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 노선·동일 속도·동일 설비… KTX 두 법인, 뭘 가지고 경쟁하나

2014.01.02 06:00 입력 2014.01.02 06:14 수정
박철응·강진구 기자

수서 법인 수익은 재투자 안되고 투자자에 돌아가

위탁 업무 코레일 직원 ‘불법 파견’ 논란 가능성도

정부는 수서발 KTX 주식회사를 민영화하는 일은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 자리엔 경쟁체제를 도입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를 채우고 있다. 하지만 동일 노선에서 동일한 설비·인력을 이용하는 두 법인에서 눈에 띄는 차별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철도 이용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역과의 근접성이라는 점에서 실제로는 강남과 강북을 나누는 지역 독점회사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고객 유치 경쟁보다 비용 경쟁만 이뤄지고 적자 노선을 별도로 운영해야 하는 코레일은 더 심각한 재정난을 겪을 수 있다. 결국 서로 윈윈(Win-Win)하는 생산적 경쟁 효과는 없이 수서발 KTX 주식회사의 높은 수익만 남을 공산이 커진다.

코레일과 달리 수서 KTX 법인의 수익은 철도에 재투자되지 않고 투자자 몫으로 돌아간다. 철도노조와 전문가들이 경쟁체제는 허울이고, 새 수서 법인이 민영화를 위한 단계적 절차·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리적인 의구심을 제기하는 배경이다.

KTX 수서역 건설 현장 2016년 개통을 목표로 공정률 50%를 넘긴 KTX 수서역 건설 현장.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KTX 수서역 건설 현장 2016년 개통을 목표로 공정률 50%를 넘긴 KTX 수서역 건설 현장.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1) 강북 살면서 수서역까지 간다?

서울 충무로역에서 서울역까지 지하철 소요 시간은 5분이다. 수서역까지는 37분이 걸린다. KTX를 타기 위해 어느 역으로 갈지는 자명해 보인다. 서울 북부 지역에 거주한다면 더더욱 선택의 여지가 없다.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동대문 도매시장에 상품을 구하러 온다면 서울역을 도착지로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철도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도심 접근성이다.

수서역은 서울·용산역을 이용하기에 거리가 먼 서울 강남이나 동부권 주민들, 최근 인구가 크게 늘어난 경기 성남과 용인 등 수도권 남부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입지다. 서울역이나 용산역을 이용하는 고객과는 구분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입지적 관점에서 경쟁체제 의미는 적고 강남북의 분할·독점 체제가 될 상황이다.

(2) 동일노선 속도·서비스 겨룰 수 있나

동일 노선·동일 속도·동일 설비… KTX 두 법인, 뭘 가지고 경쟁하나

기존 KTX 노선과 수서발 노선은 평택역 이남으로는 동일하다. 출발지만 다를 뿐 대부분 같은 노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우선 속도 경쟁이 불가능하다. 도로와 달리 철도 선로는 여러 열차가 시간 간격을 두고 줄지어 달리는 형태다. 수서발 KTX의 열차가 성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앞지르기를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수서발 KTX는 코레일에서 차량을 빌려오기 때문에 성능에서 차이가 없다.

현재 코레일과 서울메트로가 공동 운영하고 있는 수도권 지하철 1호선만 보더라도 운영사를 구분해 승차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특정 시간에 특정 노선의 열차를 탈 수 있느냐 여부다. 고속버스처럼 복수 회사의 열차들이 순서에 따라 배차되는 것과 유사한 형태가 될 뿐이다. 협소한 국내 철도시장을 분할하면 인력과 자원이 중복돼 산업 전체의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코레일 내부의 보고서도 나와 있다. 실제로 한국의 철도 거리는 3584㎞로 영국(1만6321㎞), 프랑스(2만9903㎞), 독일(3만3714㎞)에 비해 턱없이 짧다.

(3) 요금 인하 효과 얼마나 될까

정부는 수서발 KTX 요금을 10%가량 낮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코레일이 현재 KTX 노선에서 흑자를 보고 있으므로 수서발 KTX는 요금 인하 여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코레일은 KTX 흑자분을 벽지 적자노선 등에 재투입하는 공공성 유지 용도로 활용하지만 수서발 KTX 주식회사는 이익을 축적할 수 있다. 불공정한 경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요금 경쟁 역시 단기 효과에 그칠 공산이 크다. 같은 노선이기 때문에 코레일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수서발 KTX 요금과 비슷한 수준을 맞출 수밖에 없다. 이는 코레일 내부 구조조정과 적자노선 폐지 등의 부작용과 공공성 축소로 이어진다. 장기적으로 보면 수서발 KTX 역시 요금 인상을 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서발 KTX 주식회사에 민간 자본 대신 공적 연기금이 들어온다고 하지만 이 역시 수익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면서 “초기에는 요금을 인하하겠지만 결국에는 지하철 9호선이나 민자 유료도로들처럼 요금 인상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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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비스가 얼마나 차별화될까

서비스의 핵심은 인력이다. 그런데 수서발 KTX는 대부분 업무를 코레일에 위탁한다. 서울~부산 KTX 노선 한 열차에는 기관사 1명과 열차팀장 1명, 승무원 2명이 탑승한다. 수서발 KTX가 이보다 더 인원을 늘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기관사는 직영으로 하지만 고객이 피부로 느끼는 서비스 차별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본질적인 서비스인 안전도는 더 낮아질 수 있다. 2011년 말 작성된 코레일 내부 자료를 보면 “철도 운영자의 조직 이원화로 명령체계에 혼란을 유발하게 되며, 선로나 열차 고장 등 비상상황 시 구원 열차 등의 운행에 지장을 초래해 신속한 복구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적시돼 있다. 객실 서비스는 동일한 차량에서 같은 코레일 직원인 소수 승무원들이 협소한 공간에서 제공할 수 있는 역할의 차이가 얼마나 클지 물음표가 달리고 있다.

(5) 불법파견 논란 가능성

수서발 KTX는 기관사·열차팀장을 제외한 대부분 업무를 코레일에 위탁한다. 이렇게 되면 코레일이나 그 계열사 직원들로부터 용역을 제공받는 과정에서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자회사 소속의 열차팀장과 코레일 소속의 용역 승무원 간 혼재작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불법파견을 피해가기 위해서는 자회사가 승무원에게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할 수 없다. 결국 자회사의 업무 명령을 승무원에게 전달하는 코레일 소속의 현장대리인이 필요하다. 사고복구 현장이 생겨도 똑같다. 업무 지시 과정의 중간단계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셈이다.

인천국제공항도 경비나 보안, 청소 등 대부분의 지원 업무를 외부 용역에 의존하면서 사소한 작업도 모두 현장대리인을 통하고 있다. 돌발적인 사고위험이 발생해 빠른 판단과 대처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자회사가 현장대리인이라는 중간단계를 거쳐 코레일 직원과 업무 내용을 주고받아야 한다면 외려 고객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승무원이나 열차 정비 등 코레일 직원에 대한 업무평가도 마찬가지다. 직접적인 업무평가를 하면 불법파견 논란에서 빠져나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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