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중심 경제구조 전환 없이는 혁신도, 탄소중립 대응도 어렵다

2024.02.06 21:07
박상인 서울대 교수

⑩ 대기업 개혁

경향신문·경실련 10대 총선 의제

공정한 경쟁 박탈하는 경제체제…양극화·노인빈곤·저출생·지역소멸 근본 원인
재벌 출자구조·사익편취 규제로 경쟁 촉진하고 경제력 집중 완화해야

한국은 1960년대 이후 ‘정부 주도·재벌 중심’의 경제발전 전략으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런 재벌 중심의 발전전략이 지속되면서 경제력 집중이 발생했고, 한국 경제구조와 사회구조가 재벌 중심으로 재편되고 공고화되어왔다. 특히 1997년 경제위기 이후에 살아남은 거대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과 국내 산업의 독과점화가 심화되었고, 부품·소재 산업에서는 수요독점과 전속적 하청관계가 확립되었다. 재벌 대기업들은 하청기업들에 대한 단가 후려치기와 기술 탈취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고, 21세기 첫 10년간 중국 특수와 ICT 특수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기반한 범용재 중심의 가격 경쟁력과 생산공정 혁신을 통한 성장전략은 2011년 이후 한계에 도달했는데, 이는 수출 증가율, 기업 수익률 및 성장률, 산업 경쟁력 등 여러 가지 지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중국 등 개도기 국가들이 저가 상품군에서 한국을 대체하고, 고가 상품군에서는 혁신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른바 ‘샌드위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 경제발전을 견인했던 경제구조와 전략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고, 산업의 진화가 단절된 것이다. 재벌의 내부거래와 하청기업과의 전속거래는 시장에서 진입과 퇴출의 장벽을 높이고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한국 경제에 ‘슘페터적인 혁신’이 일어나지 못하는 원인이다.

나아가 현재의 산업 및 경제 구조는 양극화, 조기퇴직, 자영업 문제, 노인빈곤, 청년실업, 초저출생, 지역소멸이라는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근본적 원인이다. 단가 후려치기와 전속적 하청단계에 따른 수익률과 임금 격차가 심화되었고, 이 구조와 격차는 중소기업·대기업, 비정규직·정규직 임금 격차와 노동시장의 분절화로 나타나고 있다.

단가 후려치기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재벌 대기업들은 굳이 임금이 비싼 50대 사무직의 고용을 유지할 필요가 없고, 이들의 조기퇴직을 강요하고 있다. 50대 초 조기퇴직은 자영업에 대한 과잉공급으로 이어지고, 자영업에서 실패는 노인빈곤을 심화시킨다. 퇴직연금은 사실상 자영업을 시작하기 위한 종잣돈으로 사용되고 결국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가 보장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경제적 생애에 대한 기대는 청년실업과 짧은 근속기간으로 이어지고, 높은 교육비 및 주거비와 더불어 청년의 혼인율과 출산율을 낮추는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과거 경제개발의 결과로 형성된 재벌 대기업·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바꾸는 산업전환 없이는, 이런 사회문제뿐 아니라, 제조업 고도화와 탄소중립 및 RE100에 대응하기도 어렵다. 다시 말하자면, 그린산업과 디지털전환 등을 포괄하는 산업전환을 위해서는, 과감하고 신속한 경제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경제구조 개혁과 더불어, 에너지전환, 노동시장 개혁,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대비 등이 종합적으로 필요하다. 이대로는 한국 경제와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지속 가능한 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이상 경제구조 개혁을 늦출 수 없다.

그런데 경제구조 개혁에서 가장 중요하고 힘든 부분이 재벌 소유지배구조의 유연성 확보이며, 이를 위해 출자구조와 사익편취 규제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자구조 개혁의 목표는 기업집단이 특정 사업 중심으로 스스로 재편하도록 유도하면서, 산업 차원에서는 진입과 퇴출 장벽을 없애 경쟁을 촉진하고, 경제 전반으로는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2013년 이스라엘 개혁을 참고해, 2층 출자구조로 전환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총수 일가 또는 지배주주의 사익편취 규제의 목적은 이들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의 결과로서 이윤을 획득하는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사익을 취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이들의 유인이 기업 이익과 일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법에 소수주주 동의제(Majority of Minority rule) 도입이 필요하다. 소수주주 동의제는 주주총회에서 특수관계인(지배주주 일가와 계열사를 포함한 개념)의 사적 이해가 걸린 내부거래, 보수 등에 대해 특수관계인을 제외한 소수주주의 과반 동의를 얻도록 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정치가 경제구조 개혁을 외면하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개혁은 기득권의 저항을 불러오고 사회적 비용과 논란을 야기하기 십상이다. 진정으로 정치가 ‘민생’을 위하고 ‘동료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정쟁 말고 정책’으로 이번 총선에서 그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

박상인 서울대 교수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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