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로 돌아본 '독방의 기억'···병역거부 수감 이후 첫 개인전 연 김경묵 감독

2021.11.10 15:58 입력 2021.11.10 22:24 수정

다시 마주한 ‘5.25 제곱미터’ 기억

생활 당시 독방 풍경 VR로 재현

수형자 안내문·달력 등 극사실적

출소 후 미국서 뉴미디어 공부

“다시 떠오른 고통···피하지 않기로”

15일까지 마포 탈영역우정국서 열려

김경묵 작가가 지난 9일 ‘쿼런틴:독방의 시간’ 전시가 열리는 서울 마포구 탈영역우정국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벽에는 김 작가가 수형생활 하던 시절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이 전시돼 있다. 이석우 기자

김경묵 작가가 지난 9일 ‘쿼런틴:독방의 시간’ 전시가 열리는 서울 마포구 탈영역우정국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벽에는 김 작가가 수형생활 하던 시절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이 전시돼 있다. 이석우 기자

전시장 한가운데 가로 1.5m, 세로 3.5m의 구조물이 있다. 삼 면이 벽이고 한 면은 뚫려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VR(가상현실) 고글을 쓰면 관객은 갑자기 세상으로부터 고립된다. 방금 전까지 뚫려 있던 공간에는 창살 있는 문이 닫혀 있다.

서울 마포구 탈영역우정국에서 열리고 있는 김경묵(36)의 첫 개인전 <쿼런틴: 독방의 시간> 중 ‘5.25 제곱미터’라는 VR 작품이다. 이 작품은 김경묵이 2015년 1월14일 병역법 위반으로 1년6개월 형을 받은 뒤 수감생활을 한 독방을 재현한 것이다. 많은 VR 작품이 실제로는 체험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로 관객을 인도하지만, ‘5.25 제곱미터’는 매우 사실적이다. 수형생활 대부분을 이 작은 공간에서 홀로 보냈으니 제작을 위한 김경묵의 기억은 생생했다. 법무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해 수형자안내문, 달력 등의 모습도 알아내 재현했다. VR과 독방 모두 ‘혼자 체험하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법무부가 제작하고 윤형주가 작사·작곡한 ‘지킬수록 기분 좋은 기본’이 특유의 명랑한 목소리로 울려퍼진다. 독방 한쪽엔 정갈하게 개켜진 이불, 다른 한쪽엔 작은 책상이 놓여 있다. <코스모스> <페미니즘의 도전> <죄와 벌> <통합심리학> 등의 책들도 정리돼 있다. 변기와 세면도구도 마련돼 있다. 관객은 ‘포인트 클라우드’ 기술로 구현된 김경묵의 아바타와 20여분을 함께한다. 빛의 입자로 구성된 수형자는 명상을 하다가 스트레칭을 하고, 거울을 보고, 좁은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같은 공간을 빙글빙글 도는 정형행동을 하고, 책을 읽고, 마침내 누워 잠든다. 그것이 가석방돼 나오기 전까지 1년3개월간 김경묵이 독방에서 한 일이었다. 대부분 병역거부자는 혼거방에 수용되지만, 수형자 면담 과정에서 커밍아웃한 김경묵은 독방에 격리됐다.

