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고령에 봉제·섬유직, 일자리 못 구해…베트남으로 옮긴 기업도 임금 싼 현지인 채용”

2017.01.30 21:29 입력 2017.01.30 21:31 수정

작년 설 연휴에 폐쇄된 개성공단…또다시 ‘우울한 설’ 보낸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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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 또다시 돌아왔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지만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는 설이 반갑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설을 쇠러 남측에 왔다가 연휴 마지막 날 개성공단이 폐쇄됐다는 소식을 들었던 탓이다. 원자재는 물론이고, 옷가지 등 개인물품들도 개성의 사무실이나 숙소에 두고 온 채였다.

지난해 2월10일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개성공단 주재원들이 1년 만에 설 명절을 지냈다.

개성공단 양말공장의 공장장이었던 김윤희씨(62)는 한국에서 설 휴가를 보내고 곧 베트남으로 돌아간다. 40년 넘는 경력을 인정해준 지인 덕에 지난해 4월 베트남에 새 직장을 얻었다. 그곳에서는 호찌민 수출산업단지 공장 안의 사택에서 지내고 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타국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는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분들은 고령자가 많은데, 베트남에 와보니 한국인 직원을 구하는 곳은 10곳 중에 1곳도 될까 말까 하더라고요. 국내 공장들은 원가 맞추기도 힘들고, 수주난으로 폐업한 곳이 많으니 사정이 더 나쁘지요. 젊을 때 외국 공장에서 일한 경험도 있고, 호찌민은 치안도 괜찮아서 날씨만 빼면 지낼 만합니다.”

정부는 개성공단을 닫은 뒤 입주기업들에 베트남 등지에서 대체 부지를 찾아보라고 했다. 한국보다는 땅값과 인건비가 싼 동남아로 공장을 옮겨 재가동한다면 기존 고용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실제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한 곳은 124개 개성공단 입주기업 중 10%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 기존 사업을 접었고, 국내에서 업종을 바꾸거나 규모를 대폭 줄여 생산활동을 재개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개성 주재원이었던 이들은 원래 직장에서 역할을 잃고 퇴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서 비슷한 경력의 인력이 쏟아져 일자리 얻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개성공단 내 섬유공장 관리를 맡았던 이혁씨(56)는 “외국에 공장을 두고 한국인 공장장이나 법인장을 채용했던 곳들도 지금은 현지화를 많이 해 인력 수요가 적다”며 “개성의 남측 노동자 700여명 중 85%가 섬유·봉제직이다. 이들이 한꺼번에 유휴인력이 되니 임금도 많이 깎였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공장에서 근무하면 받을 수 있는 월급이 2009년엔 6000달러 정도였는데 지금은 3000~40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 1년간 전 직장에서 나온 휴직급여와 정부 위로금으로 생활했다. 국내에서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해외채용 기관에 이력서를 내고 기다리는 중이다. 공단 폐쇄 이후 정부는 주재원들에게 6개월치 급여 수준인 1716만원을 지급했다.

제영모씨(64)도 이 위로금과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지난 1년을 버텼다. 하지만 생계를 해결하기에는 넉넉지 않아 베트남 등지의 공장에 취직하려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40여년간 재단일을 해왔지만 새 기술이라도 배워야 할 것 같아 늦은 나이에 학원도 알아보고 있다. 제씨는 “국내에 봉제 쪽으로는 일자리가 없어 개성으로 갔던 것”이라며 “나이가 걸림돌이긴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베트남이나 방글라데시, 미얀마 쪽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직장에서 정년을 앞두고 더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2014년 개성 주재원을 시작했던 홍재왕씨(54)는 공단 폐쇄 이후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작은 봉제공장을 차렸다. 그는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가내수공업 정도의 소규모로 공장을 하고 있다”며 “타일을 붙이는 기술 등을 배워 아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1년 전, 개성공단 문이 닫힌 직후 남은 자재를 가지러 올라갔던 날이 생생하다고도 했다.

“내 잘못도 아닌데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잖아요. 조금만 시간을 주고 결정했더라면 업체들도 그렇게 손해를 보지 않았을 것이고요. 정부가 아무 대책 없이 ‘공단을 닫을 테니 각자 알아서 갈 길을 가라’고 했으니…. 공단 문이 다시 열려도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기업들도 주재원들도 개성에 다시 가겠다고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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