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누스의 ‘왕은 왕이다’ 공동작업 예술감독 김석만·연출가 최용훈

2010.09.01 21:15
문학수 선임기자

“국내 첫 아랍연극… 권력 풍자 메시지”

“기승전결 없는 이야기 속 이야기 구조”

권력자로서의 자격을 제대로 갖춘 자가 권력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왕관을 내 것으로 만들면 권력자가 된다. 훔치거나 빼앗든, 아니면 사기를 쳐서 그것을 얻든, 이미 왕관을 차지했다면 자격이나 품격을 문제삼는 이들을 지옥으로 보낼 수도 있는 게 권력이다. 시리아 태생의 극작가 사아달라 완누스(1941~97)의 <왕은 왕이다>는 바로 이 현실을 풍자하고 조롱한다. <아라비안나이트>의 152번째 밤(판본에 따라서는 153번째)에 등장하는 ‘잠든 자와 깨어 있는 자’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연극. 서울시극단이 지난해 <다윈의 거북이>에 이어 선보이는 세계 현대연극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이다. 2년째 시극단을 이끌고 있는 김석만 예술감독(59·한예종 연극원 교수·사진 왼쪽)과 대학로의 중견연출가 최용훈(48)이 손을 잡았다.

완누스의 ‘왕은 왕이다’ 공동작업 예술감독 김석만·연출가 최용훈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아랍 연극입니다. 우리의 현대 연극이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왔지만, 아랍 연극은 매우 생소하죠. 하지만 실제로 아랍은 문화적 전통이 강한 곳이고 연극 분야에도 문제작들이 많습니다. 특히 완누스라는 작가는 사회성이 아주 강한 연극을 많이 썼죠. <왕은 왕이다>는 백성들이 억압받는 한 왕국에서 일어난 이야기인데, 권력은 ‘사람’이 아니라 ‘왕관’ 그 자체에서 나온다는 풍자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죠.”(김석만)

극작가 완누스는 프랑스에서 연극을 공부하던 당시 6·8 혁명의 세례를 받았다. 유학 후 아랍으로 돌아와 ‘연극의 정치화’를 목표로 새로운 아랍 연극을 주창했던 문화운동가였다. 이번에 국내에 선보이는 <왕은 왕이다>는 그의 대표적인 정치풍자극. 극 속에 등장하는 무스타파 왕은 무료한 일상을 달래기 위해 재미있는 놀이를 생각해낸다. 그는 재상과 함께 변복하고 저잣거리에 나갔다가 스스로 왕이라고 떠벌여대는 시정잡배 아부 잇자를 술에 취하게 만들어 궁궐로 데려온다. 그 주정뱅이에게 왕관을 씌우고 왕의 옷을 입혀놓으면 과연 어떤 소동이 벌어질까. 무스타파는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흥미롭게 그 소동을 기대하지만 상황은 영 엉뚱하게 흘러가고 만다. 왕의 침실에서 눈을 뜬 아부 잇자. 그는 곧바로 왕의 위엄을 갖추고 신하들을 호령하기 시작한다. 초초해진 무스타파가 자신이 진짜 왕이라고 항변하지만 이미 신하들은 배를 바꿔 탄 상황. 이 연극은 그렇게 코미디의 앵글로 권력의 문제를 비춘다.

“권력에 대한 시니컬하고 우화적인 고찰이죠. 저도 이번에 아랍 연극을 처음 연출합니다. 대사가 아주 길고 이야기적 특성이 강합니다. 서양 연극의 기승전결과 많이 다른, 이야기 속에 또 이야기가 들어 있는 특이한 구조를 보여주죠. 연극 속에서 일종의 역할 놀이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놀이와 현실이 서로 뒤섞이면서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죠.”(최용훈)

김석만 예술감독은 1980년대 국내의 현실주의 연극을 이끌었던 연우무대 출신의 연출가.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후, 사회성을 중시하는 일련의 기획들로 기존의 시극단이 보여줬던 연극적 태도에서 멀찌감치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이에 대해 “공공 연극단체가 마땅히 할 일”이라고 답했다. 최용훈은 <김치국씨 환장하다> <돐날> <오늘, 손님 오신다> <에이미>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등 난해하지 않은 문제작들을 잇달아 선보여온 대학로의 대표적 연출가. 현재 극단 ‘작은신화’의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늘 일정한 수준을 웃도는 연극을 빚어내면서 ‘공신력’을 얻어왔다.

두 사람이 공동 작업에 나선 것은 1999년 공연했던 입센의 희곡 <민중의 적> 이후 두번째. 김석만은 최용훈에 대해 “동시대의 연극적 고민을 함께 나누는 동료이자 후배”라고 말했고, 최용훈은 “김 선배의 작품 가운데 <꿈하늘>과 <한씨연대기>를 잊을 수 없다”면서 “연극계에 처음 발을 디디던 80년대부터 많은 영향을 준 선배”라고 화답했다. 공연은 3일부터 19일까지, 세종M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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