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방어’ 비상걸린 재계

2004.12.01 17:59

국내 대기업들이 외국자본의 인수·합병(M&A) 공포에 떨고 있다. 소버린자산운용과의 2차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SK에 이어 재계 서열 1위인 삼성도 외국인 투자가의 경영권 개입 시도에 휘말려 재계 전체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주요 상장기업의 외국인 지분이 60%를 넘어섰고 시가총액의 46%는 외국인 몫이 됐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시장 개방은 우리 기업의 경영투명성이나 주주들의 권리 측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무분별한 적대적 M&A는 기업투자는 물론 국가경제에도 치명적 손실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최근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34명이 증권거래법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도 이같은 절박함 때문이다. M&A의 긍정적 요인을 살리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경영권 방어에 지친 SK=SK는 요즘 경영권 방어가 기업경영의 최대 화두다. 소버린과의 2차 경영권 분쟁은 결국 법정시비로 비화됐다. 소버린은 최태원 회장의 이사 자격을 문제삼아 법원에 임시주주총회 소집 신청서를 냈다. SK(주)의 임시이사회가 주총 소집을 거부하자 소송을 낸 것이다.

SK와 소버린의 경영권 분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4.99%의 지분을 확보한 소버린은 SK의 경영진 교체를 들고나와 재계를 긴장시켰다. SK(주)는 시가총액이 30조에 달하는 그룹의 지주회사. 소버린은 그러나 한국 대기업의 취약한 경영권 방어막을 뚫고 불과 1천8백억원의 투자비로 ‘거함’ SK의 경영권을 넘본 것이다. 소버린의 경영권 확보 노력은 총력전을 펼친 SK의 반격으로 무산됐다.

그러나 SK사태는 ‘대마불사’ 신화와 “설마 대기업 경영권을 노리겠느냐”는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재계에 M&A 경계령을 몰고왔다.

SK(주) 관계자는 “석유 정제시설이 국가 기간산업의 일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SK(주) 경영권은 국부 유출과 직결된 문제”라고 말했다.

◇재계에 번진 M&A 공포=삼성도 주력 계열사인 삼성물산에 대한 외국인 주주들의 M&A 시도에 휘말렸다.

‘경영권 방어’ 비상걸린 재계

현대자동차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주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캐피털그룹이 2대 주주로 올라서 남의 일이 아니다. 캐피털그룹은 지난달 말 현대차 주식 5.07%를 더 사들여 전체 지분이 14.61%나 된다. 캐피털측은 ‘단순투자’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엔 석연치않은 구석이 많다.

현대상선도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달 5.77%를 확보한 골라LNG를 비롯해 북유럽계 펀드 지분이 15%를 넘었다. 현대상선은 최근 외국 증권사를 통한 외국인들의 지분 매입이 계속되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10월28일 증권거래소는 12월 결산 485개 상장사 가운데 외국인 전체 지분율이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최대주주 지분율을 넘어선 기업이 48개사(9.9%)라고 밝혔다. 모두 외국인의 적대적 M&A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손발 묶인 대기업=적대적 M&A는 기업의 경영활동과 직결돼 있다. 분쟁에 휘말린 기업은 사실상 정상적인 투자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올들어 자사주 매입에만 4조원을 퍼부었다. 삼성 SDI도 주가하락 위험을 무릅쓰고 경영권 방어를 위해 7백억원을 들여 삼성물산 지분 확보에 나섰다.

최근 10대그룹의 유보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증권거래소 조사결과 10대그룹의 상장사 유보율은 9월 말 기준 593.9%로 지난해 말(505.4%)에 비해 88.5%포인트나 높아졌다. 유보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이 현금성 자산을 많이 갖고 있다는 얘기다.

교보증권 기업분석부 박종열 연구위원은 “경제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처가 마땅치 않은 데다 주가관리 비용이 불어나고 경영권 방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기업들이 현금 보유 비중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영길의원은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금융시장 개방 폭을 확대하면서 기존의 적대적 M&A 방어막마저 걷어치운 게 화를 자초한 셈”이라며 “국내 대기업이 ‘역차별’을 겪지않고 경영활동에 주력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경영권 안전장치는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근철·박경은기자 kc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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