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지킨 대학 떠나는 오세철 연세대 교수 “강단에서 현장으로, 끝이 아닌 시작이죠”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70)는 1970년 경영학과 전임교수로 부임했다. 시간강사를 시작한 1967년부터 따지면 올해까지 만 46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런 그가 11일 강의를 마지막으로 대학 강단을 떠난다. 오 교수의 마지막 수업을 알리는 초대장엔 그가 “반세기에 달하는 긴 세월을 연세대 영욕과 함께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지난 7일 만난 오 교수는 ‘영욕의 세월’ 중 자신의 전환을 이룬 계기가 된 두 순간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1977년 제자인 경영학과 2학년생 3명이 ‘유신 철폐’를 외치다 경찰에 체포됐다. 어린 제자들의 투쟁에 ‘강단 마르크스주의자’는 자괴감을 느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87년 경영학과 제자 이한열의 죽음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현장과 실천의 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그들이 앞장서 나를 깨트렸어요. ‘학생이 스승이다.’ 어딜 가나 늘 하는 말입니다.”

46년 지킨 대학 떠나는 오세철 연세대 교수 “강단에서 현장으로, 끝이 아닌 시작이죠”

▲ 강단의 마르크스주의자 유명
87년 제자 이한열의 죽음과
‘올해의 스승’ 선정 가장 기억
사회실천연구소서 활동 계속

오 교수는 지난 5월 개교기념일에 학교를 방문한 ‘84학번’ 제자들이 ‘올해의 스승’으로 자신을 선정한 것을 가장 보람찬 일로 꼽았다. “국가보안법에 걸린 나를 뽑아줬죠. 1984년은 학내 투쟁을 시작한 해입니다. 84학번은 87항쟁이 일어난 직후 졸업했습니다. 날 뽑은 게 제 반세기를 말해주는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제자들의 오 교수에 대한 평가는 “강의를 통해 수많은 청년들에게 사유의 힘과 실천의 고민을 제시하는 한편, 그 자신 또한 강단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 땅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 깊숙이 뛰어들어 이론과 실천의 융합을 실천해왔다”는 초청장 문구로 짐작할 수 있다. 오 교수는 1980년대 이후 도처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용산, 쌍용차, 한진중, 재능 등 투쟁 현장에서 연대를 이어왔다. 2004년 5년 남은 정년을 걷어차고 명예퇴직을 한 것도 사회과학대학원 설립이라는 학문적 실천을 위해서였다. 명예퇴직 이후에도 강의를 계속하다 수업 가능연한인 70세를 맞아 대학을 떠나게 됐다.

오 교수는 ‘경영학’ 교수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경영학은 ‘자본의 도구 학문’이다. 주로 심리학·사회심리학·조직행동을 가르쳤다. 1984년 직선제로 학과장이 되고 나서 사회과학을 필수과목으로 편성하는 교과과정 개편을 했다. 오 교수는 “경영학과라고 해서 장사꾼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라 교양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가 말하는 ‘교양’이란 운동과 투쟁의 역사,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또 역사를 움직이는 이론과 사상을 공부하고, 사회 변혁을 위해 실천하는 게 교양이다.

대학을 떠나는 오 교수는 “제도권 강단에서 거리로, 현장으로 가는 의미가 크다.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다. ‘마르크스주의자’ 오 교수의 새로운 시작은 다시 ‘마르크스’에서 출발한다. “2018년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입니다. 단순히 마르크스를 기리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5년 동안 무엇을 연구하고 어떤 투쟁사업을 전개할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실천을 꿰뚫는 핵심을 계급의식으로 본다. 그가 계획하는 학문연구는 계급의식을 가로막는 요인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이다. 그는 ‘일상사’를 방법론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은 노동자들의 삶을 연구해야 합니다. 일상사가 부르주아 학문에 편입될 가능성이 있지만 마르크스의 원칙과 이론으로 구체적인 삶과 일상을 들여다봐야 계급의식의 장애물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마르크스는 소외를 이야기했지만 소외와 삶에 관한 후속 연구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했다.

오 교수는 퇴임 이후 연구와 실천의 거점으로 삼아온 사회실천연구소 활동을 강화할 작정이다. 연구소가 매달 내는 잡지 ‘실천’을 계간지로 바꾸고 번역 중심에서 벗어나 여러 국내 필자의 글도 실을 계획이다. 장기 계획도 세웠다. 계간지에 ‘오세철이 미래의 코뮤니스트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10년간 40회에 걸쳐 집필할 예정이다. 그는 “1인칭이지만 자서전이 아니라 현장 경험을 중심으로 한국 운동사를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의 ‘마지막 수업’은 11일 오후 연세대 장기원기념관에서 열린다. 강의 내용을 묻자 “소회나 개인사는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며 1848년부터 2013년까지 자본주의 역사와 계급투쟁의 흐름을 간략하게 정리한 도표 한 장을 내밀었다. 도표 위에 볼펜으로 적은 강의 제목은 ‘역사, 이론 그리고 실천-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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