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돼지와 뱀과 비둘기’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대만 영화 한 편이 중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정작 대만에선 별다른 흥행 성적을 거두지 못했는데도 말이죠.
화제의 영화는 <돼지와 뱀과 비둘기>.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장르는 느와르·갱스터입니다. 갱스터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조폭 두목의 장례식이 열리고,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펼칩니다. 주인공 천꾸이린이 이곳에 나타나 대담한 살인 행각을 벌입니다. 경찰 천후이가 그를 뒤쫓지만, 천꾸이린은 천후이에게 큰 상처를 입힌 채 빠져나갑니다. 4년 후, 천꾸이린은 여전히 도피 중입니다. 천꾸이린은 범죄자들에게 의약품을 제공하는 약사로부터 자신이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전해 듣습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한 천꾸이린은 자수를 위해 경찰서를 찾았다가 자신이 요주의 지명수배자 명단에서 ‘넘버 3’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죽는 건 두렵지 않다. 죽고 나서 잊혀지는게 두렵다’고 생각한 천꾸이린은 넘버 2, 넘버 1을 죽이려고 마음 먹습니다.
이 영화의 중국어 원제는 ‘周處除三害’(주처제삼해)입니다. 주처라는 인물이 마을의 세 가지 해악 중 호랑이, 교룡(용의 일종)을 죽였으나, 정작 본인도 해악인 줄 모르다가 뒤늦게 깨닫고 뉘우친다는 중국 고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영화도 넘버 3 범죄자가 자기보다 악명 높은 2명을 제거하려는 내용이니 고사와 맥이 닿습니다.
넘버 2를 죽이는 대목까지는 흔한 갱스터 영화처럼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묘사되는 여성상은 고리타분하기도 합니다. 천꾸이린이 넘버 1을 죽이기 위해 대만 서쪽의 한적한 펑후 섬을 찾으면서 영화 분위기가 급격히 바뀝니다. 이곳으로 도피한 넘버 1은 이미 죽은 듯합니다. 천꾸이린은 대신 하얀 옷을 입고 기타를 치며 평화로운 노래를 부르는 신흥 종교 교주와 신도들을 만납니다. 이들은 천꾸이린에게 속세에서 쌓은 죄, 부는 저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권합니다. 교주의 능력으로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천꾸이린은 울면서 죄를 회개하고 새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처음엔 두 가지 다른 장르의 영화를 붙여놓은 듯 분위기가 바뀌어 어리둥절했습니다. 물론 영화는 자신의 장르적 본분을 잊지 않고 제 길로 돌아갑니다. 한국의 인기 갱스터 영화들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돼지와 뱀과 비둘기>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처럼 페이소스가 있거나 시대상을 흥미롭게 반영하지 않습니다. <신세계>처럼 인상적인 캐릭터가 나오지도 않습니다. <달콤한 인생>처럼 세련되지 않습니다. 다만 영화를 어떻게든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대체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유혈이 낭자한 꽤 자극적인 장면도 나옵니다. 중국 관객도 이 같은 영화의 힘에 반응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결말도 흥미롭습니다. 한국의 갱스터 영화나 전성기의 홍콩 영화에서라면 택하지 않을 결말입니다. 한국영화 <독전>과 그 원작영화 <마약전쟁>의 다른 결말이 생각나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황징푸(黄精甫)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복합 장르’ 지수 ★★★ 순식간에 변화하는 영화 분위기
‘권선징악’ 지수 ★★★ 동아시아의 전통적 교훈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