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학교 가는 길’ 백홍종 감독 “아버지의 마음이다”

2014.12.01 10:45 입력 2014.12.01 10:50 수정

인도 히말라야의 라다크 산간 오지에 자리한 ‘차’마을. 이 마을 아버지들은 일년에 단 한 번 인더스강 상류 잔스카르강이 얼어붙는 시기를 기다려 얼음담요라 불리는 ‘차다’(chaddar)를 걷는다. 눈으로 길이 막히는 1~2월,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아이들을 학교가 있는 ‘레’까지 데려다 주는 방법은 히말라야 산맥 사이를 흐르는 잔스카르강을 10여일간 걸어서 건너는 것 뿐이다. 목숨을 잃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기도 하지만 자식들의 꿈을 위해 아버지들은 이 등굣길을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감독 이경묵, 제작 KBS미디어)은 6개월 동안 겨울이 지속되는 히말라야 ‘차’ 마을과 ‘파룸’ 마을 아이들이 그 아버지들과 얼음길을 걸어 등교하는 내용을 카메라에 담았다. 지난 4월 KBS 1TV <KBS 파노라마>에서 방영된 다큐드라마 ‘학교가는 길, 차다’의 극장판이다.

백홍종 KBS 촬영감독이 26일 경향신문 여적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가는 길> 촬영 중 겪은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백홍종 KBS 촬영감독이 26일 경향신문 여적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가는 길> 촬영 중 겪은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극장판 개봉을 앞두고 촬영을 맡은 백홍종 KBS 촬영감독(47·사진)을 지난 26일 만났다. 백 감독은 2007년 방송된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로 2007년 그리메상 대상과 2008년 방송대상 촬영상 등을 수상한 KBS의 대표적 촬영 감독이다.

<학교 가는 길>은 <차마고도>, <의궤, 8일간의 기록>에 이어 그가 촬영감독으로 참여한 작품 중 세 번째 극장 개봉작이다.

백 감독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학교 가는 길’이 세 번째로 극장에 상영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며 “현지인들의 문화속으로 들어가 함께 생활하고 어울리다 보니 이렇다 할 충돌 없이 순조롭게 촬영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 달여간의 촬영기간 내내 머리를 한 번도 못 감은 것은 물론 씻지도 못하고 속옷도 갈아 입지 못했지만 이런 호사스런 투정을 하기에는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며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아버지들의 소망이 너무나 간절하고 절박했다”고 말했다.

차 마을 아버지와 아이들이 얼음길을  썰매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사진 백홍종 감독 제공

차 마을 아버지와 아이들이 얼음길을 썰매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사진 백홍종 감독 제공

백 감독은 “이방인의 눈에는 강이 얼때를 기다려 얼음길을 이용하거나 바지를 벗고 강을 건너는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면서 “절벽을 따라 걷다 낭떠러지에서 추락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고 얼음이 녹은 강을 건너느라 허벅지까지 물에 빠져 손발이 얼음으로 코팅되는 듯한 경험도 했다”고 촬영과정을 설명했다.

잠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동굴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영하 30℃ 안팎의 날씨에 침낭 하나에 의존해 밤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백 감독은 “스태프는 그래도 텐트생활을 했지만 현지인들은 노천이나 동굴에서 바람만 피하면서 밤을 보냈다”면서 “아이들은 그래도 학교에 간다는 희망 때문인지 힘든 내색도 없이 절벽을 오르고 짐을 싣는 썰매를 타고 노는 등 행복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노천에서 잠을 자며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들. 백홍종 감독 제공

노천에서 잠을 자며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들. 백홍종 감독 제공

1994년 KBS에 입사해 지난 20여년 간 약 56개국을 다니며 오지와 전쟁터를 체험한 백 감독도 추위를 이기는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 이번에도 백 감독을 포함한 스태프들은 동상에 시달렸고, 이중 일부는 동상으로 피부가 손상돼 집중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는 “싸구려 선글래스를 쓴 탓에 눈부신 설원은 눈을 빨갛게 충혈시켰으며 얼음물에 빠져 신발과 양말이 젖으면 대충 물기를 짜서 다시 신고 계속 걸어야 했다. 그나마 우리(스태프)는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신발에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현지인들은 맨발에 장화를 신고 산을 오르내리고 얼음길을 걸었다”면서 “장화를 신고 얼음 위를 걷는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든지 상상이 갈 것”이라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백 감독은 오지 촬영 현장에서 느끼는 고민과 다큐멘터리 촬영에 대한 견해도 털어 놓았다.

그는 “다큐가 진실이냐, 사실이냐는 논쟁도 많지만 어찌됐든 촬영을 시작하면 우리 시각으로 그들을 재단하게 된다”면서 “더 가슴 아픈 사연이나 그들의 고단함을 부각시켜야 스토리가 돋보이지만 일부러 그런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음판에서 수백 번 넘어지며 얼음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그런 모습을 덜 부각시키려고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이방인이지만 최대한 이방인처럼 굴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 감독은 이번 촬영을 취재비자가 아닌 관광비자로 가게 돼 큰 카메라를 갖고 갈 수 없어 소형카메라로 촬영을 했다. 그는 “오히려 소형카메라로 찍다 보니 현지인들과의 거리를 좁혀 현장감 있는 영상을 담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홍종 감독이 소형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있다. 백홍종 감독 제공

백홍종 감독이 소형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있다. 백홍종 감독 제공

백 감독은 이 지역의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후원자에게 선택된 아이들만이 학교에 갈 수 있다.

그는 “후원을 받는 아이를 제외하고는 스님이 되거나 마을에 남아 농사를 지을 수 밖에 없다”며 “우리 시각으로 열흘 이상 얼음길을 걸어서 어떻게 학교를 가냐는 의문을 갖기에는 이들의 욕망이 너무나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찾기 위해 목숨걸고 학교에 가는 것이다. 학교가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 마을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 백홍종 감독 제공

차 마을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 백홍종 감독 제공

백 감독은 ‘학교 가는 길’이 극장판으로 개봉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부성’이라는 감성코드를 꼽았다.

그는 “‘학교 가는 길’은 아버지의 마음”이라며 “디지털화 된 세상에서 오히려 가족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부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학교 가는길>은 지난 27일 개봉했다. 수익금의 15%가 더 많은 아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학자금으로 기부된다.

백 감독은 “솔직이 다큐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통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고 말했다.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 일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그는 “연출이 바둑을 두는 것이라면 촬영은 바둑판 옆에 서서 훈수를 두는 것”이라고 했다. 영상미 뛰어난 작품을 찍는 비결은 “카메라가 좋아서”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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