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길어 슬픈 요즘 한국영화

2011.11.30 21:14 입력 2011.11.30 23:22 수정

인기 작가 스티븐 킹은 에세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고교 3학년 때 투고한 잡지 편집자로부터 받은 쪽지가 자신의 소설 작법을 바꿔놓았다고 밝힌다. 게재 거절 의사를 밝히는 이 쪽지에는 편집자의 인쇄된 서명 아래 이런 ‘명언’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수정본=초고-10%. 행운을 빕니다.”

킹은 이 수정 공식을 접한 이후 4000 단어짜리 초고는 3600 단어, 35만 단어짜리는 31만5000 단어를 목표로 수정 작업을 했다. 그는 “작품의 기본적인 스토리와 정취를 유지하면서도 10% 정도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적절한 삭제 작업의 효과는 즉각적이며 또한 놀라울 때가 많다. 문학적 비아그라라고 부를 만하다”고 설명했다.

킹의 작법을 최근 한국의 상업영화 편집에 적용하면 어떨까. 소설과 영화는 다르지만, 가능하면 많은 대중에게 다가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킹의 소설과 한국의 상업영화는 공통점을 가진다. 근 몇 년 사이 한국영화의 상영시간은 눈에 띄게 길어졌다. 오랫동안 상업영화의 표준 상영시간으로 여겨지던 90분 안팎의 영화는 찾기 힘들다. 대부분의 영화가 120분 안팎이고, 이를 훌쩍 넘기는 영화도 있다. <황해>는 156분, <적과의 동침>은 135분, <챔프>는 133분, <고지전>은 133분이었다.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를 담은 <투혼>(124분), <수상한 고객들>(124분), <위험한 상견례>(118분)도 짧지 않았다. 서사가 복잡하고 볼거리가 많은 스릴러, 액션, 판타지는 물론, 등장인물이 적고 이야기가 단순한 멜로드라마, 로맨틱 코미디도 2시간에 육박한다.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면 상영시간이 늘어나는 건 문제가 아니다. 영화감독의 비전과 창의성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한 상영시간도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편집의 묘를 알지 못해, 찍은 분량이 아까워서, 다른 영화도 2시간씩 하니까 상영시간이 늘어나면 문제다. 한 영화제작자는 “5분 뒤의 전개가 보일 정도로 뻔한 로맨틱 코미디가 2시간 안팎으로 상영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음주 개봉하는 스티븐 스필버그 연출, 피터 잭슨 제작의 영화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상영시간은 근래 어느 한국영화보다 짧은 107분이다. 두 상업영화의 귀재가 보여주고 들려줄 거리가 없어서 상영시간이 짧은 건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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