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한국산이란 이유로 무조건 사지는 않는다”

2018.10.08 22:49 입력 2018.10.25 11:28 수정

‘K팝·뷰티’에 빠진 베트남…호감은 호감, 소비는 소비

[창간 기획-콘텐츠가 미래다]베트남 “한국산이란 이유로 무조건 사지는 않는다”

지난 4일 베트남 호찌민의 고급 몰인 빈컴센터 ‘이니스프리’ 매장. 한국 배우 이민호가 그윽한 눈빛을 보내는 광고판 뒤로, 전 호우 리인 품(37·여)이 립스틱을 집어들었다. 그는 이니스프리 립스틱 색깔이 자신에게 잘 어울린다고 했다. 립스틱 이외의 화장품은 프랑스 브랜드 ‘클라란스’와 미국 브랜드 ‘에스티 로더’를 쓴다. 그는 “한국 화장품이 전체적으로 품질이 좋다. 하지만 이니스프리 외에 다른 한국 제품은 내 피부에 맞지 않아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품은 1998년 베트남에서 인기를 끌었던 한국 드라마 <모델>의 주인공 김남주를 좋아했다. 한때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다 써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별 관심이 없다. 이유를 물었다. 품은 “그때는 대학생이었고, 지금은 아이 엄마니까”라고 말했다.

같은 매장에서 피부케어 제품을 구매한 보 휜 탄 뚜(18·여)는 빅뱅과 2NE1, iKON 팬이다. 한국 아이돌을 좋아하는 게 이니스프리 매장을 찾는 데 영향을 미쳤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다. 그냥 여기 제품이 좋아서 온 것”이라고 답했다.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와 K팝, 한국 기업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997년 한국 드라마가 황금시간대에 방영된 것이 베트남 한류의 시발점이다.

드라마와 K팝을 넘어 한국 패션과 화장품의 인기는 20여년째 이어진다.

드라마에서 본 서울과 남이섬, 제주도를 가고 싶어 하고, 김치를 집에서 담가 먹는 집도 적지 않다. 삼성과 LG 현지 공장은 베트남 경제의 버팀목이다. 그만큼 한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다.

■ 베트남, ‘무조건 사랑’은 없다

베트남 점령한 ‘소비 한류’

연예인·대중문화를 좋아해서
“BTS 관련 상품은 일단 구입
K드라마 보면서 CGV 찾게 돼”

호찌민의 대형 쇼핑몰 빈컴센터 이니스프리 매장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호찌민의 대형 쇼핑몰 빈컴센터 이니스프리 매장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응우옌 김 아잉(24) 자매가 하노이의 한인마트인 K마트 내 분식 코너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

응우옌 김 아잉(24) 자매가 하노이의 한인마트인 K마트 내 분식 코너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의 인기가 한국산 제품 구매로 이어진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12살 때부터 동방신기를 좋아한 원 단 미(25)는 방탄소년단(BTS)의 광팬이다. 네이버가 운영하는 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인 ‘V-LIVE’에 올라오는 한국 가수가 누군지 줄줄 외고 있다. 그는 필요하지 않은데도 BTS와 연관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폰 케이스와 라인 이모티콘을 샀다. 그는 “요새는 아이돌그룹 ‘워너원’이 대세”라며 “ ‘워너원’으로 모델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노이의 한 CGV에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온 팜 쾅 응옥(20)은 “한국 드라마와 K팝에 친숙한 느낌이 CGV를 찾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 <탐정>을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CJ E&M에서 일하는 응우옌 흐엉 리(22)는 “한국 드라마가 좋아서 한국어를 공부했고, 한국 기업 취업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하노이의 한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호 링 치(22) 자매가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하노이의 한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호 링 치(22) 자매가 밀크티를 마시고 있다.

하노이의 돈치킨 매장에서 응우옌 밍트(15·왼쪽 검은색 옷)가 가족과 함께 해물파전을 먹고 있다.

하노이의 돈치킨 매장에서 응우옌 밍트(15·왼쪽 검은색 옷)가 가족과 함께 해물파전을 먹고 있다.

