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제3권 : (3) 이윤율 저하 경향

2013.02.01 19:27 입력 2013.03.01 23:43 수정
강신준 | 동아대교수·경제학

자본주의 모순은, 생산이 소비가 아닌 이윤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

■ 경쟁과 이윤율의 하락 법칙

경쟁은 자본주의에 작용하는 하나의 자연법칙입니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구조는 비교할 대상이 없는 (1)의 상태였지만 두 사람이 만나면서 사회적 관계(1+1)가 발생하는 자본주의에서는 서로 상대방과 비교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그것이 경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지요. 이윤율을 둘러싼 경쟁은 앞서 보았듯이 이윤율을 균등화시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사물의 운동법칙인 변증법의 두 가지 얼굴을 함께 보여줍니다. 경쟁은 상대방과 격차를 벌리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상대방도 역시 동일한 의지를 갖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두 의지는 서로 상쇄되어 균등한 이윤율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정운찬 위원장의 얘기와 이건희 회장의 얘기가 상반된 것 같지만 실은 동일한 것인 까닭은 두 사람이 경쟁의 양면을 각기 따로 얘기하고 있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쟁의 이 두 가지 얼굴은 자본주의에서 항상 함께 작용하고 그것은 또 하나의 모순적인 법칙을 만들어냅니다. 자본가들의 경쟁이 만들어내는 평균이윤율이 점차 하락하는 법칙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법칙은 자본주의에서 실제 현상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마르크스 이전의 경제학자들도 대부분 알고 있었습니다. 토머스 칼라일이 인구론으로 유명한 맬서스의 책을 읽고 “경제학은 음울한 학문”이라고 했던 것은 유명한 얘기인데 그것이 바로 이 법칙과 관련된 얘기 때문입니다. 이윤율의 계속되는 하락은 거기에 의존해 있는 자본가들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즉 이 법칙은 바로 자본주의의 비극적인 운명과 관련된 일종의 묵시록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경제학자는 모두 이 법칙을 알고는 있었지만 올바로 해석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습니다. 마르크스는 이 법칙의 분석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결함인 공황의 핵심적인 원리들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즉 이 법칙은 2008년 무덤 속에서 마르크스가 다시 걸어나온 것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부분인 것입니다. 우선 이 법칙을 요약한 마르크스의 얘기를 먼저 보도록 합시다.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발전해나감에 따라
사회적 노동생산력의 발전은 한편으로는
이윤율의 지속적인 저하 경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획득되는 … 이윤의 절대량의
증가로 나타난다.” (3권, 297쪽)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사항은 이윤율의 하락과 이윤량의 증가가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사물의 운동은 항상 일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입체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바로 변증법적 성격 때문입니다. 이 법칙도 그냥 이윤율이 하락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락을 상쇄하는 요인들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 법칙을 “경향적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이 상쇄요인을 먼저 보도록 할까요?

■ 상쇄요인

이윤율의 하락을 상쇄하는 요인으로 마르크스가 들고 있는 것은 모두 6가지입니다. 이윤율은 ‘잉여가치/(생산수단+노동력)’이므로 여기에서 분자를 늘리고 분모를 줄이는 모든 방법이 바로 상쇄요인이 됩니다. 분자를 높이는 방법은 잉여가치를 늘리는 방법인데 우리는 제1권에서 이들 방법을 이미 자세히 보았습니다. 먼저 노동시간을 늘리고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법이 있었지요. 그런데 이들 방법은 생산에 사용되는 노동자의 수를 줄입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노동자의 수가 줄어들면 그것은 곧 잉여가치의 원천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잉여가치를 늘리는 방법이 잉여가치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지요.

또 하나의 방법은 생산력을 높이는 방법이었지요. 이것은 분모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한데 즉 그것은 노동력의 가치와 생산수단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갖습니다. 그런데 생산력의 증가는 이윤율을 하락시키는 바로 그 요인입니다. 모든 사물이 가지고 있는 변증법의 이중적인 얼굴, 바로 그것이지요. 그래서 이들 상쇄요인은 이윤율의 하락을 막지는 못합니다. 단지 완화시킬 수 있을 뿐이지요.

▲ “일반이윤율의 저하를 유발하는 요인은
동시에 이 저하를 … 완하하며 … 상쇄해버리기까지 하는
반대작용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그리하여 법칙은
단지 경향으로만 작용하고 … 일정 조건에서만
그리고 장기간에만 뚜렷하게 나타난다.” (3권, 317쪽)

이들 방법 외에 마르크스는 두 가지 요인을 더 들고 있는데 하나는 외국무역입니다. 생산조건이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상품은 가치 이상으로 판매될 수 있고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값싼 후진국에 투자된 자본은 선진국의 경우보다 높은 이윤율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주식자본인데 주식에 대해서는 통상 대출을 받은 경우 지불하는 이자보다 낮은 배당만 지불되기 때문에 이윤율을 조금 높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들 요인은 이윤율의 결정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기보다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입니다.

