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부부이자 예술동지로 47년, 연출가 손진책·배우 김성녀

47년간 부부이자 동지로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손진책·김성녀 부부는 오는 13일 국립극장에서 막이 오르는 연극 ‘햄릿’ 공연을 앞두고 연출과 배우(거트루드)로서 또 한번 호흡을 맞추고 있다. 두 사람이 지난 3일 서울 성북동의 한 식당에서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47년간 부부이자 동지로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손진책·김성녀 부부는 오는 13일 국립극장에서 막이 오르는 연극 ‘햄릿’ 공연을 앞두고 연출과 배우(거트루드)로서 또 한번 호흡을 맞추고 있다. 두 사람이 지난 3일 서울 성북동의 한 식당에서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세상에는 네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말이 있다. 남자, 여자, 성소수자, 예술가. 예술가는 철저하게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다. 이 때문에 예술가에게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을 기대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연극 연출가 손진책(75)과 배우 김성녀(72). 이 두 예술가는 지난 47년간 부부이면서 동지로 살아왔다. 한솥밥 먹는 부부면 바깥에서라도 떨어져 지내고 싶을 터인데, 이들의 작품 절반은 남편이 연출하고 아내가 출연했다. 연극밖에 모르는 남편을 위해 생계를 책임진 아내의 희생이 컸다. 결과적으로는 서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평생의 버팀목이 됐다.

부부는 요즘 연극 <햄릿> 공연(7월13일~8월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을 앞두고 연출과 배우(거트루드)로 다시 호흡을 맞추고 있다. 2016년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으로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한 한국 연극계의 원로 9명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지난 3일 성북동의 한 식당에서 손진책·김성녀 부부를 만났다. 177㎝ 훤칠한 키의 손 연출은 옷차림부터 댄디했다. 그런 남편을 가리키며 아내는 “이 사람은 나름의 확고한 패션철학이 있어 직접 옷을 사입고 내 옷도 사다주는데, 나는 평소에는 보통의 아낙네처럼 입는다”며 까르르 웃었다. 남편은 과묵하고 아내는 밝았다. 정반대 기질의 남녀가 ‘예술’을 매개로 만나 함께한 세월이 궁금했다.

“요즘 젊은 배우들 당당하면서도 책임감…어떤 면에서는 선배들이 시집살이”

손진책 연출이 지난 1일 서울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에 마련된 연극 ‘햄릿’ 연습장에서 레어티즈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박건형씨에게 연기 방향을 설명을 하고 있다. 손 연출은 70대, 80대 노장 배우들에게도 연습을 혹독히 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시컴퍼니 제공

손진책 연출이 지난 1일 서울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에 마련된 연극 ‘햄릿’ 연습장에서 레어티즈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박건형씨에게 연기 방향을 설명을 하고 있다. 손 연출은 70대, 80대 노장 배우들에게도 연습을 혹독히 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시컴퍼니 제공

- 2022년 <햄릿>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나요.

“셰익스피어가 400년 전 쓴 희곡 <햄릿>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극단과 연출가가 무대에 올릴 만큼 중요한 작품이에요. 햄릿의 주 이미지는 죽음이에요. 전 세계 <햄릿> 포스터의 90% 이상에 해골이 그려진 이유죠. 죽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죽음을 타자화하고 남의 일처럼 생각해요.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필요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어요.”(손진책)

- 2016년 무대와 다른 점은 당시 출연한 노장 배우들에 더해 젊은 배우들이 참여한다는 점이에요. 젊은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떻습니까.

“진짜 세대가 다르구나 하죠. 우리가 젊었을 때는 선배 앞에서 숨도 크게 못 쉬었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 배우들은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 다 하면서 책임감도 있어요. 든든하기도 하고, 우리는 좀 바보처럼 살았나 싶기도 해요. 또 때로는 시집살이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김성녀)

- 시집살이라고요?

“선배로서 모범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러니 농담도 편히 못하고, 다들 연습시간보다 30분~1시간 전에 나와 앉아 있어요. 우리는 미리 와서 배역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교육받았거든요.”(김성녀)

- 젊은 배우들은 어떤데요.