한국에 대한 호감이 한국 제품 구매로 온전히 이어지고 있을까. 한류 ‘덕’을 많이 본 제품 중 하나로 ‘K뷰티’가 꼽힌다. 하얀 피부를 예쁘다고 생각하는 베트남 여성들은 한국 화장품의 품질을 신뢰한다. 빈컴센터의 라네즈 매장에서 9년째 일하는 팜 테이 트위 린(26)은 “한국 화장품을 어떤 연예인이 광고하느냐보다는, 그 제품이 자신의 피부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보고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장을 다시 방문하는 이들도 한국 제품이 좋아서 오는 것이지 모델 때문은 아니다”라고 했다. 20~30대는 대부분 한국산 화장품인지 알고 찾지만, 40~50대는 한국 제품인지 모르고 구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6년 베트남에서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인기를 끌면서 배우 송혜교가 모델이었던 라네즈 립스틱이 주목을 받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베트남 여성은 “송혜교가 광고하는 립스틱이 분홍색이었다. 송혜교가 광고해서 사봤는데, 분홍색은 나한테 안 맞더라. 그래서 더는 안 산다”고 말했다.

제품 품질·성능이 좋아서
“톱모델 광고라도 별로면 안 사
차·휴대폰·아파트 가성비 만족”

응우옌 쑤원 허우가 하노이에서 기아 K3 차량으로 택시 영업을 하고 있다.

응우옌 쑤원 허우가 하노이에서 기아 K3 차량으로 택시 영업을 하고 있다.

한국인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을 모델로 한 광고가 하노이의 한 택시에 부착돼 있다.

한국인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을 모델로 한 광고가 하노이의 한 택시에 부착돼 있다.

K팝의 주요 팬층인 10~20대가 아니라면, 베트남에서 한류가 한국 제품 구매로 이어지는 영향력은 더 낮을 수 있다. 하노이의 택시기사 응우옌 쑤원 허우(43)는 기아 K3 승용차를 운전한다. 그는 한국차를 택한 이유를 “동급 일본차보다 싸고 옵션도 많아서”라고 했다. 하노이 도로에서 중형차는 일본차가, 소형차는 모닝·i10 등 한국차가 대세다. 한국 드라마 <첫사랑>이 인상적이었다고 한 허우는 “한국 드라마가 한국차 구매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싸고 내구성이 좋아서 고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계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응우옌 비엣 탕(39)은 혼다 시빅을 타고, 삼성 스마트폰을 쓰며, 부영 비나에서 지은 아파트에 산다. 그는 “한국 제품이어서 사는 게 아니다. 품질과 가격을 비교해보고 고른 게 한국 제품이었다”고 했다.

김근향 코트라 호찌민무역관 부장은 “베트남에서 한국 제품은 ‘고급’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한국 제품이라는 이유로 불티나게 팔리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 초코파이 먹고 LG TV 보지만…한국 호감도 ‘온도차’

베트남 가정에서 만난 한류
55세 아버지 “한국보다 일본 선호”
54세 어머니 “전자제품에 신뢰감”
25세 아들 “한국기업 취업 인기”
21세 딸 “드라마 시들, K팝 좋아”


■ 베트남의 한류파워 인물 (2016년 하반기~2017년 상반기 현재)

K팝 : 방탄소년단, 소녀시대, EXO, 세븐틴
K-드라마 : 송중기·송혜교(태양의 후예), 공유(도깨비), 소지섭(오 마이 비너스), 이종석(W, 닥터 이방인), 이민호(상속자들)
예능 : 송지효, 이광수(런닝맨)
※ 출처: 2017 지구촌 한류현황

드라마 ‘태양의 후예’ 주인공 송중기(왼쪽)와 송혜교.

드라마 ‘태양의 후예’ 주인공 송중기(왼쪽)와 송혜교.

<b>베트남 가정 ‘LG TV 속 현대차 광고’</b> 하노이의 팜 카인 린(오른쪽 검은색 옷) 가족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LG TV 화면에 현대차 광고가 보인다.

베트남 가정 ‘LG TV 속 현대차 광고’ 하노이의 팜 카인 린(오른쪽 검은색 옷) 가족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LG TV 화면에 현대차 광고가 보인다.

