 배우들은 난감하다. 어떤 영화를 더 응원하냐고 자꾸 묻고(웃음) 정말 미치겠다. 이러고 싶은 사람 없잖아. 나만해도 촬영 다 마치고 앞으로 개봉할 영화가 4편 더 있다. 코로나19가 좀 잠잠해졌을 때, 최적기를 찾다보니 개봉이 몰린다. 원래는 올 봄에 하고, 여름에 했어야 했는데 계속 쌓여서 그렇다.”

-<국제수사> 김봉한 감독은 김희원을 걱정하더라. 마음이 여린 사람이니 ‘괜찮다’고 전해달라고 하더라.

“감독님이 괜찮다고 해도 내가 걱정된다. 김봉한 감독은 나한테 ‘<담보> 화이팅’이라고 외쳐주더라(웃음). 난감하다. (다행히 작품 색깔은 다르다) 정말로 둘 다 보시기를 바란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아저씨>로 주목받은 것도 40대가 다 되어서였다. 그때까지 버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뜬금없이 시작했다. 완전 뜬금없이. 고3 때 학력고사를 보는데 2교시가 끝나고 보니 밖에서 어떤 여자애가 울고 있더라. 밥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가 못 들어오고 있더라. 그래서 난 어차피 대학 떨어질 것이니까 나가면서 그 친구를 안으로 떠밀어넣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시험 다보고 온 것으로 해야하니 지하철 타고 수원까지 갔다. 시간을 보내려고. 가면서 신문 구인란을 봤는데 다 전문대졸만 찾았다. 그런데 연극은 고졸 이상을 뽑았다. 그래서 나는 이걸 해야 하나보다 생각했다. 그게 시작한 동기다. 그 전까지는 연극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게 1988년이다. 학력고사를 봤을 때이니 11월의 어느날 쯤 되겠다.”

-그렇게 시작한게 30년이 넘었다.

“나도 신기한게 경쟁률이 꽤 높았는데 붙었다. 그런데 돈을 안주더라. 한 3년간 돈을 안줬는데, 처음에는 왜 돈을 안주나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원래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면서도 왜 안 그만뒀는지 지금도 궁금하다.(재미가 있었나 보다) 사실 재미도 못 느꼈다. 아무 것도 좋은 것이 없는데 왜 계속했을까 나도 신기하다. 그렇게 3년 정도를 하다가 객석에서 처음 연극을 봤다. 더럽게 재미없더라다. 내가 하는 것도 이렇게 재미가 없었나.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걸 30년 넘게 어떻게 했을까 신기하다.”

-중간에 그만두고 호주를 다녀왔다.

“돈도 없고 그럴 때는 계속 때려치워야지 했다. 연극이 내 천직이라고 느낀 것은 호주에 있을 때였다. 너무 힘들고 돈도 안주고 하니 그만두려 했는데, 한국에 있으면 자꾸 생각이 났다. 그래서 아예 할 수 없게 호주로 갔다. 1999년에 가서 2001년에 돌아왔다. 거기서 페인트칠을 하면서 지냈다. 페인트칠 하면서 인생을 돌아봤더니, 내가 연극을 사랑했구나, 천직이구나 느꼈다. 그래서 한국으로 와 다시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재밌었나) 더 힘들었다(웃음). 서른 살이 넘어서 왔는데 돈을 안주니까 더 비참하더라. 20대 때는 돈이 없어도 얻어먹고 다닐 수 있는데, 서른 일고여덟 됐는데도 돈이 없으니. 후회 엄청했다. 나이 먹고 돈은 없으니 더 비참하고 짜증나고. (생활은 어떻게 했나) 밤에 청과물 시장, 수산시장, 동대문 시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청과물 시장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맡기면 ‘리어카’를 빌려준다. 트럭이 들어오면 과일 등을 어디로 옮기라고 한다. 그걸 한번 옮겨주면 1500원인가를 받았다. 다 하고 난 뒤 새벽에 가게마다 돌아다니면서 돈을 받는 식이다. 리어카를 다시 가져다 주면서 대여료 2000원을 낸다. 수산시장도 마찬가지고 동대문 시장에서는 지게를 썼다. 중간에 배고프면 샌드위치를 사먹었는데, 그게 4000원, 음료수까지 하면 6000원이었다. 리어카를 4번 날라야 버는 돈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밥도 안 먹었다.”

배우 김희원의 인생을 바꾼 영화 <아저씨>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김희원의 인생을 바꾼 영화 <아저씨>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러다 영화 <아저씨>를 만났다. 시나리오 봤을 때 느낌이 왔나.

“사기인 줄 알았다(웃음). 아무 것도 아닌 나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큰 역할을 주나. 사기꾼인가 생각했다. 사무실로 오라고 해서 가서 유심히 살폈다. 원빈 사진으로 도배를 해놨더라. 속으로 ‘제대로 해놨구만’이라고 생각했다. 더 사기꾼 같았지. 사무실에 책상만 하나 있고, 왠 남자(이정범 감독)가 앉아있었다. ‘정말 가관이다’라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게 사기라 해도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하기로 했다. (시나리오는 좋았지) 이게 사기가 아니라면 내 인생을 바꾸겠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개봉하고 난 다음 반응이 어땠나) 처음에는 어리둥절 했다. 사실 VIP 시사하고 며칠 잠잠하다가 개봉하고 난리가 났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지금은 시나리오 여러편 받아볼텐데 어떤가.

“이제는 사기꾼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보고있다(웃음). 매번 시나리오 볼 때마다 이걸 어떻게 해야되나 걱정부터 된다. <아저씨>는 걱정할 겨를도 없이 일을 하고 싶어서 했다. 지금은 점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같은 것이 있다. 계속 어떻게 할 까 생각도 들고. (시나리오는 다양하게 들어오나) 그렇다. 감독들도 새로운 것을 원하는 것 같다. 정통 악역을 원하는 분도 계시지만, 반전을 원하는 분도 있다.”

-아직 싱글인 것으로 안다. 쉬는 기간에는 주로 뭘하면서 보내나.

“게임하고 영화보고, 청소하고, 빨래하면 시간이 획 간다. 내가 청소랑 빨래를 좀 열심히 한다.”

-책도 좋아한다고 들었다.

“학창시절에는 거의 안 읽다가 연기 시작하고 읽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책을 거의 못 봤다. 많이 바빴다. 나는 책을 힘들게 읽는 스타일이다. 한번 보면 빠져서 보는 편이다. 그래서 마음을 잡고 봐야 한다.”

-올해 추석은 어떻게 보내나.

“집에 있을 것이다. 마침 추석이 어머니 생신이다. 만으로 팔순이 되신다. 바로 옆집에 사시는데 동생네랑 간만에 다 모일 것 같다.”

-차기작은 정해졌나.

“<사일런스>라는 재난영화다. 연휴 끝나고 10월5일 크랭크인한다. 나쁘기도 하고 착하기도 한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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