“제 시간에 맞춰 오죠.”(김성녀)

선배들도 답답할 땐 “배개송사 좀 해라” 농담…“우린 같은 방 안 써요 하하하”

‘햄릿’에서 거트루드를 연기하는 배우 김성녀씨는 “6년 전 손숙 선배가 연기한 거트루드는 모성이 주로 보였다면, 이번에는 좀 더 다양한 내적 갈등이 혼재된 인물로 표현할 것을 주문받았다”며 “모순되는 여러 감정을 동시에 드러내야 해 어렵다”고 말했다. 신시컴퍼니 제공

‘햄릿’에서 거트루드를 연기하는 배우 김성녀씨는 “6년 전 손숙 선배가 연기한 거트루드는 모성이 주로 보였다면, 이번에는 좀 더 다양한 내적 갈등이 혼재된 인물로 표현할 것을 주문받았다”며 “모순되는 여러 감정을 동시에 드러내야 해 어렵다”고 말했다. 신시컴퍼니 제공

이번 무대에서는 권성덕(81), 전무송(81), 박정자(80), 손숙(78), 정동환(73), 유인촌(71), 윤석화(66), 손봉숙(66), 길해연(58) 등 대배우들이 클로디어스부터 유령, 무덤파기, 배우 1~4 등 조연과 앙상블로 참여한다. 햄릿, 오필리어, 레어티즈, 호레이쇼 등은 강필석, 박지연, 박건형, 김수현, 김명기, 이호철 등 젊고 유망한 연극·뮤지컬 배우들이 맡는다.

- 김성녀씨는 2016년에는 햄릿의 친구 호레이시오 역을, 이번에는 형인 선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차지하는 클로디어스와 재혼하는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를 맡았어요. 어떻게 연기할 생각인가요.

“거트루드는 사건의 발단을 제공하는 인물이에요. 모성으로 햄릿을 보호하려 하느냐, 아니면 권력과 욕정에 눈이 먼 인물로 표현하느냐를 두고 늘 고민하게 하죠. 6년 전 손숙 선배가 연기한 거트루드는 모성이 주로 보였다면, 이번에는 좀 더 다양한 내적 갈등이 혼재된 인물로 표현할 것을 (손 연출에게) 주문받았어요. 그래서 더 어려워요. 모순되는 여러 감정을 동시에 드러내야 하니까요.”(김성녀)

- 손 연출은 70대, 80대 노장 배우들에게도 연습을 혹독하게 시킨다죠.

“작품에 완성이라는 것은 없으니까요. 완성을 향해 갈 뿐이지…. 그러니 끊임없이 주문을 할 수밖에요.”(손진책)

“이 사람은 배우들이 힘들어할 정도로 매일매일 집요하게 새로운 주문을 해요. 특히 저한테는 채찍질을 더 해요. 그런데 옳은 말도 기분 나쁘게 해요. (손바닥을 배꼽에서부터 가슴까지 끌어올리며) 속에서 열이 나죠. 그런 날에는 집에 가서 막 들이받아요.”(김성녀)

- 누가 이깁니까.

“다들 제가 이기는 줄 알아요. 그런데 결과는 늘 이 사람이 원하는 대로 가요. 어떤 면에서는 안주하지 않게 하니까 고맙기도 해요. ‘두고 보자, 내일 뭔가 새로운 걸 보여주겠다’는 오기가 발동하거든요. 그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거울 보고 연기연습을 한다니까요.”(김성녀)

- 그때 남편은 뭐라 하나요.

“이 사람은 모르죠. 선배들이 답답할 때면 저한테 농담으로 ‘야, 베개송사 좀 해라’ 해요. 저는 말해요. ‘우리는 같은 방 안 써요.’ 둘 다 예민하다보니 한 사람이 옆에서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잠을 못 자거든요. 40대부터 따로 잤어요. 딱 애 둘 낳을 정도(부부 사이에는 손지원·지형 남매가 있다)만 같이 잔 거 같아요. 하하하….”(김성녀)

1976년 ‘한네의 승천’서 만나 이듬해 결혼
“김밥, 박카스 챙겨주는 모습에 내 편이라는 생각 들어”

손진책·김성녀 부부는 1976년 극단 민예의 ‘한네의 승천’에서 연출과 배우(한네 역)로 만나 이듬해인 1977년 결혼(사진)했다. 김성녀 배우 제공

손진책·김성녀 부부는 1976년 극단 민예의 ‘한네의 승천’에서 연출과 배우(한네 역)로 만나 이듬해인 1977년 결혼(사진)했다. 김성녀 배우 제공

아내가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불평하는 동안 남편은 가만히 웃고만 있다. 싫지 않은 눈치다. 1976년 극단 ‘민예’의 <한네의 승천>에서 연출과 배우(한네)로 만나 이듬해 결혼했으니, 함께 울고 함께 웃은 지 어느덧 47년. <한네의 승천>은 손 연출의 입봉작이자 김씨의 데뷔작이다.

