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약한 리더를 위한 변명···‘하우스 오브 드래곤’

2022.11.12 08:00 입력 2022.11.12 10:26 수정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라에니라 타르가르옌. 정당한 왕위 계승권자이지만, 그  왕좌에 오르는 과정이 순탄하진 않다. | 웨이브 제공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라에니라 타르가르옌. 정당한 왕위 계승권자이지만, 그 왕좌에 오르는 과정이 순탄하진 않다. | 웨이브 제공

[오마주]유약한 리더를 위한 변명···‘하우스 오브 드래곤’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왕좌의 게임>은 2011~2019년 8시즌에 걸쳐서 방영된 HBO 시리즈입니다. 조지 R R 마틴의 원작을 바탕으로 시작했는데, 드라마 제작 속도가 마틴의 집필 속도를 앞질러서 드라마 후반부는 마틴의 조언에 따라 작성된 시나리오로 촬영됐습니다. 특히 마지막 시즌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팬들도 있지만, 이 시리즈가 공전의 히트작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에서 볼 수 있는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왕좌의 게임>의 프리퀄입니다. <왕좌의 게임> 시대 배경의 200년전쯤 일어난 일을 다뤘습니다.

처음 드라마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는 미심쩍었습니다. 9년 동안 우려먹은 소재를 프리퀄로 또 만들어서 얼마나 재미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왕좌의 게임>이 여러 대륙과 가문의 이야기를 다루는 반면,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왕좌의 게임> 주인공 중 하나였던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의 선조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도 이 드라마의 스케일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유였습니다.

초반 몇 회를 보고 의심을 거뒀습니다. <왕좌의 게임>은 중반 이후 이야기가 방대해지고 등장인물이 늘어나면서 때로 서사를 따라잡기 버거워한다는 인상을 줬지만,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타르가르옌 가문의 이야기를 10개 에피소드에 탄탄하게 구축했습니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다에몬 타르가르옌. 난폭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다. | 웨이브 제공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다에몬 타르가르옌. 난폭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다. | 웨이브 제공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비세리스가 왕위에 오르며 시작합니다. 왕위 계승 서열은 라에니스 공주에게 뒤졌으나, 여성을 왕위에 앉힐 수 없다는 영주들의 결정에 따른 일이었습니다. 비세리스 역시 후계 문제를 두고 같은 문제에 봉착합니다. 자식이 라에니라 공주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비세리스는 라에니라를 후계자로 정했지만 문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야심만만한 동생 다에몬은 형 비세리스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냅니다. 비세리스가 두번째 부인 알리센트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았다는 점도 변수가 됩니다. 왕위 계승권을 갖고 있지만 권력 기반은 취약한 라에니라, 강력한 카리스마와 권력욕을 가진 다에몬, 어린 시절의 친구였던 라에니라를 제치고 자기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알리센트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서양 중세의 세계관에 용과 마법이 등장하는 판타지 설정을 녹인 드라마가 21세기에 인기를 끄는 이유는 권력을 향한 욕망, 규범을 벗어난 사랑의 추구, 명예와 이익의 대립, 뒤늦은 복수의 완성 등 테마가 여전히 매력있기 때문일 겁니다. <왕좌의 게임>과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모두 그런 장점을 보여줍니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중심 인물은 라에니라, 다에몬, 알리센트 등이고 이들은 이후 시즌에서도 활약을 예고합니다. 오히려 첫 시즌 처음부터 끝까지 왕이었던 비세리스는 결단력이 부족하고 유약한 리더처럼 그려집니다. 적에게 단호한 힘을 보여줘야 할 때 망설이고, 생전 후계 문제를 명확히 하지 못해 사후 왕국이 사분오열되는 불씨를 남깁니다. 마키아벨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비세리스는 그다지 훌륭한 군주가 아닙니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서 라에니라 타르가르옌(왼쪽) 알리센트 하이타워의 어린 시절. 둘은 죽마고우였지만, 성인이 된 이후 반목을 예고한다. |  웨이브 제공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서 라에니라 타르가르옌(왼쪽) 알리센트 하이타워의 어린 시절. 둘은 죽마고우였지만, 성인이 된 이후 반목을 예고한다. | 웨이브 제공

하지만 저는 그런 점 때문에 오히려 비세리스에게 마음이 갔습니다. 비세리스는 왕으로서의 존재감, 카리스마를 발휘하기보다는 왕국의 평화, 백성의 안위를 중시했습니다. 전쟁을 최대한 피하려 했던 건 유약해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분란으로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덕분에 비세리스 치세기에 왕국은 큰 전쟁을 겪지 않았습니다. 딸 라에니라와 죽은 아내 아에마 아린에 대한 사랑도 극진합니다. 에피소드 8에서 후계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죽음을 목전에 둔 쇠약한 몸을 이끌고 한 발씩 힘겹게 철왕좌로 걸어가는 모습은 비세리스가 왕으로서의 책임감을 한시도 잊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좀 더 평화롭고 안정적인 시대였다면 비세리스는 ‘덕망있는 군주’로 칭송받았을 겁니다. 다만 조지 R R 마틴의 세계관 속에서 그런 시대는 없기에, 비세리스는 시대와 작가를 잘못 만난 군주가 됐다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생각해보면 태평성대는 상상 속의 고대에나 있었던 것 아닐까 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난세입니다.

몰아보기 지수 ★★★★★ /촘촘하게 구성된 10개 에피소드

현실개탄 지수 ★★★★ /태평성대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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