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되지만 치열하게 싸우는 한국 여성,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다큐 ‘오픈 셔터스’ 도유진 감독

2022.03.23 16:30 입력 2022.03.23 23:20 수정

다큐멘터리 영화 <오픈 셔터스>의 한 장면. 2018년 여성들은 서울 혜화역에 모여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이어갔다.  필드오브비전·타임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오픈 셔터스>의 한 장면. 2018년 여성들은 서울 혜화역에 모여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이어갔다. 필드오브비전·타임 제공.

“여러분 것도 어딘가 촬영된 게 돌아다니고 있을 걸요?”

4~5년 전 한 매체에서 기자로 일했던 최지은씨는 불법촬영 관련 취재를 하다가 어느 활동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지. 내 것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날 새벽 누군가 초인종을 마구 눌렀다. 경찰이었다. 건물 밖에서 누군가 최씨의 집을 촬영했고, 그 영상물 속 피해자가 맞는지 확인하러 왔다고 했다. 오피스텔에서 300~400m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한 남성이 최씨를 수주간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의 얼굴도 모르는 최씨는 어딘가에서 그를 만날지 몰라 두려웠지만, 가해자는 안정적 직업이 있고,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불구속 수사를 받았다. 사건 이후 최씨는 동네를 떠났다. 최씨는 “어디를 가야 안전한지를 잘 모르겠었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이 22층이다. 지하로 들어가서 어둠 속에 살아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씨를 비롯한 불법촬영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아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실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오픈 셔터스>(Open Shutters)가 지난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공개됐다. 미국의 비영리 다큐제작사 필드오브비전이 제작을 맡고, 미국 주간지 타임과 함께 배급했다. 한국에 불법촬영과 불법촬영물 유포 범죄가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해외 언론들은 한국에서 불법촬영에 사용되는 초소형 카메라를 ‘몰카(Molka)’라고 칭하며 보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2021년 6월 한국의 불법촬영 실태를 고발하는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보고서를 발표했다. <오픈 셔터스>는 여기에 쐐기를 박는다. 이 영화를 연출한 도유진 감독은 최씨를 비롯한 피해자 두 명의 이야기를 쫓아가며 수사 과정과 재판에서 당사자가 겪은 어려움을 폭로한다. 지난 16일 도 감독을 온라인으로 만났다.

<오픈 셔터스>를 연출한 도유진 감독. 본인 제공

<오픈 셔터스>를 연출한 도유진 감독. 본인 제공

불법촬영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범죄가 아니라고 도 감독은 말했다. 그는 “여러 단체와 범죄학자들이 한국은 온라인에서의 여성혐오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여성의 신체를 게시하고 이에 대해 품평하듯 이야기하는 게 유희의 일종이 된 것”이라며 “한국의 불법촬영은 어느날 아침 갑자기 튀어나온 변종이 아니라, 이런 유구한 온라인에서의 여성혐오가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다큐멘터리는 피해 사실을 말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고 2018년 서울 혜화역 앞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등을 다루며 여성 연대를 조명한다. 도 감독은 “한국 여성 운동은 보고 있으면 ‘너무 찬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 하나만 잘 먹고 잘 살다 갈 수도 있는데도 한국의 여성들이 내 주변의 여성들, 동생들, 나의 다음 세대 여성들로 공감의 영역을 확장하며 싸우고 살아나간다는 것을 어떻게든 기록하고 싶었다. 흩어지거나 빛이 바래지 않게 제대로 새겨두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페미니즘에서 미국 등 서구권의 여성운동이 과잉대표되고 있다. 아시아에서, 그 중에서도 한국의 여성들이 이렇게 멋있고 끈질기게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세계 여성 인권 운동의 역사에 집어넣고 싶다는 목표를 가지고 다큐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대선 전후의 혐오정치 양상을 보면, 여성뿐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등이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될 것 같다”면서도 “다큐멘터리가 말하고자 하는 연대의 메시지가 힘이 되기를 바란다. 말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바뀌지 않고, 여전히 싸우는 여자들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는 현재 필드오브비전 웹사이트(https://fieldofvision.org/), 타임 유튜브 계정 등에서 볼 수 있다. 해당 영상에는 “한국이 여성들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것은 그저 실체 없는 말에 불과하다. 교육 받은 여성의 비율이 높음에도 성평등의 수준은 여전히 낮다는 것을 보게 돼 슬프다” “사회는 여성을 다르게 대하고 특히 무엇보다 피해자를 비난한다. 사법부도 여성을 돕지 못한다” “한국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알 수 있는 이야기를 공유해줘서 고맙다”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오픈 셔터스>는 이달 초 열린 제37회 국제다큐멘터리협회상(IDA Awards)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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