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악마로 변한 지옥에서 아이는 살해됐다

2023.12.15 13:26 입력 2023.12.15 19:26 수정

일본 아동학대 사망 실제 사건 3건

아이를 아낀다면서 죽이는 부모

어떻게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추적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어머니 장모씨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징역 35년을 확정한 지난해 4월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정인이 사진과 촛불이 놓여 있다. 권도현 기자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어머니 장모씨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징역 35년을 확정한 지난해 4월2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정인이 사진과 촛불이 놓여 있다. 권도현 기자

스위트 홈

이시이 고타 지음 | 양지연 옮김 | 후마니타스 | 344쪽 | 1만9000원

일본 도쿄에 사는 미나카와 일가의 가족사진은 포근했다. 사진 속 미나카와 부부는 다섯 아이들과 손으로 ‘브이’ 자를 만들고 서로 뺨을 맞댄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남편 시노부가 잠시 집을 비웠을 때 부인 도모미가 보낸 편지에서도 애틋한 가족 사랑이 보였다. “아빠(시노부)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어. 그래서 다시 다 같이 웃으면서 살고 싶어! 일곱이서 같이 있을 때 우리는 즐거운 가족이야, 진짜로!”

부부는 2년 뒤인 2014년 6월 경찰에 체포됐다. 부부는 세 살배기 아들을 토끼우리에 감금해 숨지게 하고, 두 살 된 딸에게는 반려견용 목줄을 채워 폭행해왔다. 아들의 시신을 강에 버린 다음날에는 ‘기분 전환’ 삼아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디즈니랜드에서 놀았다. 부부는 체포 이후까지 포함해 결혼 생활 7년 동안 아이 7명을 낳았다. 정부로부터 아동·생활보호 수당으로 매달 40만엔(약 360만원) 이상을 받아 생활했다. 아동상담사의 가정방문 때는 마네킹에 이불을 덮어 아들이 살아 있는 척 속였다.

논픽션 작가 이시이 고타는 일본에서 일어난 아동학대 사망 사건 3건을 취재해 <스위트 홈>에 담았다. ‘토끼우리 감금 학대치사 사건’ ‘유아 아사 백골화 사건’ ‘영아 연속 살해 사건’이다. 이시이는 부모들을 ‘악마’로 매도하기보다 학대가 왜 일어났는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부모와 주변인을 인터뷰하고, 재판과 수사를 지켜보고, 사건 자료를 모았다. 이런 저널리즘을 일각에선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고 비판한다. 가해자에 대한 이해와 동정이 피해자에겐 2차 가해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의 삶을 뜯어보지 않고선 아동학대의 사회적 원인을 파악하고 예방책을 마련하기 어렵다.

“가해자인 부모를 직접 만나보면 그들 모두 하나같이 자신에게는 아이뿐이라고 말한다. 왜 아이를 아낀다면서도 제대로 돌보기는커녕 폭력을 휘두르는 것일까. 왜 아이들은 제 부모의 손에 목숨을 빼앗기고 마는 걸까. 난 문제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세 사건의 부모들은 성인으로서 스스로 삶을 책임지고 미래를 추구하는 능력이 없었다. ‘유아 아사 백골화 사건’의 사이토 유키히로는 “지극히 강한 수동적 대처 방식”을 지녔다는 정신감정 결과가 나왔다. 그는 가출한 부인이 호스트 클럽 외상값이나 휴대전화 요금을 자신에게 마구 떠넘겨도 순순히 납부했다. 결국 돈이 떨어져 전기, 가스, 수도가 끊겼지만 복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방안에 가뒀던 5세 아들이 쓰레기 더미 속에서 굶어 죽자 그대로 집을 떠나 시신은 7년 동안 방치됐다.

‘토끼우리 감금 학대치사 사건’의 미나카와 시노부는 “그야말로 애 같은 인간”이었다.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순간의 감정대로 행동했다. ‘영아 연속 살해 사건’의 다카노 이쓰미는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전부 없었던 일로 해버리는” 사고 정지 상태가 됐다. 원치 않는 임신과 임신중지를 반복하면서도 많은 남성과 피임기구 없는 성관계를 계속했다.

저자는 학대 부모들도 그들의 부모에게 학대당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며 자랐다. 무책임하고 파멸적인 가정환경에서 정상적인 윤리관과 가치관이 자리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카노 이쓰미의 어머니 나쓰미는 두 남성 사이에서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혼인신고도, 양육비 청구도 하지 않았다. 대신 다카노가 버는 돈 대부분을 요구하며 경제적으로 착취했다. 다카노는 식당 종업원과 ‘컴파’(파티 등에서 접대하는 여성)로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해자 부모든, 희생된 아이든 그들이 ‘사건’이라는 결말에 이른 데에는 자신들의 힘만으로 도저히 어찌하지 못할 환경이 공통적으로 있었다. 물론 똑같은 상황의 부모와 아이가 모두 최악의 사태로 치닫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계기로 전혀 다른 운명의 길이 열리기도 한다.”

부모와 아이를 위한 사회제도가 제대로 설계되고 운영돼야 ‘다른 운명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 사건들은 일본 사회제도의 구멍을 드러냈다. 사이토 유키히로의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돼서야 드러났다. 다카노 이쓰미는 임신중절수술 비용이 없어 원치 않는 딸을 몰래 낳았다. 미나카와 부부는 아동학대 의심을 받았지만 옆 지역으로 이사하는 것만으로 조사를 피할 수 있었다.

저자는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기 어려울 때, 아이가 부모에게 학대당할 때 사회의 적절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호소한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부모’가 있음을 인정하고 사회가 가정을 육아 전부터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보건복지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사건은 2만7971건이었다. 부모의 아동학대가 2만3119건(82.7%)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2018년 28명, 2019년 42명, 2020년 43명, 2021년 40명, 2022년 50명이었다.

“누구든 자신이 나고 자랄 집을 고를 수 없다. 그렇지만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구제받는 부모가 될 수도 있고, 양부모와 행복하게 자라나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중략) 법을 위반한 자에게 타당한 징벌을 내리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들이 떠안은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사건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한다면 사건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 사회에 되돌아온다.”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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