- 두 분 모두 독신주의였다고요. 그런데 어쩌다 연애하고 결혼했나요.

“과거에는 연극을 하면서는 먹고살 수 없었어요. 그러니 연극쟁이가 결혼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그런데 이 사람이 연습 기간에 내가 밥도 안 먹고 하니까 김밥을 제 책상에 사다 놓더라고요. 다 같이 술 마신 다음날에는 박카스도 올려놓고요.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래서 사람들이 연애하는구나 싶었고요.”(손진책)

“다른 배우들도 연출 자리에 먹을 것 놓거든요. 자기도 제게 약간의 관심이 있었다고 하면 얘기가 끝나는데, 꼭 이렇게 애매하게 말한다니까요.”(김성녀)

- 김성녀씨가 쓴 어느 책을 읽어보니까 “남편을 젊을 때는 사랑했고 지금은 존경한다”고 썼던데요.

“남편은 돈을 모르고 오직 연극만 아는 순수한 예술가예요. 늘 꿈꾸는 사람 같죠. 저도 이 사람을 만나 학문과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어졌어요. 젊은 날에 저를 데리고 미술관이나 음악회에 다니며 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했거든요. 마치 저를 좋은 배우로 키우려고 작정한 사람처럼요.”(김성녀)

손 연출은 “100년의 인연이 있어야 같은 배를 타고, 1000년의 인연이 있어야 같은 잠자리에 든다는 말이 있다”며 “우리는 그런 자장이, 인연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경상북도 영주 출신의 8남매(3남5녀) 중 장남과 결혼한다는 것은, 그것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두 예술가가 관습적 요구를 받는 일상을 함께 꾸린다는 것은 가시밭길이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사만 1년에 12번. 더구나 김성녀씨는 시댁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시동생과 시누이들 시집·장가까지 보냈다.

- 연극하면서 시집살이까지 해 힘들었겠어요.

“초창기엔 남편과 갈라설까 고민한 적도 있어요. 밖에서 녹초가 돼 집에 돌아오면 설거지가 또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까요. 너무 힘들면 제가 말을 안 하고 뚱해 있으니 시어머니와 관계도 좋지 않았어요. 언젠가는 제가 길모퉁이에 선 채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이 사람이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네 편이야’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위안을 얻고 또 들어갔죠. 하하하….”(김성녀)

- 시어머니와는 관계가 개선됐나요.

“어느 날 어머니께 토로했어요. ‘손진책씨는 결혼할 때 우리 엄마는 법 없이도 사실 좋은 분이라고 했지만, 저한테는 법이 있으세요’라고요. 서운한 점을 1시간 동안 말씀드렸죠. 어머니는 가만히 들으시더니 ‘내가 잘못했다. 앞으로 그래도 내가 너를 믿고 살 테니 잘해보자’ 하셨어요. 그러고나서 얼마 있다가 돌아가셨어요.”(김성녀)

연극밖에 모르는 남편 위해 희생한 아내에게 남편은 인생작 ‘벽 속의 요정’ 선물

남편 손진책이 아내 김성녀에게 2005년 선물한 1인극 ‘벽 속의 요정’ 극단 미추 제공

남편 손진책이 아내 김성녀에게 2005년 선물한 1인극 ‘벽 속의 요정’ 극단 미추 제공

부부는 47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작품을 함께했다. 아내는 연극밖에 모르는 남편이 예술에만 정진할 수 있도록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돈을 벌기 위해 연극과 뮤지컬, TV 드라마, 국악 등 각종 장르를 넘나들었다.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가계부를 쓰고 낡은 운동화에 가장 싼 화장품만 사 쓰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런 아내에게 2005년 남편은 ‘인생작’을 선물했다. 1인극 <벽 속의 요정>(연출 손진책)이다. 혼자서 32인 역을 소화해야 하는 이 작품은 거의 매년 성황리에 공연된다.