■ 법칙의 전개과정

상쇄요인의 설명을 마친 다음 마르크스는 법칙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자본주의가 봉건제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생산력을 봉건제보다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이런 생산력 발전은 잉여가치를 보다 많이 얻으려는 노력의 결과였고(특별잉여가치) 그런 노력의 지속적인 형태가 축적이었습니다. 축적은 자본주의의 장점이자 무기였던 셈이지요.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다본 제1권의 얘기였지요. 이제 제3권에서 땅위로 내려오면 이 축적이 이윤율의 저하라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윤율의 저하와 축적의 촉진은 양자가 모두 생산력의 발전을 나타내는 것인 한 동일한 과정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3권, 320쪽)

제1권의 축적에서 우리는 생산력의 발전이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잉여가치가 자본을 만들어주면서 자본규모가 계속 커진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특별잉여가치의 생산이 축적과 결합하면서 생산수단에 비해 생산에 사용되는 노동자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두 요인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생산수단에 비해 노동자의 숫자가 줄어들면 동일한 비용가격에서 잉여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윤율이 하락합니다.(이윤율=잉여가치/비용가격) 노동자 한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잉여가치의 크기는 하루의 노동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으니까요. 반면 자본규모를 키우면 동일한 이윤율에서도 이윤량은 늘어납니다. 따라서 그것은 이윤율의 하락을 상쇄하기 때문에 자본규모를 키우려는 자본가들의 노력은 필연적입니다. 재벌이 덩치를 계속 키우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윤량이 이윤율의 하락을 보상해주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자본규모가 이처럼 계속 커지면 새롭게 자본으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자본규모도 커지기 때문에 일정 규모 이하의 작은 자본들은 놀려지게 됩니다. 자본규모가 커질수록 이처럼 놀려지는 자본도 늘어나지요. 소위 자본과잉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한편 특별잉여가치의 생산 때문에 노동력도 갈수록 적게 사용되어서 여기에서도 과잉상태가 발생합니다. 과잉자본과 과잉노동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지요.

▲ “자본의 과잉과 인구의 과잉이 함께
나타나는 것은 전혀 모순이 아니다.” (3권, 324쪽)

그런데 자본과 노동력은 생산의 두 요소입니다. 따라서 이들 생산요소가 과잉상태로 놀려지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이 무한히 발전하지 못하고 장애에 부딪치는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생산 그 자체의 한계가 아니라 이윤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한계, 즉 자본의 본질이 부딪치는 한계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생산의 첫 번째 모순입니다.

▲ “자본주의적 생산의 참된 장애물은
자본 그 자체이다.” (3권, 330쪽)

그런데 생산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제2권에서 땅위로 내려오다가 자본주의 생산이 소비와 분리되어 있고 이 둘을 연결해주는 교환이 둘을 일치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이미 보았습니다. 이제 제3권에서는 바로 그 소비가 직접 문제가 됩니다. 모든 소비는 개인적 소비로 귀결됩니다. 또 하나의 소비인 것처럼 보이는 자본가들의 생산적 소비(=투자)도 결국 최종 소비로 가기 위한 중간소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한 사회의 소비능력은 결국 인구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노동자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경제활동인구 2500만명 가운데 임금근로자가 약 1740만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2011년 기준) 이들 노동자의 소비능력은 이들이 받는 임금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지요. 그런데 축적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여서 얻은 잉여가치를 자본으로 다시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축적은 생산력의 발전을 통해 생산을 늘리지만 동시에 소비능력을 줄여야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산과 소비는 점점 간격이 벌어지고 그것은 결국 공황을 가져옵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두 번째 모순입니다.

▲ 사회의 소비력은 … 사회의 대다수 소비를 …
최소수준으로 제한하는 적대적인 분배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 생산력이 발전할수록 …
그것은 소비관계가 기초해 있는 토대와 점점
더 깊은 모순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3권, 324쪽)

이런 모순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소비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이윤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본주의는 생산력 발전의 한계에 부딪치고 새로운 생산양식을 준비하게 됩니다. 자본주의 이전의 모든 생산양식도 생산력 발전의 한계에 부딪친 바로 그 지점에서 운명을 마치고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이행했답니다.

▲ 사회적 노동생산력의 발전은 자본의 역사적
과제이며 … 역사적 정당성이다. (그런데)
자본의 입장에서 생산력 발전이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시간을 증가시키는
한에서만이지 물적 생산 일반에서 노동시간을
감소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생산력의 발전은 본래의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3권, 342·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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