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와 비’

2012.05.01 17:13 입력 2012.05.01 21:16 수정
백은하 기자

평범한 얼굴의 비범한 연기 ‘역시, 야쿠쇼 고지’

야쿠쇼 고지는 좋은 배우다. 3일 개봉을 앞둔 영화 <딱따구리와 비>를 보면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쉘 위 댄스> <우나기>에 이어 <딱따구리와 비>에서도 야쿠쇼 고지는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한 남자의 얼굴을 하고,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비범한 연기를 펼친다.

예순 살의 가쓰(야쿠쇼 고지)는 나무꾼이다. 아내가 죽은 후 말썽꾼 아들과 살아가고 있지만 이제 제법 혼자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시끄럽게 나무를 자르는 가쓰에게 “지금 촬영 중이니 조용해달라”며 영화 스태프가 찾아온다. 동네의 지형지물을 안다는 이유로 엉겁결에 로케이션 매니저가 된 가쓰는 급기야 엑스트라가 모자라다는 이유로 좀비 분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선다.

바쁜 촬영 현장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서 있는 한 청년이 있다. 그는 바로 영화 속 영화 <유토피아 좀비 대전쟁>의 ‘감독님’인 스물다섯 살의 청년 고이치(오구리 슌)다. 고이치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감독이 되긴 했지만 오케이 컷을 내는 것도 촬영 장소를 결정하는 것도 여전히 무섭고 두렵다. 의욕도, 의지도, 아이디어도 없는 그에게 스태프는 계속 질문을 던지고 이 초보감독은 그야말로 ‘멘털이 붕괴된’ 상태다.

[리뷰]‘딱따구리와 비’

당신이 영화감독이라면 행복할까? 혹은 이름 없는 엑스트라라면 불행할까? <딱따구리와 비>는 영화를 만드는 즐거움은 사실 역할의 중요성에 상관없이 찾아온다는 걸 보여준다. “영화 찍는 거 보통 일 아니던데 그렇게 한 장면 한 장면 정성스럽게 찍는지 몰랐어.” 이제 막 영화라는 세계의 문을 연 예순 살의 나무꾼은 시나리오 한 장 한 장을 읽어 내려가는 것도, 러시필름에 담긴 자신의 콩알만한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하고 가슴이 설렌다. 매일 반복적으로 나무만 쪼던 ‘딱따구리’의 움직임을 쉬게 할, 영화라는 마법 같은 ‘비’가 내린 것이다.

<남극의 쉐프>를 연출했던 오키타 슈이치의 최신작 <딱따구리와 비>는 남극기지에 이어 영화 현장이라는 고립된 공간에 놓인 남자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이도 처지도 다른 이 남자들이 영화라는 통로로 소통하는 과정을 특유의 유머와 드라마로 풀어낸다. 가쓰의 일터이자 ‘힐링캠프’로서 역할을 하는 숲은 일본 기후현 가모군 시라카와에 있는 ‘도노 히노키 숲’이고, 고이치가 ‘속살 드러낸’ 대화를 이어가는 온천은 기소에 자리잡은 ‘나기소 온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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