- 부부가 집에서 보는데 일터에서도 만나면 좀 지겹지 않나요.

“그러니까 우리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연극 얘기밖에 안 해요. 서로 모르는 개인사도 없죠. 다만 아이들에게 미안해요.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엄마아빠의 손길을 못 받고 자랐거든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래요. 엄마는 아빠 같고, 아빠는 이웃집 아저씨 같다고요.”(김성녀)

- 딸 지원씨는 뮤지컬 배우로 영국에서도 활동했고, 아들 지형씨는 연극 연출가이지요.

“딸은 예술치료도 공부했어요. 지금은 사위와 함께 귀촌해 작품을 구상하고 있어요. 아들은 극단과 소극장을 운영하면서 연출을 하고 있고요.”(김성녀)

국립국장서 공연했던 마당놀이 중단에 “진영논리가 예술까지 침범하는 건 비극”

남편 손진책과 아내 김성녀가 열정을 쏟은 마당놀이 ‘심청전’.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는 윤문식·김성녀·김종엽의 찰진 입담, 시원한 시대 풍자, 배꼽잡는 해학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극단 미추 제공

남편 손진책과 아내 김성녀가 열정을 쏟은 마당놀이 ‘심청전’.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는 윤문식·김성녀·김종엽의 찰진 입담, 시원한 시대 풍자, 배꼽잡는 해학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극단 미추 제공

이 부부의 이야기에서 마당놀이를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는 1986년 극단 ‘미추’를 창립하고 다양한 장르의 연극을 선보였다. 특히 한국적인 음악극을 표방한 ‘마당놀이’로 명성을 떨쳤다. 윤문식·김성녀·김종엽의 찰진 입담, 시원한 시대 풍자, 배꼽 잡는 해학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방송국에서 명절 황금시간대에 마당놀이 녹화방송을 방영할 정도였다. 2010년 손 연출이 국립극장 초대 예술감독이 되기 직전까지 30년간 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 2010년 맥이 끊기는가 싶던 마당놀이는 2014년 극립극장에서 <심청이 온다>로 다시 이어졌지요. 세대교체를 통해 윤문식·김성녀·김종엽 트리오 대신 국립창극단의 젊은 배우들이 연기했고, 객석도 공연 내내 꽉 들어찼어요. 그렇게 2019년 12월까지 6년간 국립극장에서 매해 마당놀이를 공연했는데 이후 자취를 감췄어요. 코로나19 때문인가요.

“김철호 당시 국립극장장이 제가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걸어서 더 이상 못하게 된 거예요.”(손진책)

- 어떤 조건이죠.

“수십년간 저와 마당놀이를 함께 만들어온 박범훈(작곡), 국수호(안무)를 빼고 스태프를 다시 구성해 공연하라 했어요. 하지만 이 분들만큼 마당놀이 작곡과 안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손진책)

- 박범훈씨의 경우 이명박 청와대에서 교육문화수석을 맡았던 전력 때문인가요.

“진영논리가 예술까지 침범하는 것은 비극이에요. 지성은 정파성을 띠어선 안 돼요. 정권과 관계없이 예술은 어떤 목표를 향해 계속 발전해 나가야 하지, 이런 식이면 쌓이는 게 없어요. 마당놀이 1세대가 떠난 자리에 2세대가 들어서고, 또 3세대로 이어지면서 문화가 되는 건데, 안타까워요.”(손진책)

코로나로 생사 오간 손진책 “내가 연극에만 몰입할 수 있던 8할은 김성녀 덕”

손진책 연출은 2020년 말 코로나19에 감염돼 생사를 오가던 때, “아내와 자식들에게 해준 게 없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3주간의 입원 치료 후 구사일생으로 병원 문을 나선 그가 처음 한 말도 “나는 이제부터 김성녀에게 잘해주기로 했어!”였다. 우철훈 선임기자

손진책 연출은 2020년 말 코로나19에 감염돼 생사를 오가던 때, “아내와 자식들에게 해준 게 없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3주간의 입원 치료 후 구사일생으로 병원 문을 나선 그가 처음 한 말도 “나는 이제부터 김성녀에게 잘해주기로 했어!”였다. 우철훈 선임기자

2020년 11월에는 생사를 오가는 큰 위기가 닥쳤다. 손 연출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죽음의 문턱까지 간 것이다. 당시는 백신이 국내에 도입되기 전이다. 감염돼 사망하면 ‘확진 사망자’라는 꼬리표 때문에 화장은 물론 장례조차 쉽지 않았을 때다.