호찌민 베트남 전 국가주석 사진이 담긴 액자와 노란색 인공 난이 50인치 LG TV 양옆에 놓여 있다. 테이블 위에는 간식으로 한국 초코파이와 일본 막대과자, 베트남 과일 구아바와 홍자몽이 올라왔다. 지난 1일 하노이 중심에서 10㎞가량 떨어진 한 주택의 거실에는 다양한 국적의 물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노이 국립외대 한국문화학부 4학년인 팜 카인 린(21)이 한국 문화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때였다. 당시 베트남 TV 채널은 3~4개뿐이었는데, 오후 8시나 9시에 방영한 <대장금> <주몽> <보석비빔밥>이 한국과의 첫 연결고리였다. 이후 베트남 TV 채널이 수십개로 늘었고, 한국 드라마도 쉴 새 없이 나온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2000~2005년 정점을 찍었고, 지금은 그때만큼 빛나지는 않는다. 린은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이 모두 잘생기고 예쁘지만, 내용이 다 똑같다”며 인기가 시들한 이유를 설명했다.

중학교 2학년 때 K팝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동방신기, 2NE1, 소녀시대가 우상이었다. 베트남 신문에 나온 한국 스타들의 모습을 오려 방 안에 붙여놓기도 했다. 지금은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한다. 유튜브와 네이버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V-LIVE’를 통해 본다.

대학 입학을 결정할 때 린의 오빠는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많이 진출해 취직이 쉬울 것”이라며 한국어 전공을 권했다. 린은 중·고등학교 지역 배드민턴 대회에서 우승했을 만큼 배드민턴에 빠져 있었다. 그는 “이용대·정지성 등 한국 배드민턴 선수가 중국 선수들을 무릎 꿇렸을 때 왠지 모를 환희를 느꼈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배드민턴은 국민 스포츠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토분쟁 등을 이유로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 이외에 덴마크, 폴란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배드민턴 선수들도 좋아한다.

베트남 라면 회사에 다니는 오빠 팜 카인 즈엉(25)은 며칠 동안 인근 도시인 박린성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한국 드라마와 K팝에는 별 관심이 없다. 아이폰과 삼성폰을 같이 쓰는 그는 전자제품과 축구를 좋아한다. 그에게 LG TV를 고른 이유를 묻자 “스마트해서”라고 답했다. 음성검색 기능이 있기 때문이란다. 같은 음성검색 기능이 있는 삼성과 소니 TV는 LG 제품보다 비싸다고 했다.

퇴직을 1년 앞둔 군인인 아버지 팜 응옥 하(55)는 “딸이 아니었다면 한국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한국 자동차를 좋아한다면서도, 일본차보다는 성능이 떨어진다고 본다. 좋아하는 국가도 일본, 한국, 러시아 순이다. 부모세대는 베트남의 전후 복원 과정에서 기업 투자와 공적개발원조(ODA)에 적극적이었던 일본에 호감을 갖고 있다. 아버지는 “어느 나라 기업이든 젊은 세대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좋다”고 했다.

군인으로 일하다 퇴직한 어머니 도 티 선(54)은 “기술력이 좋다”며 한국산 혈압측정기를 쓰고 있다고 했다. 혈압측정기를 보여달라고 했다. 하지만 잠시 뒤 방에서 가져온 혈압측정기는 일본 제품이었다. 그 외 한국 제품은 삼성 전자레인지가 있었고, 밥솥과 세탁기, 냉장고는 일본 또는 미국 제품이었다.

지난 6월 어머니는 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해 롯데월드타워가 보이는 잠실의 한 호텔에 머물렀다. 첫 해외여행이었다. 롯데월드타워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남대문과 명동에 갔다. 한 상자에 10만원이 넘는 우황청심원을 3박스나 사왔다. 어머니 친구들이 “한국에 여행 가면 꼭 사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부모 세대는 한국 건강식품을 좋아한다고 했다.

린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하고 싶어 한다. 베트남 사람에게 한국 기업은 월급이 많고 선진적인 경영시스템이 있는 이미지라고 했다. 동시에 권위적인 상사가 있고, ‘한국 사람들은 일 욕심이 많아 베트남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일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린처럼 젊은 세대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 한국 기업을 찾는 경우가 많다.

린은 동생이나 친구들이 K팝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걱정하기도 한다. 한국 음악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아이들에 대해 “저렇게만 지내면 미래는…. 취미는 취미에 그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노이·호찌민 |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창간 기획-콘텐츠가 미래다]베트남 “한국산이란 이유로 무조건 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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