<5.25 제곱미터> 이미지 | 김경묵 제공

<5.25 제곱미터> 이미지 | 김경묵 제공

9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경묵은 “출소 후 미국에서 뉴미디어를 공부하면서 감옥 얘기는 하지도, 떠올리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80년대 운동권 수기도 많은데, 내가 굳이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출소 후 명상을 배우거나 상담을 받으면서 독방 시절의 고통은 다 이겨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오산이었다. 유학 시절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감옥의 기억’이 다시 돌아왔다. 한국을 벗어나고 싶어 떠난 미국에서 다시 한국의 좁은 독방이 생각난 것이다. 고교를 중퇴한 뒤 정규교육과 거리를 두었던 그였기에, 다시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는 과정의 스트레스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피할수록 기억이 더 오래갈 것 같았다. 아예 기억과 마주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경묵은 ‘평화주의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자로 분류되지만, 본인은 이러한 분류를 어색해했다. 어린 시절부터 다른 소년들이 총싸움 놀이를 할 때, 김경묵은 인형 놀이를 했다. 늘 자신이 “누군가를 때릴 수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그런 두려움 때문에 군대에 대한 거부감이 일찍부터 형성됐다. “감옥 가는 걸 원하는 사람이 있겠나. 군대냐 감옥이냐 선택이 두 가지밖에 없어서 감옥에 갔을 뿐이다. 지금도 ‘평화주의 신념’이란 내게 너무 거창한 말 아닌가 생각한다.”

수형생활 초기, 김경묵의 재판과 수감생활에 대한 기사가 한겨레에 게재됐다. 교정당국을 비난하는 내용이 없었음에도 법무부가 한바탕 뒤집혔다고 한다. 김경묵은 순식간에 ‘요주의 인물’이 됐다. 서신, 접견 등 모든 일에 압박이 생겼다. 계획했던 외부 기고도 포기했다. 교도소 내 경비조직인 CRPT 대원들이 2~3일에 한 번씩 독방을 헤집어 꼬투리를 잡았다. 검은 옷에 선글라스를 써 까마귀라 불린 그들은 종이에 낙서를 했다고 벌점을 매겼다. 공공재를 훼손했다는 이유였다. 벌점이 쌓이면 가석방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독립영화감독 김경묵 작가를 서울 마포구 독막로 탈영역우정국에서 지난 9일 만났다.  김 작가가 수형생활 동안 친구들이 보내온 편지 위에 앉아 있다. 이석우 기자

독립영화감독 김경묵 작가를 서울 마포구 독막로 탈영역우정국에서 지난 9일 만났다. 김 작가가 수형생활 동안 친구들이 보내온 편지 위에 앉아 있다. 이석우 기자

전시장 벽에는 수형생활 당시 김경묵이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 일부가 전시돼 있다. 교도소의 처우에 대한 깊은 분노가 폭발하다가, 사기죄로 3년형을 선고받은 주제에 김경묵을 ‘매국노’라 욕하던 ‘40대 아저씨’ 재소자가 다른 사동으로 떠났다는 소식에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심지어 말 한마디로 비행기를 회항시킬 힘을 가졌던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가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기도 한다. 출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엔 “금연만 성공해도 수감생활이 아깝지 않을 것 같기도 해”라며 여유를 부린다. 물론 그는 출소 직후부터 다시 담배를 피웠다.

김경묵은 수형기간 중 1000통 이상의 편지를 받았고, 그보다는 적은 편지를 보냈다. 김경묵은 “5년 만에 편지를 꺼내 읽으며 다시 느꼈다. 독방이 온전히 내 공간이었다면, 그 시간을 같이 견딘 건 친구들이었다”고 말했다.

김경묵은 독립영화 감독이었다. <줄탁동시>(2012),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2014)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소수자인 탈북민, 성소수자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들은 베니스, 로테르담 등 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며 호평받았다. 병역거부 문제를 마무리한 뒤 평소 관심 있던 뉴미디어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으로 떠났다. 그는 “영화는 대중적인 매체이고 자본이 많이 필요하지만, 미술은 좀 더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표현할 수 있다”며 “미술을 공부하니 제2외국어를 익힌 느낌”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5일까지 열린다.

김경묵 작가가 지난 9일 ‘쿼런틴:독방의 시간’ 전시가 열리는 서울 마포구 탈영역우정국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거울과 아이폰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 촬영했다. 이석우 기자

김경묵 작가가 지난 9일 ‘쿼런틴:독방의 시간’ 전시가 열리는 서울 마포구 탈영역우정국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거울과 아이폰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 촬영했다.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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