- 어쩌다 감염된 건가요.

“잘 아는 젊은 지휘자 커플과 성북동 작은 카페에서 2시간여 동안 식사를 했는데 다음날 이상하게 근육통이 심했어요. 식사를 같이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자기가 확진됐다고, 너무 죄송하다고 해요. 그 길로 보건소에 갔더니 확진이래요. 앰뷸런스에 실려 서울의료원으로 향하는데 그새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전파했을까 생각하니 참담하더라고요. 전날 밤 피아노 연주회까지 다녀왔거든요. 다행히 가족을 포함해 저에게 감염된 사람은 없었어요.”(손진책)

- 가족들이 간병도 못하고 노심초사했겠어요.

“저도 밀접접촉자로 집에서 격리돼 있는데 남편이 입원한 병원에서 주치의가 전화를 했어요. ‘지금 호흡이 안 돼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다. 경과 보고 다시 전화드리겠다’고요.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는데, 며칠 후 다시 또 전화가 온 거예요. ‘호흡이 아주 곤란해져 더 큰 산소호흡기를 착용했는데 오늘 밤이나 내일까지가 고비’라고요. 병원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김성녀)

-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젊은 시절부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해왔기에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어요. 다만 삶이라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파노라마처럼 지나온 시간이 떠올랐어요. 내가 제대로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엇보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미안했어요. 별로 해준 게 없거든요. 나는 평생 이기적으로 연극만 했어요. 내가 연극에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의 8할은 김성녀 덕분이에요.”(손진책)

3주간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구사일생으로 손 연출은 병원 문을 나섰다. 그러고는 지인들에게 첫마디로 이렇게 내뱉었다. “나는 이제부터 김성녀에게 잘해주기로 했어!”

손 “언젠가 ‘토지’ 연출하고 싶어”
김 “70대인 지금이 전성기, 행복해요”

고(故) 박옥진 명창과 연출가 겸 극작가 김향의 장녀로 태어나 5살 때부터 무대에 올랐던 김성녀씨는 “60대 때 예열하고 지금 70대 때 전성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햄릿’이 끝나면 뮤지컬 ‘노부부의 방문’에 출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철훈 선임기자

고(故) 박옥진 명창과 연출가 겸 극작가 김향의 장녀로 태어나 5살 때부터 무대에 올랐던 김성녀씨는 “60대 때 예열하고 지금 70대 때 전성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햄릿’이 끝나면 뮤지컬 ‘노부부의 방문’에 출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철훈 선임기자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매일 1만~2만보씩 걸어요. 돈암동 집에서 북악산 팔각정까지 걸을 때도 많고, 바쁜 날에는 아침에 우리 부부가 사는 아파트 11층부터 지하층까지 계단을 6번 정도 오르내려요. 그러면 63빌딩 계단을 오르내린 것과 같으니까요(웃음).”(손진책)

“저는 집에서 혼자 뜨개질이나 퀼트를 하거나 민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도 나이 들었으니 운동을 좀 해야겠다 싶어 일주일에 한두 번 정릉까지 40분 정도 걸어요.”(김성녀)

-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언젠가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연출하고 싶어요. 하지만 친구에게 부탁해뒀어요. ‘내 머리가 낡았다고 판단되면 연출을 멈추라’고 말해달라고요. 돌아보면 저는 운이 좋은 연출가예요. 마당놀이 장르를 만들고, 아리엘 도르프의 희곡 <디 아더 사이드> 세계 초연 등 하고 싶은 많은 작품을 연출했으니까요. 2002 월드컵 개막식 연출도 했고요. 감사한 일이에요.”(손진책)

“저는 60대 때 예열하고 지금 70대 때 전성기를 맞은 것 같아요(웃음). 중앙대 국악대학장에 이어 2012년부터 7년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도 맡았으니까요. <햄릿>을 마치면 뮤지컬 <노부부의 방문>에 출연하기로 돼 있어요. 제가 먼저 밝힐 수는 없지만 또 다른 계획도 있고요. 그래서 행복해요.”(김성녀)

김성녀씨가 다시 까르르 웃었다. 아내의 웃음소리에 남편의 입가에도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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